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녹음의 기억

by DjGirin

모든 뮤지션에게는 첫 녹음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대부분 창피하다. 장비는 형편없었고, 실력은 더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헤드셋 마이크와 악플


발악은 헤드셋 마이크로 첫 녹음을 했다.


"그냥 헤드셋 마이크 있는 헤드셋에 녹음을 하고, 그냥 간단한 믹싱 해가지고 막 유튜브에 올리고 그랬었는데. 와, 완전 악플이. '이 뭐냐 이거', '이거 정말 초딩이 만든 거 아니냐' 이런 댓글을 많이 받아서."


그는 악플을 보고 깨달았다. 장비가 문제라고.


"아, 그럼 좀 장비를 좀 갖춰야겠다. 졸랐죠. '마이크 좀 사 달라, 마이크를 사달라, 마이크 사달라' 해서. 좀 구색을 좀 갖추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 들어가게 됐고."


3년이다. 마이크 하나 사달라고 3년을 졸랐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연을 뛰기 시작하니 돈이 조금씩 벌렸고, 그 돈으로 스스로 장비를 샀다. 헤드셋 마이크에서 시작해서.




30달러짜리 아마존 마이크


단테 파크는 미국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의 첫 장비는 더 소박했다.


"아, 이거 되게 로우 퀄리티한 믹스 사운드에 좀 찢어지는 듯한 사운드들. '야, 나도 이거 할 수 있겠어' 하고 무작정 아마존에서 30불짜리 마이크 사고, 오인페도 없이 그냥 사운드 카드 맥북에다 꽂는 거 하나 사 가지고. '야, 비트 하나 찾아보자' 하고 유튜브에 찾아서 바로 가사 쓰고, 거의 한두 시간 만에 녹음을 했던 거 같아요."


오디오 인터페이스도 없었다. 유튜브에서 비트를 찾았다. 그리고 두 시간 만에 곡을 완성했다. 퀄리티가 어땠을지는 묻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인프라소닉 UFO


제이 클레어도 비슷했다.


"혼자 돈 모아 가지고, 오인페 살 돈 없으니까 USB 마이크 사가지고. 아직도 기억나요. 인프라소닉 UFO. 그거 사가지고, 믹스도 하나도 못하는데 그냥 녹음했던 기억이 나네요."


인프라소닉 UFO. 입문용 USB 마이크의 대명사다.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이 마이크를 거쳐 갔다. 믹싱은 몰랐다. 그냥 녹음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당근마켓에서 산 장비


오유는 작년에야 처음으로 홈레코딩 장비를 샀다.


"그때 딱 홈레코딩이라는 거를 처음 해서, 장비를 사서 처음으로 녹음하고 그랬었던 거 같아요. 작년에."


처음 장비를 샀을 때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완전 당근으로 구입했거든요."


당근마켓. 중고 거래 앱이다. 새 장비를 살 돈이 없으니 중고로 시작한다. 그게 현실이다. 로잘린 송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원하는 신디사이저가 너무 비싸서 저렴한 대안을 찾았다.


"모델 D 너무 비싸고. 그래서 그 베이스를 좀 비슷하게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할 수 있는 게 그랜마더인 거예요. 그래서 샀어요. 근데 너무 좋은 거예요."


비싼 장비가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좋은 장비가 없어도 음악은 시작할 수 있다. 다만 조금 더 고생할 뿐이다.




혼자서, 혼자 받고, 혼자 하고


림서림은 홈레코딩의 고독을 말했다.


"녹음은 제가 그냥 홈레코딩처럼 알아서 그냥 혼자 하고, 혼자 받고, 혼자 하고, 혼자 받고, 혼자 하는데. 사실 녹음할 때 많이 무너져요."


혼자 하고, 혼자 받고, 혼자 하고, 혼자 받고. 반복이다. 작업실에 혼자 앉아서, 녹음하고, 듣고, 다시 녹음하고, 다시 듣는다. 마음에 안 든다. 다시 녹음한다. 또 마음에 안 든다. 무너진다.


"사실 녹음할 때 많이 무너져요. 왜냐면 너무 이렇게 하고 싶은데, 이거보다..."


문장이 끊겼다. 하고 싶은 소리가 있는데, 나오는 소리는 다르다. 그 간극 앞에서 무너진다. 모든 뮤지션이 겪는 일이다.




네이버 카페에 올린 첫 곡


베니는 해외 힙합 인스트루멘탈을 추출해서 랩을 얹었다.


"처음에는 해외 랩의 인스트를 추출해 가지고, 인스트에다가 랩을 만들고, 그거를 네이버 카페에 올리곤 했었거든요."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 사운드클라우드가 대중화되기 전, 한국의 아마추어 래퍼들은 네이버 카페에 음악을 올렸다. '랩이라고 하는 네이버 카페', '힙합 플레이어'. 거기서 피드백을 받고, 욕도 먹고, 가끔 칭찬도 받으며 성장했다.




땀범벅 녹음


발악은 군 휴가 중에 동아리방에서 녹음을 했다.


"이 노래를 군대 안에 있을 때 휴가를 나와 가지고, 울산대학교 힙합 동아리 동아리방에서 녹음을 했어요."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없었다. 땀범벅이 됐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녹음 파일을 들으면 땀 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물방울이 튀는 소리가 섞여 있을 것 같다고.




첫 녹음의 의미


나도 첫 녹음을 기억한다.


대학교 1학년, 학교 연습실. 피아노 앞에 조그만 녹음기를 놓고 연주했다. 들어보니 엉망이었다. 박자가 흔들렸다. 음이 뭉개졌다. 하지만 그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다.


첫 녹음은 언제나 부끄럽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 있어야 두 번째 녹음이 있고, 세 번째 녹음이 있다. 악플이 달리고, 장비를 바꾸고, 조금씩 나아진다. 3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헤드셋 마이크로 시작한 래퍼가 있다. 30달러짜리 아마존 마이크로 시작한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당근마켓에서 중고 장비를 산 보컬리스트가 있다.


모두 거기서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운명처럼 찾아온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