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따분하게 살기에는 인생은 짧다
리처드 파인만 씨가 얘기했다.
“나는 f(x)라는 기호도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은 f 곱하기 x로 보인다. 나는 dy/dx라는 기호도 싫어하는데, 이것을 보면 d를 약분하고 싶어 진다”라고.(*)
나도 그랬다. 정보와 데이터를 깔끔히 정리해야 한다든가 주변을 말끔히 치우는 성격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같은 게 싫었다.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싫었다. 반듯한 가르마를 타기 위한 몇 번의 빗질이 싫었고 귀 밑 3cm 머리 길이와 무릎 아래 5cm 치마 길이에 엄격했던 교문 검열이 답답했다. 오와 열을 맞춰 운동장에서 땀 흘리던 교련시간과 운동장 조례 시간은 ‘어지럽다고 쓰러져버릴까’를 매번 고민하게 할 만큼 싫었다. 선생님이 강조하는 중요 부분에 자를 대고 밑줄 치던 친구들의 갸륵한 정성도 의아했다. 삐딱한 것 없이 키까지 맞춰놓은 책장의 책은 어느 하나 조금은 빼놔야 직성이 풀렸다.
선천적으로 나는 약간의 삐딱이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패닉의 ‘왼손잡이’ 노래에 왼손잡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됐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를 부르며 panic에 빠졌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하늘에 침을 칵 뱉으며 삐뚤어질 테니 내버려 두라는 가사에 열광했다. 그렇게 하기로 사회적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냐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뭐 그리 많냐고.
오차도 없고 여지도 없이, 가차 없고 매정하게.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재미없는 일이기도 하잖아. 빈틈도 있고 어그러지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삐딱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시기와 계기랄 것 또한 없다. 딱 맞아떨어지게, 땅땅땅 어느 순간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건대 삐딱하게 살기로 했기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양창순 정신과 전문의가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고 선언한 것은 일종의 커밍아웃 같은 것이라고 소회 했듯이.
그러나 내가 “삐딱하게 살기로 했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치자. 어느 누가 호기심을 갖고 귀 기울여주겠는가. ‘삐딱하다’는 말은 때로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포한다고 하기도 어렵겠다. 정말 삐딱한 시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 분명하다. 사전에도 물체가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거나 마음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바르지 못하고 조금 삐뚤어져 있다고만 설명돼 있다. 긍정의 의미를 찾으래야 찾을 수조차 없다. 그런 이유로 삐딱하게 산다는 것이 ‘삐딱선을 타는 것’이 아님을 풀어놓아야 오해의 소지가 없겠다.
‘삐딱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정의하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석하고 바랬던 삐딱한 삶이라는 것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가열차게, 여전히 삐딱하게 살아갈 생각이 있는지?’ 생각을 정리해보는 작업이랄까?
한 번은, 아니 가끔은, 무엇이든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어야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삐딱하게 산다는 것에 대하여...
첫째, NO!라고 말하는 것은 삐딱이의 능력.
YES MAN 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무조건 ‘Yes’를 요구하는 사회, ‘No’라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무조건 Yes는 아니지 않느냐는 반향이었다.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우리는 왜 ‘아니오’라고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는가?’에 대해 연구해 온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결론은 무조건적인 ‘YES’ 보다는 현명하게 ‘NO’를 외칠 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기브 앤 테이크>의 저자 애덤 그랜트는 “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이며 때때로 여기에 인생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고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는 회사를 자주 옮겨 다녀야 했고, 사람 사이에 연을 끊을 일도 생겼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이라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참 다행스러운 건, 결국 아닌 건 아니더라.
둘째, Different, 삐딱이에게 세상에 같은 것은 없다. 일찌감치 우리는 획일적인 것을 강요받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학생으로서, 그 나이에, 이 조직에 있음으로, 직급에 따라, 순위와 서열에 맞게...
정해진 규칙과 규범은 존재했고, 같은 생각과 사고를 강요받았고, 비슷한 일을 하며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반복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고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싶었다. 삐딱하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꿈을 꾸었었지.
- 고등학교 시절, 언니 오빠가 보던 ‘말’ 잡지를 훔쳐보며 정의의 사도를 꿈꿨다.
- 대학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밤을 도와 음주를 하며 페미니스트, 독신주의를 꿈꿨다.
- 괴팍하게 살았거나 독특한 것을 추구하거나 일찍 생을 마감한 예술가에 심취한 나머지 나도 일찍 죽기를 꿈꿨다.
- 공무원, 은행원, ‘사’ 자 붙은 직업 등 뻔한 일은 죽어도 싫었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자유 영혼을 꿈꿨다.
세상에 같은 것이 없다면, 모두 다르다는 의미인데,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시각과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것은 아닐까.
셋째, New, 삐딱이는 따분한 게 싫다.
날마다 하던 방식대로 하고 산다면 인생은 얼마나 따분할까?
매일매일 같은 음식 못 먹고 똑같은 옷 못 입는데, 매일 똑같은 일은 참 잘하고 산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같은 방식 고수하고, 나이가 들수록 일관되게 모든 것을 고수하는 고수가 된다. 방식도 그럴진대 생각은 더더욱 바뀌기 힘들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바꾸어 보는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시도가 되고 도전이 되고 창조가 된다. 기존의 것을 삐딱하게 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카피라이터로서의 첫 직업은 나와 꽤나 궁합이 잘 맞았다.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노력했고 혁신적 사고와 창의성을 요구받았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듣고 써야 하는 기자로서의 두 번째 직업 역시 따분할 틈이 없는 직업이었고 기존의 것을 뒤집어봐야 더 많은 것이 보일 때가 많았다. 삐딱하게 보아야 새로운 것도 보인다. 새로운 일들이 많아야 따분하지 않다.
“인생은 따분하게 살기에는 백 번을 산다고 해도 너무나 짧지 않은가?”
니체의 말이 맞다.
삐딱이로 살기 위해 취한 방법들과 생각들과 시도들은 이 외에도 많고도 다양했다. 삐딱이 자질은 원조 삐딱이가 있음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시작은 참으로 수월했던 것 같고. 신이 난 삐딱이가 더 삐딱해지려다 진짜 삐딱했던 경우도 있었다. 오해와 억측도 샀다. 버리고 비우고 산 적도 있다. 마음이 아픈 적도 있었다. 그만큼 삐딱이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 든, 힘 빠진 삐딱이지만 삐딱이 근성은 개 못주고 산다. 그래서 그냥 나는 삐딱이로 살기로 했다.
‘삐딱~하게 살아도 된다’
마음먹으니 이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다.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_사이언스북스
Richard Feynman ;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양자 전기역학의 재규격화 이론을 완성한 연구 업적으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