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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Apr 12. 2018

결국은 나 때문이었다.

삶은 내가 나를 채워가는 것

여러분의 마음은 건강하십니까? 

요즘 우리 모두에겐 몸의 피로보다 더 피로한 건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약 한 알 털어먹고 내려가는 소화제처럼, 15분이 지나면 서서히 잊히게 하는 진통제 한 알처럼 단돈 3천 원으로 마음도 한 알의 약으로 다독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요. 간단한 약 한 알 없다는 것도 참 안타깝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의 병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의 병을 갖고 살며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매번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Kusama Yayoi)'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 마츠모토시 출생의 여성 설치 미술작가입니다. 그녀는 평범한 유년시절이 아닌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그녀가 작품을 해오는 이유도 그녀의 평범하지 못했던 유년시절 때문이지요. 애초부터 그녀는 계획에 없던 원치 않았던 아이였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태어나 비상식적이라 생각될 만큼 보수적인 부모 아래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부터 틀어졌으며, 외향적인 아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은 잔혹하리만큼 지독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어린 시절은 쿠사마 야요이에게 좋은 결과가 아닌 강박증, 환각, 편집증 등의 정신병까지 오게 되었죠. 특히 정신병의 잦은 증세로는 환각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환각 중에서도 동그라미 무늬가 수없이 테이블부터 시작해 생겨나더니 그녀의 몸 전체를 감싸고 동그라미에 뒤덮인 환각 증세가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동그라미 무늬, 도트가 그녀의 작업 패턴이 되었고 10세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에서도 마치 환각 증세에서 본 듯 어머니의 얼굴과 몸에 도트가 뒤덮인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의 병이 잊혔고,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하는 활동이 그녀에게는 일종의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꾸준히 작업을 진행하였고, 1948년 교토로 가서 일본화를 공부하지만 일본 전통적인 화법에 흥미를 잃고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당돌했던 그녀는 1957년 미국으로 떠나면서 미국에서 쇼킹할 퍼포먼스와 작업을 통해 미술계를 놀라게 합니다. 당대 최고로 대우받던 앤디 워홀, 클래스 올덴버그, 조지 시걸 등 작가들과 맞먹는 이슈가 되죠. 또한 그녀가 많이 의지했던 조셉 코넬은 함께 작업도 했던 동료이지만, 둘은 아주 친했던 친구였고, 남자를 두려워했던 그녀의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전해집니다. 조셉 코넬이 세상을 뜨고 심란한 미국 생활에 견디지 못하고 고국으로 1973년 돌아오게 됩니다. 신경 쇠약으로 그녀는 더 약해졌고 결국 제 발로 정신 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녀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을 자처했고, 현재까지도 정신 병원에서 거주하며 자신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는 예술이 가장 좋은 약이었습니다. 15분 만에 평온해지는 빠른 진통제처럼 그녀에게 예술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렇기에 나이 90이 된 지금도 그녀가 계속 예술 속에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쿠사마 야요이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무수한 점 (dot)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녀는 어린 시절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그 계기에 많은 점들이 이루어진 패턴을 환각으로 보게 되었고, 그것은 곧 예술의 영감이 됩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트는 큰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요. 하얀 캔버스 위에 그녀는 늘 채워갔습니다. 한 날의 공허한 마음도 한 날의 아픈 마음도 도트를 하나하나 그려나가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여가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은 대부분 캔버스의 사이즈가 상당히 큰 작품들이 많습니다. 194센티미터의 정사각형 캔버스 작업을 많이 하는데 4면을 모두 휠체어를 타고 돌며 혼자 조용히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아마 그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편안한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캔버스 속 꽉 찬 도트, 도트로 빈 틈 없는 호박, 모든 면의 거울에 비친 도트 빛을 통해 무한한 도트를 만들어 내는 거울의 방까지 그녀에게는 도트만큼 없어서는 안 될 것 바로 '채움'입니다. 어린 시절 따뜻한 사랑에 목말랐던 그녀의 외로운 마음이 아마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녀는 그 많은 작품들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시점이 왔고 그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표현하였습니다. 캔버스 위에만 그리던 도트, 혼자서만 그렸던 그 도트를 누군가와 함께 그려나가고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위 오른쪽 그림의 <무한한 거울의 방>을 통해 관객에게까지 닿을 수 있도록 도트와 채움을 더 넓게 확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관객과의 완전한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소멸의 방>은 관객에게 알록달록한 색채의 도트 스티커를 나눠주고, 하얀 방에 스티커를 붙이며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어느새 하얀 부분 없이 도트는 꽉 차게 됩니다. 아마 그녀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공허함 없이 알록달록 꽉 채워지길 바랬던 것 아닐까요. 


그녀는 밥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작업에만 전념한다고 합니다. 194센티미터의 정사각형을 나이 90인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스케치와 컬러링을 반복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한 평생 그렇게 살아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병을 가장 잘 알았습니다. 어떨 때 가장 아픈지 어떨 때 가장 덜 아픈지 자신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작업들도 힘겹지만 해냈을 겁니다. 관객을 위한 전시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한 평생 힘들었지만 견뎠던 것은 결국 자기 자신 때문이지요. 참 현명한 자기애가 아닐까 합니다. 한 알의 약이 아닌 의사의 한 마디가 아닌 내가 나를 진단하고 내가 나를 다스리는 일, 우리 모두에겐 '나'만 한 명의는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릴 때에는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필요한 그것으로 채워가십시오. 누군가에게 기대어 마음의 다독임을 의지하기 이전에 나를 먼저 들여다보았다면 우리의 마음의 병도 이리 커지진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몸과 마음의 피로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낸 우리의 흔적이고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발버둥이 , 버티고 살아나가는 이 모든 날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결국 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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