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걸 해야만 했나

by DjGirin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부모님이 시킨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권한 것도 아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해야 했다.


왜?




불을 삼킨 것 같다


대니딕은 뮤지션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뮤지션들이 예술 하는 거는 불을 삼킨 것 같다. 왜냐면 뱉지 않으면 죽으니까. 이걸 표현하지 않으면 여기서 썩어요. 뮤지션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가 막 돈 준다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해야 돼. 왜냐면 불 삼켰기 때문에, 뱉어야죠."


불을 삼킨 것 같다.


이 표현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돌았다. 63명의 뮤지션을 인터뷰하면서 들은 수많은 표현 중 가장 정확한 묘사였다. 뱉지 않으면 죽는다. 표현하지 않으면 썩는다.


그는 덧붙였다.


"예민하게 태어나서 그래요. 남들이 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나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서 내가 느낀 바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이 예술만 하면서 살진 않잖아요. 일상 생활도 해야 되는데, 일상 생활에서도 그런 게 보이는 거죠. 남들보다 아플 때 그 아픔을 더 집요하게 더 느끼고, 기쁠 때 진짜 너무 기쁘고."


예민함. 그게 재능이자 저주다.




샌드백이자 친구


후카는 음악을 샌드백에 비유했다.


"제가 유일하게 풀 수 있는 공간이 저는 음악이에요. 저한테는 음악이 어떻게 보면 친구이자 샌드백인 느낌. 그래서 랩을 안 하면 저는 좀 많이 힘듭니다."


샌드백. 신선한 표현이었다.


사람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 감정들을 어딘가에 쏟아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운동이고, 누군가에게는 술이다. 후카에게는 음악이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안 하면 저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버틸 수 없다. 음악이 없으면 삶 자체가 버텨지지 않는다. 그건 취미가 아니다. 생존이다.




유일한 숨구멍


아리아제이는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편이라고. 그런데 음악 앞에서는 달라진다.


"진짜 이성적인데도 불구하고 음악을 할 때만 감정적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음악이 제 유일한 감정적 숨구멍이자 낭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을 대할 때는 유일하게 공감도 잘되고, 감정적으로 기대기도 하고, 의지도 하고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숨구멍.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그녀에게 음악은 숨 쉬는 행위다. 일상에서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면 질식한다. 음악이라는 숨구멍을 통해 감정을 내보내야 비로소 살 수 있다.




괴롭지만 멈출 수 없다


샘은 솔직하게 말했다.


"창작은 고통이기도 하지만 또 나의 힘. 공감하지 않으시나요? 사실 괴롭지만 멈출 수 없죠."


괴롭지만 멈출 수 없다.


이 문장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창작이 즐겁기만 하다면 누구나 할 것이다. 창작은 괴롭다. 머리를 쥐어뜯고, 벽을 치고,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다.


멈추면 더 괴롭기 때문이다.


클라베도 같은 말을 했다.


"하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 걸요."


멈출 수가 없다. 그게 사랑이라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그냥 빠지는 것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탈출구


조우진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탈출구는 음악밖에 없다."


그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수학은 초등학교 때 포기했다. 일반고를 가면 대학 진학이 막막했다. 예술고등학교는 학비가 너무 비쌌다.


그런데 리라아트고등학교가 있었다. 특성화고라서 학비가 1년에 30만 원밖에 안 들었다. 거기서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탈출구는 음악밖에 없다. 제가 공부를 하려고 해도 남고밖에 갈 수가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음악은 열정이고, 누군가에게 음악은 숨구멍이다. 조우진에게 음악은 탈출구였다. 막힌 현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선택이 아닌 것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 때 재즈를 전공했다.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월급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무력해졌다. 몸이 무거워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피아노를 쳤다. 집에 있던 디지털 피아노. 손가락이 건반을 누르는 순간, 뭔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트이는 느낌.


그날 밤 곡을 하나 썼다. 형편없는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줬다.


다음 날도 쳤다. 그다음 날도. 결국 퇴근하고 밤마다 음악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공연을 했다. 손님 한두 명 앞에서 연주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음악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선택이 아니었다. 그냥 해야 했다.




해야만 하는 이유


63명의 뮤지션에게 물었다. 왜 음악을 하세요?


답은 다 달랐다. 하지만 결국 같은 말이었다.


"안 하면 죽으니까."

"멈출 수가 없으니까."

"이것밖에 할 줄 모르니까."

"이게 유일한 숨구멍이니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은 걱정하고, 친구들은 의아해한다.


그런데도 한다.


불을 삼켰기 때문이다.

뱉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뮤지션은 선택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냥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음악이 찾아왔고, 거부할 수 없었고, 결국 삼켜버렸다.


이제 뱉어야 한다.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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