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땡땡 Apr 18. 2018

나에게 너란 존재, 너란 부재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의 모양은 영원히 같을 거란, 나의 착각

오늘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제작하여 2013년에 개봉한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전반적으로 많은 주제들을 다루지만 이번 글에서는 한 남자의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얘기하려고 합니다.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 남자는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미국의 아메리카 드림이 한참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던 그 시절, 주인공 개츠비는 무수한 소문들을 뒤로하고 아메리카 드림을 실현하는 한 인물이 되어 나타납니다. 개츠비의 부와 명예, 성공은 오로지 한 가지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사랑했던 여인 데이지 때문입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런 그녀를 개츠비는 다시 찾고자 합니다. 호화로운 집에 파티를 열기도 하고, 데이지 지인들을 통해 도움을 받고 결국 데이지를 만나 두 사람은 옛날처럼 잠시 사랑에 빠지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를 살아갈 데이지에겐 개츠비가 더 이상 세상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살아왔지만 최후는 쓸쓸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부로 나뉘는 인간사에 대한 차이도 극명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패션뿐 아니라 전체적인 장면의 구도와 컬러감으로도 많은 것을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스트 에그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부촌으로 그려집니다. 데이지의 부자 남편 톰 뷰캐넌의 대저택에서는 자연과 집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컬러감 또한 자연의 컬러와 베이지, 화이트톤의 부드럽고 우아한 컬러가 메인 컬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류사회를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전체적인 장면의 컬러와 동일한 컬러감으로 패션 역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우아하게 떨어지는 실크 소재, 베이지 컬러의 사용으로 아름답고 차분한 컬러 표현, 심플한 의상 위에 화려하게 반짝이는 액세서리로 자신들의 매력을 표현합니다.

데이지의 의상은 누구보다 부유한 자신의 신분을 잘 표현합니다. 컬러는 아이보리, 페일 핑크, 화이트 등 아주 차분한 컬러로 우아함을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인 실루엣과 패션 소품 등을 통해 상류층만의 장식성을 표현하는 의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데이지는 도시적인 여성의 느낌보다 사랑스럽고 가녀린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시폰, 레이스, 자수 장식 등의 페미닌 한 의상들을 주로 착용합니다.

파티 장면이 많아서인지 화려한 패션 부분에 참 볼 것들이 많습니다. 1920년을 배경으로 하기에 당시 사람들의 패션과 문화, 삶을 엿보기 좋은 영화이면서도 상류층과 서민들의 삶을 패션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데이지의 파티 의상은 기존에 데이지가 생활에서 입던 룩과는 달리 좀 더 화려하고 반짝이는 소재들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파티의 전반적인 의상들은 명품 브랜드 Prada에서 제작을 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던 의상들입니다. 또 데이지가 착용한 헤어피스와 팔찌, 반지, 목걸이 등 13가지의 주얼리는 Tiffany & co에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다른 각도로 살펴보겠습니다. 같은 신분 속 다른 느낌과 아예 다른 신분의 사람들의 패션을 보도록 하게겠습니다. 같은 신분이지만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인물의 의상을 먼저 보겠습니다. 톰 뷰캐넌과 데이지 부부의 친구인 프로 골퍼 조단 베이커의 패션을 살펴보겠습니다. 베이커는 프로 골퍼라는 타이 트을 지닌 사회적 위치를 갖는 여성으로서 사랑스러운 모습보다는 도시적이면서도 커리어우먼의 느낌을 의상에 더 표현하고자 한 듯합니다. 과한 장식성을 배제하고 심플함을 통해 여성이 갖는 멋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모키 한 아이 메이크업으로 시선을 끌고 쇼트커트의 중성적인 매력과 때마다 조화를 이루는 여성스러움이 데이지와는 다른 매력을 표현합니다.

