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백세희(2018)

by 박독자

[너무 작은 보통의 우울]

언젠가 사소한 우울에 대한 글을 폐기했다.

쓰다 보니 나의 우울에 대한 기록은 큰 의미가 없어 뵀다.

그렇게 깊지도, 해답을 모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사소한, 일상적인 우울이었다.

힘들다고 하기에는, 이겨냈다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보통의 우울이었다.


[명복을 빕니다]

수개월 전 백세희 작가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는 책 제목이 함께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들어본 적 있다.

죽을 정도로 힘든데 떡볶이까지 먹고 싶을까,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그런 나를 잊고 지냈다.

지나 보낸 나의 우울을 초면인 듯 흘겨 보았다.

어두운 면을 드러낼 용기를 낸 작가에게 존경을 표한다.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의 저자에게 명복을 빕니다.


[주관적인 완벽주의]

책을 읽으며 크고 작은 내면의 응어리를 더듬었다.

완벽에 대한 주관적인 기준을 두고 스스로 옥죄곤 한다.

대표적으로 새벽수영.

새벽 수영 강습은 6시 시작이다.

자동차 예열 5분, 이동시간 10분, 강습 준비 10분

어림잡아 30분 전, 5시 30분 출발이다.

기상 후 정신 차리기, 세면, 준비물 챙기기 등

어림잡아 30분 전, 5시 기상이다.

이것이 나의 새벽 수영에 대한 주관적인 기준이다.


[내가 조금 밉다]

다만, 가끔 5시 30분 기상한다.

기상과 동시에 머릿속을 굴린다.

5분, 10분, 10분, 출발, 준비, 도착

,지각

아,, 지각인데

그냥 더 자야겠다.

그렇게 수영을 가지 않은 날이면 더 자도 피곤하다.

하루 종일 수영 못 간 사실이 맴돈다. (사실 안간 게 맞음)

그런 사소한 수영 스트레스가 계속 쌓인다.

내가 조금 밉다.


[지각 수영도 수영이다]

사소한 지각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느꼈다.

1시간짜리 강습도 다 이뤄냈지 못했니,

미리 가서 여유롭게 준비하지 못했니,

스스로 혼내는 기분이다.

생각을 조금 고쳐 먹었다.

늦잠과 수영은 별개이다.

늦게 일어나면 그만큼 늦게 가는 것이다, 그걸로 끝.

아쉽게도, 어쩌면 다행히도, 다음주 기회(?)가 생겼다.

지각 수영도 수영이다.

무척 개운하다.

[모든 산에 오르막이 있고, 모든 오르막이 정상을 향한다]

이런 우울과 관계의 스트레스를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만약 책 속의 상담 선생님이 쓴 책이라면 어땠을까?

사소한 이야기와 상담 전후, 사이의 내면을 볼 수 있을까?

해답을 알려주는 것은 직관적일 수 있다.

명쾌한 정답을 보며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다만, 모두가 정답을 이야기 할 때,

누군가 그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을 전달한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나누는 것은 공감,위로, 힘을 준다.

내 역경이 별 것 아니라고 무시하지 말라.

누군들 이 정도는 힘들지 않겠는가 과소평가하지 말라.

누가 이 정도로 힘들겠냐며 스스로 쏘아 붙이지 말라.

모든 산에 오르막이 있고, 모든 오르막이 정상을 향한다.

함께 그 산을 오르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이 함께함을,

먼저 간 이들의 발자국이 있음을,

누군가 당신의 길을 따라가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