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동안거(冬安居)
그러니까 겨울, 12월이 되면, 얼마의 잎들이 떨어져 내리고 남았는지 가늠하는 일을 그만둔다. 이미 거의 모든 잎을 떨구어 냈기 때문이다.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도 시들해진다. 지나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운 나무는 자신의 움직임을 포착할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며 햇빛을 난반사시켰던 잎들은 어떤 비행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없었다. 역동적인 삶의 기억을 잊은 듯한 나무는 그러나, 치열한 내부로부터의 투쟁을 시작한 지 오래다. 내적 고요함(정 靜) 가운데 움직임(동 動)을 감추고 있는 것이니 참된 정이라 하겠고,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정중동 靜中動)이 있다 하겠다. 나무는 동안거(冬安居)에 들었음이다.
겨울철의 나무는 쉬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철의 나무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여름철 광합성으로 생성된 에너지원을 안간힘을 쓰고 지키며 활용하고 저장한다. 봄에 새로운 생장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성장과 성숙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나이테’의 생성과정이기도 하다.
나무가, 자연이 겨울을 깨닫기 위해 오랜 칩거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사도 겨울을 맞아 동안거에 들어간다. 동안거는 겨울이라는 움직이기 어려운 3개월 동안(음력 10월 보름부터 1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사찰에 모여 치열하게 도업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거(安居)의 기간 동안에는 외출을 금하고 좌선하며 수행하는 것이다. 나무가 동안거를 통해 봄에 싹을 틔우고 화려한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스님들도 안거 기간 동안 수행을 거듭하여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향기롭게 전하게 된다.
안거의 이유는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 여름과 겨울, 덥고 추우니 돌아다니지 말고 내 안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특히 여름에는 작은 생물들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니 행여 다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겨울에는 모든 만물이 잦아들고 소멸하는 시기이니 겸허한 자세로 자기를 닦는 일에 정진하라는 뜻이다.
이는 내적인 치열함과 역동이 ‘쉼’을 통해 축적되어 외적으로 더욱 활발하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무에 있어서나 자연에 있어서나, 사람에게 있어서도 쉬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많은 셈이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엄청난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별 특별한 게 없네, 재미없어, 이제 좀 쉬어야겠어.”
얼마 전, 수능 시험을 치른 딸의 선언으로부터 우리 집 ‘동안거’는 시작됐다. 학교에 가지 않고 온전히 노는 일에 매진하겠다며 가정학습 신청서를 내고 줄줄이 약속을 잡아 돌아다니더니 벌써 시들해지고 지친 거다. 몇 년을 학업에 열중하였으니 체력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쉼’이 필요했다. 책상과 책장에 있는 학습서들을 죄다 갖다 버림으로써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흘렸던 눈물만큼 피어난 여드름 제거 및 피부관리를 받고 자외선 완전 차단이라는 방어막을 친 후, 본격적인 칩거에 들어갔다.
동안거에 임하는 스님처럼 학업에 매진하겠다며 일찌감치 ‘윈터스쿨’(오전 8시부터 밤 10시 까지)에 등록을 해 놓은 중3 아들은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체력과 기력을 보해야 한다며 ‘쉼’을 선택했다. 보약까지 지어다 바쳤으니 그야말로 먹고 자는 굼벵이가 따로 없는데, 하지 않아도 되는 묵언수행까지 자처하니 아마도, 언젠가는 득도할 날이 오겠다 싶다.
내 몸에서도 ‘쉼’을 권하는 신호들이 온다. 눈과 몸이 쉽게 피곤해진다. 휘모리장단처럼 몰아쳤던 집 안팎의 바쁜 일들이 하나둘 정리가 되고 보니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다. 외출보다는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입고 소파에 누워 혹은 폭신한 목화솜 이불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싶어 진다. 그러다 책을 덮고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싶어 진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거다. 에너지를 안으로, 안으로 모아야 한다고 몸과 마음이 의기투합한 모양이다.
사실,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나와 남편은 온전한 쉼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좀 빈둥거려볼 요량이다. 먹고사는 일에 게으름을 피운다면 여지가 생길 것이다. 선물 받기도, 사기도 한 책들을 모아 보았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미루어 두었던 책들도 꺼냈다. 딸이 읽고 싶다고 요청한 책들도 있다. 일렬로 쭉 세워 보았다. 겨울 동안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싶은 양이다. 읽었던 책들도 문득 다시 읽고 싶을 때 꺼내어 볼 것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다 읽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으른 책벌레가 되고 싶은 게 올 겨울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나만의 ‘동안거 스타일’ 되시겠다.
그래서 봄이 되면, 오랜 동면에 들었던 짐승들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 활발한 생명활동을 하고, 나무들이 봄눈을 틔우고 봄꽃을 피우듯 찬란한 나의 봄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책 읽고 여유를 찾는 동안거를 마치고 문을 열었을 때, 설레는 봄 대신 하얀 백지에 술술 글이 써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