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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Apr 10. 2018

나, 너 그리고 지금 여기

당신과 나의 선택에 온전한 집중을 할 때

주말 동안 저는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영화 <The lover>을 보았습니다. 1992년 장 자크 아노의 영화이지요. 주말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여 소개가 되곤 합니다. 소개가 될 때마다 첫사랑과 연인에 대한 대표적인 영화로 언급됩니다. 그래서 꼭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요. 여러분들께도 추천드립니다. 연애 현재 진행형이신 분들에게도 참 좋은 영화가 될 테고, 단 연애를 쉬고 계시는 분들 저와 같은 분들이라면 조금 위험합니다. 연애세포 폭 발각입니다. 삐이이이 주의!

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를 좀 해보죠.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가난한 프랑스 10대 소녀와 부유한 중국 남자와의 짙은 로맨스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배경은 베트남으로 그려집니다. 소녀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날려 가난한 삶 속에 말썽만 부리는 오빠와 순하디 순해서 늘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을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소녀는 학기가 시작되고, 메콩강을 건너 사이공에 학교로 넘어가는 배 위에서 부유한 남자와 만나게 됩니다. 남자는 배 위에서 남성용 중절모를 쓰고 우수에 찬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소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차를 태워주겠다는 남자의 제안을 수락하고서 두 사람은 차 속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며 헤어지게 됩니다. 통성명도 인사도 없이 알 수 없는 눈빛만 교환하고서는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 남자는 소녀를 잊을 수 없어 소녀의 학교 근처를 맴돌다 서로를 발견합니다. 그 뒤로 서로는 빠른 전개를 통해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후 감정이 커질수록 함께 커지는 서로의 격차와 주변의 방해 속에서 서로에게는 결국 상처만 남게 되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을 제대로 지켜주며 서로는 눈물을 머금고 서로를 가슴속에 묻으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 속에서 패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컸던 것 같습니다.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해주기도 하지만, 또 잘 표현되는 한 가지 바로 캐릭터의 상황이죠. 가장 표현하기 쉬운 차이는 바로 '빈부 차이'입니다. 소녀와 부유한 남자의 빈부 차이는 패션에서도 차이가 잘 표현이 되어있습니다. 그런 차이점을 중심으로 얘길 나눠보겠습니다.

주인공인 프랑스 소녀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한 톨의 부족함 없이 섬세하게 잘 표현한듯합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사춘기가 지나고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에 놓여 소녀에서 숙녀로 가는 그 단계의 나이 때를 너무나도 잘 표현했지요. 전체적인 실루엣에서 숙녀로서의 느낌을 갖추고 있지만, 귀엽게 묶은 작은 양 갈래 머리와 네이비 컬러의 투박한 리본 끈이 아직은 어리숙한 소녀의 느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시한 원피스에 벨트를 더해 하늘하늘한 얇은 코튼 원단이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보디라인 역시 숙녀로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소녀의 의상 컬러는 화려한 컬러가 아닌 베이지나 오트밀과 같은 차분하면서도 단아한 컬러입니다. 또한 메이크업은 짙은 성숙한 이미지가 아닌 뽀얀 피부에 빨간 앵두 같은 입술 역시 소녀와 숙녀의 그 사이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너무 사랑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원망스럽기도 한 대상으로 소녀는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엄마의 부족한 사랑에 더욱 애처로운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역시 엄마에 대한 부족한 사랑에도 담담해지고자 하는 그녀의 표현법도 참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오로지 물건으로 기억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소녀가 입고 있는 옷과 남성용 페도라 그리고 엄마의 스틸레토 힐까지 그녀가 기억하고 간직하고픈 엄마의 사랑을 대신하는 패션 아이템들이기도 하지요. 그중에서도 페도라와 슈즈는 깊은 의미를 부여한 만큼 자주 착용을 합니다. 

페도라는 남성용이기에 당시 여자들은 쓰지 않았기에 처음 남자와 배 위에서 마주하면서 남자 역시 의아해하면서도 그런 모습에 더욱 관심을 보입니다. 소녀에게 페도라는 엄마의 사랑이자 한편으론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자신의 이탈 행동을 보여주는 하나의 매체가 되기도 합니다. 남자는 페도라를 쓴 소녀에게 '독창적이에요'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독창적이란 말은 아마 위에서도 언급했듯 남.다.른 소녀의 모습과 그에게도 또 관객에게도 그녀를 기억할 하나의 소스가 되는 듯합니다. 