 파티 장면에 워낙 힘을 썼다고 해야 할까요. 명장면 중에 하나라고 꼽아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개츠비가 주최로 열린 파티에는 많은 게스트들의 화려한 의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짧은 쇼트커트에 스모키 한 메이크업 그리고 화려한 주얼리로 장식한 여성들의 파티룩이 1920년대 상류층의 시대상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블랙을 메인 컬러로 잡고 나머지는 화려한 골드와 실버의 주얼리를 매치해 고급스러움을 더욱 부각하여 표현합니다. 이는 패션뿐 아니라 개츠비의 화려한 집 내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류층을 상징하는 컬러를 돌려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의 다른 시각은 바로 다른 신분을 표현하고자 빈부격차를 패션으로 나타낸 부분입니다. 톰은 머틀이라는 매춘부를 내연녀로 두고 있습니다. 한 날 머틀과 머틀의 친구들을 불러 광란의 밤을 보내며 그들만의 파티를 합니다. 개츠비가 주최했던 상류층들의 모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표현합니다. 전체적인 컬러와 매춘부들의 의상에서 그 표현은 더욱 짙어집니다. 보색 대비를 통한 컬러 표현과 여성들의 짙은 메이크업, 속옷이 드러나는 퇴폐적인 패션이 매춘부라는 그녀들을 대신 설명하고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어찌 되었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데이지와 개츠비의 재회는 데이지의 의상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사랑스러운 그녀는 개츠비와의 설레는 만남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파티와 데이트를 통해 데이지는 더욱 사랑스러운 그녀를 표현합니다. 데이지는 개츠비와의 재회와 톰 몰래 데이트를 즐기며 옛 추억을 되새기는 것에 설레어하지만 점점 더 화려 해지는 그녀의 패션에서는 결코 물질주의가 배경인 그녀 자신의 속물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얘기는 즉슨, 톰을 향한 사랑이든 톰의 배경이든 그녀는 톰을 완전히 버리고 개츠비에게 갈 수는 없음을 나타내는 복선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녀의 의상뿐 아니라 또 하나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바로 주인공 개츠비의 패션이기도 합니다. 개츠비는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위대한 인물로서 자신의 부유함을 패션으로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스트까지 갖춰 입은 정식 슈트를 즐겨 입고 경쾌한 컬러의 타이로 매치한 개츠비의 의상은 매번 멋스럽게 표현됩니다. 거기에 파나마 햇으로 스탠더드 한 슈트의 다소 절제된 분위기에 재미를 더하고, 지팡이를 통해 권위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표현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데이지의 사촌인 닉과의 친분을 쌓으며 데이지와 좀 더 가까워질 날들에 기대가 부푼 모습의 표현을 패션 속에 담아낸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데이지와의 만남을 만들어준 닉 덕에 데이지만큼이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채우고서 들뜬 마음과 긴장 속에 기다리는 장면입니다. 헤어짐 이후 첫 재회다 보니 어느 때보다 신경 쓴 날이 아닐까요. 화이트 슈트에 브라운 계열의 베스트 그리고 옐로 컬러의 타이를 매치했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개츠비만큼이나 긴장하여 빳빳하게 깃을 세운 셔츠의 빅 칼라입니다. 또 그의 커프스링크까지 크고 화려한 패션 소품은 그가 상류층이 되고 처음 데이지를 보는 자리인지라 더욱 자신의 부유함을 대신 표현하고자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데이지의 결정만이 남은 상황, 당연히 데이지는 개츠비 자신에게 모든 걸 버리고 올 거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앞으로 둘이서 핑크빛 사랑을 나눠갈 계획에 슈트 또한 핑크톤으로 예쁘게도 차려입었습니다. 톰은 핑크 컬러의 슈트를 입은 개츠비를 조롱하며, 훗날 개츠비 계획대로 핑크빛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의 핑크 컬러 슈트가 행운이 아닌 불행을 준 것이었을까요. 결국 개츠비는 혼자만의 영원한 사랑에 발버둥 쳐보지만, 데이지는 그의 마음과 같지 않았나 봅니다. 데이지는 톰과 함께 떠나버리고 개츠비는 홀로 죽음으로써 최후를 맞이합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장면과 패션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개츠비의 순수한 희망과 영원한 사랑에 대한 기대에 차가운 세상은 가슴 한 곳이 뻥 뚫리는 허무함을 낳습니다. 누구에게도 옳은 답은 없지만 왠지 개츠비라는 한 남자를 향한 위로가 더 짙어지는 영화임은 틀림없는 듯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영원함은 없습니다. 시간의 정도의 차이일 뿐이겠지요. 물론 그 시간의 차이는 마음의 차이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누군가의 존재 그리고 그 누군가의 부재가 특별하고 때론 참 아프기도 합니다. 영원할 수 없기에 그 존재에게도 부재란 것이 따라오기 마련이겠지요. 누군가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당신을 잘 알지만, 그 존재의 부재로 너무 속을 까맣게 태우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모두가 같은 모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사랑의 마음일지라도 그 누군가는 나와 다른 모양으로 변해갈 수 도 있습니다. 변한 모양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존재의 부재를 고집과 아집으로 붙잡지 않았으면 합니다. 존재와 부재는 나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력으로 불가한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니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결국은 나 때문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