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무게

by DjGirin

음악은 혼자 하는 일이다.


작업실에 혼자 앉아 비트를 만든다. 새벽에 혼자 가사를 쓴다. 녹음 부스에 혼자 들어가 목소리를 뱉는다. 믹싱하고, 듣고, 수정하고, 다시 듣는다. 그 모든 과정이 고독하다.


뮤지션의 삶은 외로움과의 동거다.




서른이 되면 친구가 없어진다


탱크는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른이 되면 친구가 없어진대요. 각자 사는 게 바쁘니까. 만나면 돈 써야 되고, 내 짝도 찾아야 되니까. 얕은 관계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스물다섯까지는 친구들이 많다. 대학 동기, 고등학교 친구, 같이 음악하던 동료.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금방 모인다.


서른이 되면 달라진다. 누군가는 취직하고,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음악을 그만둔다. 각자의 삶이 바빠진다. 연락이 뜸해진다. 만나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런데 탱크는 말했다.


"근데 그래서 월요일이 기다려진대요. 음악하는 사람들 만나는 날이니까."


월요일. 아직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날.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 그날만큼은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곡 작업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공연은 언제 있는지, 요즘 뭘 듣는지.


외로움 속에서도 같은 외로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위안이다.




2평짜리 고시원


정아리아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더 큰 세상에서 더 크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올라왔는데, 처음에 2평짜리 안 되는 여성전용 고시원에 창문도 없고 에어컨도 안 되는 곳. 그래서 혼자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5년을 있었어요."


2평. 창문 없음. 에어컨 없음. 그 방에서 5년.


"그 하얀 벽은 잊지 못하겠어요. 그 정신병원 같던 그 방이었는데. 도저히 정신병이 안 걸릴 수가 없을 것 같아 가지고, 아침 6, 7시에 일어나서 근처 공원을 한 두 시간씩 뛰었어요. 매일."


매일 아침 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하얀 벽만 보이는 좁은 방. 창문도 없어서 밖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혼자, 5년을.


음악을 하려고 서울에 왔다. 연습하고, 오디션 보고, 공연하고. 그 모든 것의 대가는 2평짜리 고시원이었다.




혼자 하고, 혼자 받고


림서림은 홈레코딩의 고독을 말했다.


"녹음은 제가 그냥 홈레코딩처럼 알아서 그냥 혼자 하고, 혼자 받고, 혼자 하고, 혼자 받고, 혼자 하는데."


혼자 하고, 혼자 받고. 이 반복이 일상이다.


녹음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자기 자신. 다시 듣는 것도 자기 자신.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녹음하는 것도 자기 자신. 피드백을 주는 것도 자기 자신. 모든 과정이 혼자다.


밴드라면 다르다. 기타리스트가 있고, 베이시스트가 있고, 드러머가 있다. 서로 소리를 주고받는다. 누군가 실수하면 다른 누군가가 커버한다.


하지만 많은 인디 뮤지션은 혼자다. 작사, 작곡, 편곡, 녹음, 믹싱, 마스터링. 심지어 앨범 커버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한다.




살아 있는 분들


제이햇은 졸업 후 달라진 풍경을 말했다.


"졸업도 하니까 더더욱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랑 대학교 동기 모임을 하게 됐어요. 그랬더니 음악 안 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아지고. 그러면서 '주변 음악 동료들 지금까지 살아 있는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지고 음악을 할까' 궁금했거든요."


살아 있는 분들. 아직 음악을 하고 있는 분들.


졸업하고 몇 년 지나면 동기들 대부분이 음악을 그만둔다. 취업하거나, 다른 일을 찾거나, 그냥 현실에 부딪혀 포기한다. 모임에 가면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에 음악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홀로 남겨진 느낌. 모두가 떠난 전쟁터에 혼자 서 있는 느낌.


'나만 아직도 이걸 하고 있네.'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해받지 못하는 삶


뮤지션의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라서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서다.


명절에 친척들이 묻는다. "요즘 뭐 하니?" 음악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서 돈은 벌어?" 대답하기 곤란하다. 버는 달도 있고 못 버는 달도 있다. 안정적이지 않다.


부모님은 걱정한다. "그거 언제까지 할 거야?" 대답할 수 없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평생 하고 싶지만, 평생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친구들은 부럽다고 한다. "좋겠다,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니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이해가 없다. 새벽에 혼자 작업하는 고독, 공연 끝나고 빈 객석을 보는 허탈함, 음원 수익 몇 백 원을 확인하는 쓸쓸함. 그런 건 모른다.




공허한 밤


나도 그런 밤을 안다.


공연이 끝났다. 손님은 다섯 명이었다. 그마저도 지인이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밤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집에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가락이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났다. 그제야 조금 나아졌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음악을 하는 동안만 잊을 수 있다. 역설이다. 음악이 외로움을 만들고, 음악이 외로움을 달랜다.




같은 외로움을 아는 사람들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다들 외로웠다. 2평 고시원에서 5년을 버틴 사람도, 서른이 되어 친구가 사라진 사람도, 혼자 녹음하고 혼자 듣는 사람도. 모두 같은 외로움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나눌 때, 조금 가벼워졌다.


VMR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다. 게스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채팅창에 공감의 댓글이 올라왔다.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완전 공감해요".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뮤지션의 삶은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외로움을 버티는 법


외로움을 버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정아리아는 매일 아침 뛰었다. 미치지 않으려고.


탱크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같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림서림은 그냥 계속했다. 혼자 하고, 혼자 받고, 혼자 하고, 혼자 받고.


나는 피아노를 쳤다. 외로울 때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울리면 조금 덜 외로웠다.


방법은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버틴다. 포기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밀려와도 다음 날 다시 음악을 한다.


그게 뮤지션이다.


외로움을 짊어지고도 계속 걷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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