얼굴에는 아직도 장난기 가득한 소녀의 모습이 가득합니다. 빨간 입술에도 성숙한 여인의 매혹적인 입술이기보다는 발그레한 볼과 앵두 같은 사랑스러운 레드 립의 소녀의 메이크업입니다. 영화 내내 제인 마치의 작은 얼굴과 볼록한 이마, 오뚝한 콧대, 예쁜 미소가 어찌나 소녀소녀 한지 프랑스 소녀라는 대표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영화에서 패션은 캐릭터의 성격뿐 아니라 패션이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빈부격차도 대놓고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언뜻 보았을 때에는 프랑스 소녀의 반짝거리는 장식성이 많은 슈즈는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고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전형적인 숙녀의 전유물 같지만, 줌인을 하면서 슈즈는 한 없이 초라해집니다. 낡고 찢어진 슈즈이지만 소녀에게는 숙녀가 되기 위한 과정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툰 소녀의 모습처럼 또 소녀의 삶처럼 상처가 많이 난 슈즈는 소녀 자체를 표현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반면 부유한 남자의  *옥스퍼드 슈즈는 마치 지금 막 사서 신은 새로운 슈즈처럼 광까지 나는 깔끔한 슈즈입니다. 늘 차로만 다니는 남자의 상황과 윤택한 그의 삶을 역시나 대신 표현해주는 상징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사람의 슈즈가 나타내는 각각의 상징성은 결국 연결을 지어보자면,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정반대에 놓인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까지 표현해주는 상징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슈즈
17세기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신고 다니던 스타일이라고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옥스퍼드라고 부르기 전에는 Balmoral로 불렸었고 지금도 발모랄은 이런 양식을 뜻하는 용어로 자주 쓰인다. 정장을 입을 때 함께 맞춰 입는 형태의 구두(Dress shoes) 중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이며, 구분 짓는 가장 주요한 특징은 끈 구멍 부분이 앞판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영화의 끝자락으로 가면서 그녀는 소녀보다는 이제 숙녀로서의 모습을 더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느끼면서도 그 아픔을 숨기는 모습이 사실 소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담담하게 참아내었기에 아마 그 모습이 더 애절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스텔톤과 페일톤, 베이지톤 계열의 중간 컬러의 의상을 즐겨 입던 소녀가 이제는 깨끗하고 심플하게 화이트톤의 장식성도 거의 배제한 체 담담하려 하는 그녀의 모습처럼 그녀의 패션도 닮아갑니다. 셔츠 드레스를 통해 곡선보다는 직선적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라인과 분명한 화이트 컬러와 좀 더 세련된 성숙미의 장식성을 더했던 벨트까지 누가 봐도 소녀보단 숙녀겠지요.

이렇게 보면 이제는 전혀 소녀티가 나지 않는 숙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소녀도 남자도 이별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알고 남자는 여전히 소녀를 놓을 수 없지만, 소녀는 이미 남자에 대한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 묻고, 오히려 아주 다른 고민과 남자가 없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합니다. 패션에 대한 큰 비중을 두고 한 장면은 아니겠지만, 날이 쌀쌀해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 위에 남자는 자신의 재킷을 올려줍니다. 그녀의 화이트 셔츠 드레스 위에 남자의 재킷이다 보니 자연스레 오버사이즈 재킷 또는 보이프렌드 재킷의 느낌 그대로 *숄더 로빙 한 모습이 꽤나 멋스러웠습니다. 부드럽고 깨끗한 코튼 드레스 위에 거친 질감의 아이보리 컬러의 리넨 테일러드 재킷의 조합은 그녀가 숙녀로 가는 과정의 마지막 정점을 찍은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숄더 로빙
니트 혹은 재킷을 어깨에 걸치는 스타일링 방법 중 하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고민을 해보다가도 영화에서도 그것은 고민일 뿐입니다. 아마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튀어나오려는 감정을 모른 채 해야 하는 우리의 애처로운 삶을 대리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누가 가르쳐줬을까요. 감정이 앞선 삶이 아닌 이성이 앞선 삶을 택해야 현명하다고 누가 그랬을까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오늘에 충실하고 하고픈 것을 하고 살라는 말에 열광하면서, 감정에 충실한 사랑은 위험하다고 합니다. 어떤 말이 맞는 말일까요. 물론 답은 없습니다. 선택일 뿐이지요. 


답을 찾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답은 '조화'입니다. 이성에게 쏠릴 필요도 감정에게 쏠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집중하십시오. 감정의 시간에는 감정에 충분히 집중하셔도 됩니다. 지금 이 순간 감정이 100% 필요한 시점이라면 특히 그것이 가슴설레이는 일이라면, 두 손끝이 찌릿찌릿한 감정의 뒤섞임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여러분의 선택에 완벽한 감정의 집중을 적극 추천합니다. 심장이 뛰는 이유를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나의 몰입 그 이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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