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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04. 2022

유용(有用)과 무용(無用) 사이

<그 시절 그 문화: 패션>

   "나팔 나팔 나팔 나팔 나팔 바지~"

손나발까지 불어가며 엄마에게 사달라고 졸라대던 나팔바지와 빨간 땡땡이무늬 리본 블라우스는 내가 가졌던 최초의 '무용(無用)의 유용(有用)'에 대한 인식이자 바람이었다. 간절함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블라우스는 언니가 입던 것과 똑같은 것이니 해왔던 대로 물려 입으면 되었고 나팔바지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유용(有用) 하지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전과일 수 있었다. 오빠와 언니가 풀었던 동아전과, 표준전과는 지우개로 지웠다 하더라도 연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굳이 맞는 답이 뭘지 끙끙될 필요가 없었다. 같이 공부하자는 친구 앞에 펼쳐 보이기에도 민망한 물건 중 하나였다. 교과서 개정이 있었던 해에는 교과서와 전과의 내용이 달라서 필요한 부분을 앞뒤로 찾아야 했고 새로 수록된 부분은 없어서 풀 수 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뚱딴지처럼 필요도 없는 나팔바지와 블라우스 타령이었을까.


   같은 디자인의 블라우스였지만 '나만의 새것'을 갖고 싶은 시샘이었고 당시 유행했던 나팔바지는 내가 입고 다니던 바지들과 사뭇 달라 멋져 보였으므로 '예쁜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엄마는 의당 엄마로서의 위치에서 말씀하셨다.

 "똑같은 블라우스를 굳이 살 필요 없다는 걸 아는 녀석이 웬 고집 일꼬? 나팔바지는 예뻐 보이더라도 아래통이 넓어서 너처럼 천방지축 쏘다니다 보면 발에든 무엇에든 걸려 자빠지기 딱 좋게 생겼구만... 안돼!"


   엄마는 무용한 것일지라도 어떤 한 사람에게는 유용을 뛰어넘는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유용한 것은 굳이 아름다울 필요가 없으며 아름답기만 한 것은 때로 쓸모가 없다고도 하셨다.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도 하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셨다. 나는 앉으나 서나, 귀찮게 엄마를 졸라댔던 모양이었다. 결국 두 가지 옷을 수중에 넣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걸을 때마다 팔랑팔랑 나팔대던 나팔바지가 엄마의 염려대로 큰 사고로 돌아왔다. 1년 후, 나팔바지는 동생에게 물려줬는데, 학교 운동장 계단을 깡총깡총 뜀하며 내려오다 바짓단에 발이 걸리며 넘어져 앞니 영구치 세 개가 부러지거나 빠져버린 것이었다. 병원에서도 결국 이 두 개는 살리지 못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틀니를 끼고 살아야 했다.


   나팔바지는 패대기 쳐져 버려져 잊혔지만 피범벅이 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병원으로 가면서 무섭고 미안했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 사건이 계기였을 것이다. 유행에 극도로 둔감해진 것이... 예쁘기만 하고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관심 off 기능’이 자동 입력된 것이... 그 이후, 나의 의상은 면 티셔츠와 면바지 일색이었고 재래시장표 흰 운동화에 단정한 단발머리 혹은 커트머리와 체크 난방, 점퍼 차림 등등이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 때는 그나마 나았다. 최소한 입을 것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복 자율화가 시작된 82년부터(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친구들은 유행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컬러 TV의 보급도 한몫했다. 친구들은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들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꼼꼼히 스캔했다. 금속탐지기를 통해 브래지어 호크까지도 체크할 기세였다.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자 딱지가 붙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화제의 중심은 대부분 ‘누가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데…’로 시작해서 ‘진짜 이쁘더라…’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다.


