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Nov 03. 2021

“삽질해도 괜찮아”라고 했다

그러나, 삽질한 나는 안 괜찮았다

  “삽질해도 괜찮아!”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삽질'이란 단어가 불쑥, 예기치 않게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생각되었다. 내 몸 어디에도 실제로 삽질을 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어깨와 팔 근육이 뻐근하다거나 삽질한 결과가 처절하여 마음에 우물 같은 후유증이 남아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또한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이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설명할 때 쓰인 적도 없다. 그러니 내 기억 장치 어느 곳에 저장해 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다만, 작동하지 않는 10,000가지의 방법을 찾았다(I have not failed. I’ve just found 10,000 way that won’t work.)” 라며 만 번의 ‘삽질’을 당당히 얘기했던 토마스 에디슨이라면 모를까. 나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자행했을지도 모르는 삽질에 대해 굳이 기억해 내려 애쓸 용의가 없으며 복기(復棋) 할 이유는 더더욱 찾지 못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삽질이라니...


  심지어 삽질이라는 말이 주말 내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머릿속에서 고추잠자리처럼 맴을 돌았다. 그 단어를 꼭 사용해야만 문장이 되고 말이 되고 뜻이 통할 것 같았다. 그것 아니면 도통 밥을 못 먹을 것 같은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 결코 아닌데, 털어버릴 수가 없네. 참 이상도 하다’ 싶었다. 때로 어떤 생각은, 이렇게 한번 꽂히면 그냥 빼버리기 힘든 것이어서 기어이 무라도 잘라야 하고 휘둘러 공기라도 갈라야 하는 것인가 한다.


 ‘삽질 꽂힌 이유는,  단어와 행위에서 긍정적 의미를 읽어낸 글과 강의 영상을  때문이기도 했지만*)무엇보다 3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지에 실을 글을 부탁받고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글감을 찾아야 했는데 삽질이  마음에  것이었다.


  원래 ‘삽질’이란 말은 군대에서 사용되었던 은어, 관용어였다. 상급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규율’을 세우려는 의도로 삽으로 땅을 판 후 그걸 다시 메꾸는 등의 쓸모없고 비상식적인 일을 하게 하는 것을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다. 저속한 표현, 비꼬아서 하는 말 같아 꺼내어 쓰지 않았었다.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좋은 말 놔두고 굳이 비유해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잘못 사용했다 괜한 오해 살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삽질한다’는 말이 긍정적으로 다가오며 머릿속에서 자꾸 맴도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삽질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쓸모없는 일일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삽질이라도 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삽질을 도전과 꾸준함으로 치환한다면 유의미한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의 흐름은 이런 것이 되겠지...

궁금하면(500원 아니고) 덤비고 본다. 할 수 있을까 재지 않는다. 안될 것 같아도 일단 해본다. 망해도 다시 해본다. 재미라도 찾아라. 재미가 모여 에너지가 된다. 끝내 이루리라. 삽질하길 잘했다.


  공사현장에서의 삽질은 매우 바람직하고 건설적인 일이다. 에디슨이 만 번이나 시도한 삽질은 실패한 실험이었을 망정 그 경험에서 원인을 찾고 다시 시도함으로써 성공한 실험이 되었고 ‘발명왕’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무모한 일이라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손가락질받던 삽질로 우물을 찾게 되기도, 유전을 찾게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우공이산이라고, 작고 미비한 일일지라도 쉬지 않고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 주는 사자성어도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글 제목을 ‘삽질해도 괜찮아!’라고 쓰고 에디슨 이야기며 삽질의 의미, 새로운 것이 있으면 무조건 해봐라, 망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즐겨라, 삽질하기 딱 좋은 나이다,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꽉꽉 욱여넣어 글을 썼다. 몇 번을 읽어봐도 제법 근사하게 읽혔다. 고민하던 숙제를 끝냈다는 안도 플러스 글에 대한 만족까지, 쾌재를 부르며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하다. 글을 다 써서 선생님께 보내고 나니 갑자기 후회가 되는 거다.

배불리 맛있게 식사를 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아휴, 조금만 들 먹을걸’ 하면서 지나치게 많이 먹은 것을 후회하는 경우와 비슷하려나...

중학생 아이들에게 ‘삽질도 괜찮아’ 하며 삽질을 하라고 조언을 하다니 말이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썼다 할지라도 표현이 저속하다면 쓰지 않는 게 맞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지나쳤나 생각이 됐다. 보다 우아하고 근사한 표현은 없었을까. 요즘 아이들이 삽질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기는 한 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귀가한 아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들, 혹시... 삽질한다는 말, 요즘도 쓰지?”

“푸하하... 요즘 그런 말을 누가 써요?” 정색을 한다.

“안 쓴다고? 검색해 보니까 게임 같은 거 하면서 쓴다던데? 그럼, 어떤 뜻으로 쓰는 건지는 알겠지?”

“나는 알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애들 많을걸요.”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니, 큰일 났다.

“그럼, 쓸데없는 일 하는 애들 보면 보통 무슨 말을 해? 삽질하네, 뻘짓하네... 뭐 이런 말 쓰지 않아?”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요, 그냥 지ㄹ하지 마 하고 바로 말해버리죠. 근데 왜요?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데요.”

망했다! 단순하고 원초적이며 대충 말하는 요즘 아이들을 과대평가한 듯하다.

“교지에 실을 글 하나를 국어 선생님이 부탁하셨는데, 제목이 ‘삽질해도 괜찮아’라고 해서 글 오전에 메일로 보냈거든. 나름 주말 내내 신중하게 고민하고 쓴 건데 삽질이란 말을 쓰지도 않을 뿐더러 뜻을 모르는 애들도 많을 거라며? 얼마나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겠냐고. 꼰대 꼰대 상꼰대라고 할거 아냐... 너한테 먼저 물어 볼걸 그랬어...”

“아...괜찮아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요. 어차피 교지 보는 애들 없어요. 1학기 때 내 글 실린 교지도 버렸는데, 뭘... 난 또 뭐라고... 신경 끄세요.”


  괜찮다고, 신경 끄라며 아들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자기 방으로 가버렸지만 내 마음은 참으로 복잡해졌다. 삽질 말고 차라리 우공이산의 사자성어를 얘기할걸 그랬나 생각도 되었는데 그 역시 고리타분하고 꼰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무겁지 않게 한껏 재치 있게 재미있게 쓴 글이라 생각했었는데 오만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읽지 않는 교지라... 그렇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교지에 실릴 글을 쓰려고 주말 내내 그렇게 고민했단 말인가.

정작 삽질은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삽질해도 괜찮다고, 지금은 삽질할 때라고 열심히 말해 놓고 내가 한 일이 삽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안 괜찮아지는 이 마음은 무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혼자 삽질한 일은 괜찮지가 않았다.




* 삽질에 꽂히게 된 브런치 작가 밤토리님의 글.

https://brunch.co.kr/@yunyinalife/49


매거진의 이전글 ‘눈 요가’ 하는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