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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14. 2020

쪼대로 김밥 vs 윤봉길폭탄김밥

개성과 취향을 존중한 엄마의 마음?

#이름하여쪼대로 #신념 #취향존중

 굳이 이름하자면 셀프 김밥, 즉석 김밥, 내 맘대로 김밥, 생각대로 김밥쯤이겠지만 경상도 보리 문둥이로서의 에지(edge) 있는 말을 빌자면 ‘쪼대로 김밥’ 되시겠다.


 가끔 나는 친정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이 쪼대로 김밥을 아이들에게 해 먹으라고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꺼내 펼쳐놓는데,

니 쪼대로 해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서울 토박이인 남편으로서는 점잖지 못한 단어 선택이 마뜩지 않아 한 소리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입에 착 붙어버린 습관이란 녀석은 날 놔두지 않는다.


 여하튼, 이 쪼대로 김밥을 가끔 해 먹으라 하는 이유는 불가사의하게도 아이들이 김밥을 싫어한다는 거다. 김밥 싫어하는 아이들, 혹은 사람은 처음 봤다. 체험학습 때 김밥은 한 번도 안 싸 봤다면 말 다했지, 뭐. 외계인인가?


 다른 이유는 쪼대로김밥에 대한 나의 굳건한 신념과 철학은 가히 조지훈의 <지조론>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제조자의 개성과 취향을 전적으로 존중함이고

음식의 여러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경제적이며

탄단지 *를 고루 겸비한 효용가치,

최고의 자기 만족도를 보장함이다.

 

 쪼대로김밥은 해 먹는 날의 주방, 특히 냉장고의 컨디션 condition이 중요하다.

냉장고에 어떤 반찬이 남아 있는지?

있는 식재료로는 어떤 김밥 속 재료를 추가할 수 있는지? 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떤 재료로, 어떤 맛의 김밥을 만들어볼까?’

사뭇 진지해진다.

‘갑자기 분위기 스타트업!(갑분스)’


#쪼대로김밥 #셀프김밥 #취향저격

 쪼대로 김밥의 원조는 당연 친정엄마다.

엄마는 김밥의 달인으로 자칭,

내가 만 김밥을 일렬로 이어 붙이면
서울-부산을 왕복하고도 남았다.라고 주장하시는 분이다.


 주장이 그럴만한 것은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하거나 식구들의 생일이거나 무슨 날이다 하면 김밥을 마셨는데 어찌나 많이 하셨는지 김밥을 마는 날은 하루 종일 김밥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사형제 다니는 학교마다 행사날이 달랐으니 행사 많은 봄가을에는 하루 걸러 김밥day 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손수 만드신 간식까지 하루 종일 음식과의 전쟁을 치르신 엄마로서 내놓은 비장의 카드가 바로 쪼대로김밥이었던 것인데,

적벽대전을 앞둔 황개와 주유의 회심의 고육지계다.

그러니 우리 형제들은 조조처럼 속아 넘어가서는 엄청난 뷔페쯤으로 여겨 스스로 김밥을 만들어 먹는다는 자부심까지 갖게 된 것이리라.


 무한 고기사랑 오빠와 동생은 먹다 남은 불고기, 돼지양념구이, 소시지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일단 확보에 바빴고 언니와 나는 비교적 채식 위주에 노인네 식성이라 김치 멸치 우엉이면 족했다.


 김발 없는 김을 깔고 밥 얹고 각자 그날의 취향대로 재료를 올려 말아먹는 김밥은 절대 칼을 사용해 썰어 먹을 수 없다. 요리과정 줄이기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다. 피리를 불듯이 들고 먹어야 한다.

옥수수는 하모니카, 김밥은 피리!

 

 젖니를 빼 이가 한 둘 없을 때나 야무지게 잘 베어 먹지 않으면 어느 재료 하나가 쭈~욱 달려 나오거나 밥이 와르르 쏟아지는 낭패를 만난다.

“푸푸... 크크”

입안 가득 김밥이 들어앉아 맘껏 웃지도 못한다.

김치나 양념고기 같은 물기 많은 재료를 욕심껏 넣어 말아도 곤란하긴 마찬가지.

축축한 물기가 베어 들어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이 요상한 김밥 밥상에 할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난감해하셨는지.

“이게 뭐냐?”

이빨도 시원찮은 시어미 놀리는 거냐?

니가 해서 니가 알아서 먹으라는 거냐?

뭐 그런 물음이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으셨다. 그럴 가치도 없는 일이니... 버럭! 후 고추장에 밥을 비벼 드셨다.

 

 호불호가 극명히 드러났던 쪼대로김밥.

그러나 하하호호 재미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그게 그렇게 맛있냐?”

묻고는 하셨으니 아무도 없었다면 그리 해 드시지 않으셨을까?


#윤봉길 #폭탄도시락 #멋대로김밥

 김밥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

그러나 참치나 간 소고기 베이컨을 잘라 조물조물 뭉친 주먹밥은 좋아하고...

그래서 각자 조무래기 손에 비닐장갑을 끼워주며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이름마저 비장한 윤봉길 폭탄김밥!
대한독립 만세!!!


 주먹밥 만들기 시범을 보이며 열연을 펼쳐 보이니 아이들 반응이 폭발적이다. 이렇게 눈물겨운 시도를  했던 이유는 입 짧은 둘째 때문이었다.

자고로 음식은 맛있게 먹어야 살로 가는 것인데 이 녀석은 연명 수준으로 밥을 먹으니 어찌하면 잘 먹게 할 수 있을까? 맛있게 먹게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었던 것이다.


 윤봉길폭탄김밥의 뇌관에 해당하는 재료는 고단백 재료인 참치멸치마요, 소고기 볶음, 데리야끼 닭살 볶음으로 초대리와 참기름으로 양념한 밥으로 위장해 동그랗게 만든다.

그리고 잘게 부순 김가루에 잘 굴려주면 마치 폭탄처럼 새까만 김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글동글 폭탄은 접시가 아닌 곽처럼 생긴 도시락 같은 용기에 담아 먹어야 현장감이 산다.

“모두 엎드려”
“으악~”

 몸을 사리지 않는 리액션 덕에 폭탄김밥은 아이들 입으로 쏙쏙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엄마의 마음이었다.

식빵롤, 사각 김밥... 김밥의 변신은 무죄!...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

 이마저도 짜릿하지 않다면 변형 김밥, 식빵롤, 사각김밥 등으로 창의력을 배가시켜본다.


 친정엄마의 쪼대로김밥과 나의 윤봉길폭탄김밥 및 변형 혹은 아류김밥들의 발전사는 자식사랑에 기인한 것이었으니 더 많은 발전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대충 말아먹어도 맛있는 김밥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 탄단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 배경사진: 아이들과 맛있게 해먹은, 이름하여 윤봉길폭탄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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