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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Jun 01. 2018

인생의 균형이 흔들리는 당신에게

균형을 잡는 것은 언제든 팔만 올리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매주, 매일 고민이 됩니다. 고민이 고통에 이르기까지 하면 더 이상의 아이디어는 차단되더군요. 그래서 때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다 보면, 머리를 비우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로 머리는 다시 채워진다는 것을 느낀 이후로는 조급함이 많이 줄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큰 구멍이 생기거나 회의감을 느낄 때가 누구나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반드시 있는 시간이라 생각됩니다. 그럴 때 좋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입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2010년 영화입니다. 이탈리아, 발리, 인도 등 여행지로도 좋은 나라들의 배경이 이 영화를 즐기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 고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주인공 리즈는 부족할 것 없이 잘 살아오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누가 정해주지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인간의 일생에 정해진 틀처럼 살아가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리즈는 나무랄 것 없이 그 틀에 애법 정확하게 살아왔습니다. 아마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틀에 딱 맞추어진 삶으로 보였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리즈를 깊이 들여다보면 주체적인 삶이 아님을 리즈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남들 눈에 아무리 걱정 없는 삶이라 한들 자신에겐 이토록 걱정스러운 삶이 또 없습니다. 내 삶에 내가 없음을 느낀 리즈는 결국 회의감이 들던 자신의 생활과 결혼 모두 접어버리고 떠나게 됩니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인도, 발리까지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을 느끼고, 인도로 가서 명상과 기도를 통해 마음의 수양으로 행복을 느끼고 발리에서는 사랑을 통해 행복을 느낍니다. 복잡하게 마음속에 계산기 하나를 떡 하니 두고 살던 그녀에게 계산기가 아닌 진짜 두근거리는 심장이 새로운 삶을 제시합니다. 

안정적인 직장, 남편, 맨해튼의 내 집까지 어떤 것도 부족함 없이 잘 살아온 리즈의 생활 속 패션은 말 그대로 안정적입니다. 여유 있고 안정적인 그녀의 패션은 남들의 눈에 부러움의 대상이 충분히 될만합니다. 옷은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큰 도구인만큼 리즈의 안정적인 삶과 여유로운 삶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을 화려하게 연출하진 않지만 커리어우먼으로써의 분위기를 충분히 표현합니다. 화려한 실루엣은 아니지만 액세서리나 디테일을 통해 장식성을 표현한 매치가 보입니다.

전형적인 뉴욕의 커리어우먼을 표현했던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건물 숲 사이로 모던하면서도 화려하게 매치한 두 여성의 패션을 통해 장면 속 배경과 그녀들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리즈는 올블랙으로 매치해 모던하면서도 도시적인 모습을 표현했고 심플한 액세서리를 매치함으로써 절제된 세련미를 표현하였습니다. 반대로 리즈의 친구 델리아는 비비드 한 핫핑크 드레스와 페일톤의 핑크를 매치해 실루엣이 아닌 컬러로써 화려함을 표현합니다. 두 사람의 표현법은 다르지만 완전히 다른 컬러의 매치로 도시가 갖는 여러 모습의 화려함과 세련됨을 충분히 반영한 매치가 아닐까 합니다.

사랑에 대한 그녀의 감정도 그녀의 패션을 통해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혼을 준비하던 그녀에게 연극배우 데이비드를 만나게 되고 깊진 않지만 가볍게 연애를 시작합니다. 연하의 데이비드와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그녀의 옷차림에도 가벼움과 편안함이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형화된 삶과 틀에 맞추어진 결혼생활에 이혼이라는 선택을 앞두고 법적 공방 때문에 만난 부부의 모습은 딱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의 서로처럼 타협이란 것은 생각해보지 못할 만큼 그들의 옷차림에도 부드러움 없이 직선적인 라인의 슈트가 매우 차가운 공기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TPO에 따라 옷차림이 만들어지겠지만, 옷차림에 따라 TPO가 바뀔 수 도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니폼이라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유니폼을 착용함으로써 그에 맞추어진 행동과 제한이 만들어지듯 옷차림이 만들어내는 상황의 분위기와 감정이 존재함은 분명한 듯합니다.