<돼지의 왕>에서 개라는 권력자가 하급 부류인 주인공을 밟는 장면. 나*키는 잘 사는 부류에 속한다는 '신분증'과도 같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맨 처음 불붙은 것은 다름 아닌, 메이커 경쟁이었다. 그놈의 운동화를 신으면 100m를 15초에 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놈의 청바지를 입으면 엉덩이가 복숭아처럼 탐스러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사반장>의 후줄근한 바바리, <전설의 고향>의 소복(素服), <전원일기>의 몸배바지에 익숙했던 나는, 특정 브랜드의 옷과 신발이 남의 나라 얘기 같았다. 그 옷이 그 옷 같고 그 신발이 그 신발 같은데 가격은 운동화의 경우, ‘2천 원 vs 2만 원’나 되었다. 특히 나*키 운동화는 ‘계급 신분증’과도 같았는데 이 운동화를 갖고 싶었던 아이들이 다른 학교 신발장을 돌며 훔치는 사건들이 속출했다. 세탁해 널어놓은 새 옷을 걷어가는 도둑들도 있었다. 우리 집 옥상에 널어놓았던 빨래도 한 번 없어졌는데 새 옷이었지만 메이커 옷은 아니었기에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걸 다 훔쳐갔을까, 쯧쯧…”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보시(布施)한 셈 치자 하셨다.

 

  80년대 후반, 90년대는 사회 전반에서 개방과 개혁, 다양화와 세계화, 민주와 자유의 요구가 거셌고 대중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라 할만큼 다양한 문화가 혼재했다. 샴페인은 여기저기서 터져 올랐다. 물질적 풍요 속에 개인주의가 탄생했고 남들과 차별화되길 원하는 ‘개성’으로 뭉친 세대, ‘X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압구정 오렌지족’이 유행의 첨단을 걸었다. 외국영화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스타일은 청소년들의 지침서가 되었고 ‘요즘 애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라는 어른들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특권으로 많은 것이 이해되고 용서되었다. 오히려 세대에 의해 문화는 선도되었다.

 

   그러나 나의 패션의 역사는 시대가 변해가도 다르게 쓰이지 않았다. 여전히 유용과 무용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청바지, 청치마는 입었으되 찢청(찢어진 청바지)과 스노진이 아니었고 징 박힌 청자켓 한번 입어볼 엄두를 못 냈다. 못 입고 안 입어 본 것을 열거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라이더 재킷, 크롭티(배꼽티), 끈나시, 오프숄더(양쪽 어깨가 노출된 옷), 미니스커트, 디스코 바지, 배기바지, 베레모, 가격표가 달린 모자, 집시 룩, 형광색 옷들… 까지. 뭣하나 내 것으로 소화해 보지 못했다. 걸을 때마다 다리 선이 살짝살짝 드러남으로써 매력적이었던 ‘랩스커트’용돈을 모아 겨우 구매했다가 ‘거지발싸개 같은 옷’으로 제재를 받으며 환불해야 했다. 나에겐 너무나 입고 싶은, 유용한 옷이었지만 엄마의 시선에서는 하등 무용한 것이었다.

 

   쓸모 있는 것(有用)과 쓸모없는 것(無用)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유용한 것은 실용이라는 가치 외에 아름다울 필요가 없는 것인가? 장자는 '무용의 가치를 모르면 유용의 가치를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무용과 유용의 가치가 같아지는 것을 중용(中庸)이라 했다. 그리하여 나는 쓸모와 아름다움 사이, 유용과 무용 사이에서 오래 헤매었으나 지금의 나는, 그 둘 사이는 일정 부분을 공유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딸의 오프숄더 옷과 끈나시 원피스를 지지하며 아들의 빨강 머리, 파랑 머리카락을 이해하고 용인했다. 무용할 수도 있지만 유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한다. 보라색 쇼트커트에 흰색 크롭티와 찢청 반바지를 입은 나의 빛나는 20대, 1990년대의 거리를...



   

*) 표지 사진 : 일러스트레이터 710 블로그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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