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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Sep 09. 2020

‘언젠가’라는 요일은 없다

어려운 시기에 시작을 선택한 모든 이에게 응원을...

Someday. “I’ll do it some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Saturday, Sunday.
See? There is no Someday. It’s time to ride.

영어도 모르면서 좀 멋있게 시작했다.

‘언젠가’는 할 거야 생각만 하고 있다면 ‘언젠가’라는 요일은 존재하지 않으니 ‘지금 타라’는 모회사 오토바이 광고 카피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멋진 문구가 있다.

‘시작이 반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너무 많이 들어서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말일 수 있지만 만고의 진리다.

‘지금 나는 너무 힘들다’ 의욕을 잃고 주저앉아 있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좌절하고 있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거나,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포기하려고 할 때,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한번 해보자의 결심을 다지게 하는 응원의 메시지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막상 시작해서 하게 되면 해지는 것이 인생이더라.



11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모둠회’라는 모임이 있다. 어머니 세대로 치면 한 동네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계모임 격이다. 돈을 모아 몰아주는 품앗이는 하지 않으니 엄연히 따져 ‘계’는 아니고, 밥 먹고 술 마시는 것 외에 취미를 같이 하는 것도 없으니 ‘동호회’도 아니고 그냥 정기모임보다는 번개를 좋아하는, 여러 명이 있으니 그냥 모임이다.

그 아이들이 커서 지금은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는 고2가 되었는데도 이 모임은 깨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나를 비롯해 몇은 이사를 했어도 ‘얼굴 한번 보자’ 하면 척척들 모이는 모임이다.


멤버 중 H가 얼마 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경영이 힘들어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는 이 언택트 시대에 뭔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물론 자기 가게 오픈은 아니지만 중간관리자로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물건을 팔고 판매금액 대비 적정 이율을 자기 몫으로 가져가는 시스템이니 고정고객을 유치하고 매장을 매력적으로 꾸미고 물건의 누수가 없도록 입출고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하는 일, 어디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매의 눈으로 꼼꼼히 관리하고 체크해야 한다.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코로나가 다시 재 확산하면서 발을 묶어 버리니 꼼짝 않고 방콕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주말에 S.O.S 문자가 왔다.

매장이 너무 정신이 없소. 디스플레이도 해야 하고, 2700장 중 700장이 내일 들어오는데, 더 들어올 수도 있고... 와서 일 좀 하시오. 짜장 받고 탕슉 쏜다.

다음 날, 직장을 다니는 S를 빼고 나 포함 세 명이 거짓말처럼 오전 11시에 매장에 모였다.


“참, 우리는 일 복 하나는 타고났다”

외치던 H와 나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야, 정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즌이라 매장 옷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교체를 해야 했고 프로모션 기간이라 수량은 넘쳐났다. 전시할 옷은 비닐을 까야했고 보관 혹은 반품할 옷은 개별 비닐포장을 해야 했다.

군대로 치면 ‘땅 파고 다시 덮는다’는 일명 삽질에 해당하는 일이다. 온라인 택배상품까지 받다 보니 체크해서 포장도 해야 했다.

아무리 우리가 의리로 뭉친 사이고 ‘소도 때려잡는’ 어마어마한 ‘기능장’ 능력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고 헉! 입틀막 할 수밖에 없는 양이었다.


색깔별로 예쁘게 정리끝! 손님만 오면 되는데...


10 to 10 죽기 살기로 혼자 일해야 한다

10 to 10... 이 용어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나 익숙한 단어다. 학원에서 주말이나 방학에 10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H는 10시부터 10시까지 당분간 혼자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했다. 처음이라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고 알바를 썼다가는 자기가 가져갈 돈이 없겠다는 판단이라 했다.

시간당 최저임금 8,590원을 따져 보면 죽으나 사나 혼자 맡아 일해야 하고 애꿎은 가족 찬스나 지인 찬스를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을 것이다.

모르는 바가 아니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와줄 밖에... 그런데 일하는 사람은 열심인데 물건을 보러 오는 손님은 뜸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안타까워도 생각으로 그칠 밖에...


우리는 정말 점심 한 끼,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일 힘든 것은 물론 마스크를 낀 채 일하는 상황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선에서 방한복까지 입고 일해야 하는 여러 사람들의 노고에 숙연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일주일 사이 H는 판다가 ‘아이고,  형님!’ 하며 따라오게 생겼다. 핼쑥해진 얼굴에 다크서클이 턱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시작이라니... 안쓰럽고,

이 어려운 시기에도 시작을 하다니... 대단했다.


10시까지 또 매장에 붙박여 있어야 할 H를 두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볍고도 무겁다. 생각이 많아지는 귀갓길이다.



8시쯤 되었을까?

카톡 문자와 사진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직장을 다니는 S 가 퇴근길에 H를 위해 사다 주고 간 간식들 사진이다. 일 도와주러 간 언니들도 혹시 함께 있을까 해서 간식이나 같이 먹을까 해서 들렀다고.

마음 깊고 따뜻한 동생이다. 내가 이 모임 동생들을 좋아하고 예뻐하는 이유다.


‘언젠가’라는 요일은 없다.

단지 우리가 그 시작을 미루고 있을 뿐이다.

‘지금 시작하기엔 적절치 않다’라고 말할 때에도 ‘언젠가’ 할 일을 ‘지금’으로 바꾼 동생과, 또 다른 시작을 한 누군가에게도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또한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기원전 384-기원전 322)가 한 말이다. 일단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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