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사진>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맞으며
낮과 밤은 다른 성질을 지녔지만 ‘하루’라고 부른다. 그러나 질감이 같은 밤 사이를 두고는 찰나의 어느 순간은 ‘어제’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오늘’이 된다. 어제의 시간에 더 큰 차이를 두면 작년이 되고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보면 올해가 된다. 시린 눈을 몇 번 껌뻑이고 제법 큰 호흡을 내쉬며 숨을 참는 몇 초 사이에 2022년이 되었다.
아들이 ‘2021 오후 11시 59분 59초 공기’라고 쓴 비닐봉지를 묶으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겠다고 거실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내 주위에 있었고 내 피부와 맞닿아 있던 공기가 어제의, 작년의 공기라니... 찰나의 시간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제야의 종소리보다 더 큰 울림이 쿠우웅~ 소리를 냈다.
어제 냉동실에서 내린 곰국에 양지살을 잘게 찢은 고명을 얹어 새해 첫날, 떡만둣국을 먹었다. 나이 한 살도 같이 먹는다는 새해 떡국에 이리 정성을 쏟을 일이 무어람? 그렇지만 가족들은 동그랗게 손을 이어 잡고 새해 기도를 드렸다. 지금까지 잘했고, 잘해 왔고 앞으로 더 잘해 나갈 것을 다짐했고 응원했다.
새해 첫날이라고 하루 종일, 새해 인사를 나눈다고 바빴다. 집 베란다에서 찍은 해돋이 사진부터, 새해 첫날부터 액땜했다며 발목 깁스 사진을 올리는 친구까지 새해를 맞는 다른 모습이 올라왔다. ‘아자아자 힘내자!’는 구호성 응원의 메시지부터 ‘에고에고 한 살 더 먹었다!’는 푸념 섞인 탄식까지 표현도 다양하였지만 한 해를 맞는 희망은 같았다.
“에고, 나이만 또 한 살 더 먹었네!”
나이를 잊으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상을 치우며 무심코 뱉어진 말이었다.
“어무니, 이거 마시면 한 살 더 젊어질 수 있는데요. 싸게 드릴게요.”
눈앞에서 아들이 비닐봉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2021년 11시 59분 59초의 그 비닐봉지다.
어제의 공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봤을 때, 나는 잠시 <Time in a bottle>* 노래 같은 낭만적이고도 감성적인 뭔가를 생각하며 마음이 촉촉했었는데 ‘젊어지는 샘물’도 아니고 봉이 김선달 찜쪄먹는 장삿속이 숨어있을 줄이야... 순식간에 마음이 축축해졌다.
“난 나이 드는 건 싫은데, 어제를 또다시 살고 싶지는 않네요. 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네. 그래서 오늘을 살뿐이지. 그 공기는 그대나 많이 마시게나. 공부 안 하고 놀던 옛날이 무지하게 그리워질 테니까 말이야.”
‘봉지 속 시간을 파는 남자’에게 속시원히 한 방을 날리며 한 해를 시작했다. 왠지 올 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을 놀리며 한 해를 시작한 건 아니다. 시간의 개념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새가 기특해서 용돈도 쥐어주며 한 해 동안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격려해 주었다.
그런데, 이 봉지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간을 간직한 봉지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며 비장함마저 어리는 것이었다. 시간을 봉지 속에 담은 이유가 병 속에 시간을 담겠다는 노래 가사처럼 들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파는 남자가 아니라 ‘시간을 담은 남자’ 말이다.
시간을 봉지 속에 넣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중3까지 16살 인생을 봉지 속에 담아 놓겠어요.
하루하루 보물과 같았던 소중한 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겠어요. 함께 해주어 고마웠어요.
나는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합니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고이 모아가겠습니다.
먼 미래에 시간을 펼쳐 보았을 때, 나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나를 응원해주세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새해가 밝았기 때문일 것이다. 2021년의 공기와 시간이 담긴 봉지를 보며 내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시간 속 병뚜껑을 살짝 열어보았다. 금세 비어버린 병 속에 다시금 시간을 채워놓을 일이 남았다. 이 시간들과 순간들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위해 다시 열리게 되는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들은 소중한 그 무엇이다.
*) 73년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텍사스로 향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아까운 일생을 마친 포크 싱어송라이터 짐 크로스(Jim Croce)의 히트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