TPO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경우)의 머리글자를 따온 일본식 영어 약자이다. "때와 장소, 경우에 따른 방법과 태도, 복장 등의 구분"을 의미하며, VAN의 창시자 시즈 겐스케가 발안한 개념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그녀의 새로운 삶의 균형 잡기는 그녀의 옷차림을 통해서도 이전과는 아주 다른 날들을 맞이할 것을 암시합니다. '여행'이라는 활동이 주는 옷차림의 변화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감정에서 출발하는 변화입니다. 옷은 어쩌면 외면의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내면이라는 감정의 변화까지 불러일으키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시작한 그녀는 직선적인 라인의 슈트나 실루엣이 드러나는 매치보다는 편안한 소재와 디자인, 액세서리를 통해 좀 더 자유로워진 리즈를 표현합니다. F/W가 아닌 S/S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좋은 포인트인 듯합니다. 여름휴가를 계획 중이시라면 리즈의 이탈리아 여행 룩에서 참고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마음의 수양을 하기 위해 선택한 인도행. 완벽히 그녀의 삶에 수양과 휴식이 자리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명상과 배움 그리고 깨달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비움이 필요했기에 그녀의 옷차림에서도 '비움'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루 중에 가장 편안한 옷을 입는 시간은 수면 시간입니다. 몸에 붙지도 않고 입은 듯 입지 않은 듯 박시한 사이즈만을 입고 쉬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쉬기 위해서, 편안해지기 위해서, 오늘의 고단함을 비우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요즘은 홈웨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ZARA나 H&M, FOREVER21과 같은 SPA 브랜드부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MUJI, 이마트의 PB브랜드인 JAJU까지 다양한 홈웨어 아이템을 매 시즌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휴식의 중요성과 함께 홈웨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단순한 옷차림이 아닌 홈웨어만의 고유성과 가치가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여행지인 발리에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자신이 바라던 삶의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마음의 평온함이 리즈의 옷차림에도 역시나 잘 표현이 되는 부분들입니다. 제일 처음 취재차 들렸던 발리에서의 옷차림과는 아주 다른 두 번째 방문은 그녀의 옷차림에서도 표정에서도 편안함이 드러납니다. 편안함을 표현해준 것은 단순한 디자인이나 실루엣만은 아닙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소재입니다. 나라의 계절 특성상 여름 소재인 린넨의 소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린넨과 모자나 가방에 쓰였던 라피아 등을 통해 자연적인 소재의 사용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지냈던 여행 속에 자연소재가 함께 더해졌기에 관람자로 하여금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장식성에서도 금속이나 인공적인 장식이 아닌 최소한의 장식과 자수와 나염 등 수공의 장식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맛있게 먹었고, 인도에서 마음 깊이 기도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발리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됩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리즈는 마음껏 먹던 자신의 모습에 칼로리를 걱정하며 움찔했고, 기도를 하면서도 잡생각에 잠겨 자신을 질책하는 과정을 경험했고, 마지막 사랑을 찾으면서도 조건을 계산하고 두려움에 주춤했습니다.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웠고 균형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리즈에게 카투는 마지막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사랑을 위해 균형을 잃는 것은 곧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한 과정이라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가르침을 통해 완벽하게 깨닫고 마지막 사랑하라 까지 마침표를 찍습니다. 사랑에 대한 주춤거림에서 처음으로 원색의 붉은 컬러의 셔츠를 착용합니다. 무너질까 두려웠던 혼란스러움이 붉은 컬러를 통해 그녀의 답답한 울분을 표현하였지만 이내 카푸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 편안해진 그녀의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감정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를 리즈의 옷차림과 매치하며 영화를 감상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균형을 잘 잡고 가다가도 조금만 팔이 내려가면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기도 하고 균형대에서 떨어지기도 할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팔만 올리면 다시 균형은 잡을 수 있습니다. 무너진 것 같아도 넘어진 것 같아도 언제든 다시 균형대 위에 서서 팔만 올리면 균형감을 갖고 안정감을 갖추겠지요. 정말 두려운 것은 무너질까 두려워 지금 당장 느껴지는 마음을 느끼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입니다. 무모할지 모르는 당신의 선택이 균형대 위의 당신을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이렇게 살라고 정해주지 않습니다. 

머리가 정해주는 방향이 아니라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새로운 균형을 잡는 길이 또 보일 겁니다. 늦어도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균형을 잡는 일은 팔만 들면 되는 일이니까요. 



                             비우고 무너뜨리면 끝이 아니라, 다시 채우고 쌓을 수 있는 시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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