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래퍼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뮤지션들이 음악 하는 거는 불을 삼킨 것 같아요. 뱉지 않으면 죽으니까."
녹음 버튼은 꺼져 있었다. 라이브 방송이 끝나고, 장비를 정리하면서 나눈 대화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100명이 넘는 뮤지션을 인터뷰했다. 힙합, R&B, 재즈, 일렉트로닉, 인디 록. 장르는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음악을 하고 있었다. 돈이 되지 않는데 계속하고 있었다. 왜냐고 물으면 대부분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해야 해서.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불을 삼킨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중학교 3학년, 2009년이었다. 방과후 기타 수업에서 재즈 기타리스트를 만났다. 그 전까지 재즈는 오락실 리듬 게임에서나 듣던 장르였다. Ez2dj의 'Complex', 팝픈뮤직의 'Ergosphere'. 게임 속 음악이 어느새 내 머릿속에 불을 지폈다. 첫 재즈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무대 위 뮤지션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즉흥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아, 나는 저걸 해야겠구나.
15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음원 유통사의 매니저이자, 보이는음악라디오(VMR)의 대표다. 왜 이렇게 됐냐고? 음악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
스태프가 관객보다 많았던 공연이 있다. 카페에서 연주하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적도 있다. 그래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왜? 삼킨 불을 뱉어야 했으니까.
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63명의 뮤지션이 마이크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첫 곡을, 첫 악플을, 첫 공연을, 첫 실패를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헤드셋 마이크로 첫 녹음을 했다고 했고, 누군가는 유튜브에 올린 음악에 "초딩이 만든 거 아님?"이라는 댓글을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부모님께 마이크 사달라고 몇 년을 졸랐다고 했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돈 버는 건 포기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깨달았다.
우리는 남들보다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다. 기쁠 때 더 기쁘고, 아플 때 그 아픔을 더 집요하게 느낀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직접 만들어야 한다. 직접 연주해야 한다. 직접 불러야 한다.
그게 고통이다. 동시에 그게 유일한 구원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뮤지션이라면, 아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뮤지션이 아니라면, 어쩌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 그들이 안정적인 직장 대신 불확실한 무대를 선택하는지.
왜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을 계속 만드는지.
왜 새벽 두 시에 혼자 작업실에 앉아 있는지.
불을 삼켰기 때문이다.
뱉지 않으면 죽으니까.
임상진 (Dj.Girin)
보이는음악라디오(VMR) 대표
재즈 피아니스트
2025년,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