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공짜로 만들 수 없다.
장비가 필요하다. 녹음실이 필요하다. 믹싱과 마스터링에 돈이 든다. 뮤직비디오를 찍으려면 더 든다. 그런데 음악으로 돈을 버는 건, 돈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뮤지션의 삶은 돈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하고 싶은 것과 돈이 되는 것
제이햇은 이 딜레마를 정확하게 짚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돈이 안 들어온다. 돈이 들어오는 쪽을 계속 하자니 현타가 와요.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현타. 이 단어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돈이 안 된다. 돈이 되는 음악을 하면 영혼이 빠진다. 둘 사이에서 매일 찢어진다.
그는 결국 답을 찾았다.
"일정한 벌이가 있어야 내 음악을 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겠다. 지속 가능한 음악의 삶."
지속 가능성. 그게 핵심이다. 당장 대박을 내는 게 아니라, 오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
만인에 대한 투쟁
프로듀서 한상태는 더 냉정하게 말했다.
"뮤지션은 고고한 문제가 아니에요. 늘 언제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사회 안전망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사회 안전망이 없다. 4대 보험이 없다. 퇴직금이 없다. 연금이 없다. 아프면 수입이 끊긴다. 일이 없으면 굶는다.
그래서 그는 영업도 한다.
"음악은 예술이 아니라 생존이래요. 그래서 영업도 해야 되고, 술자리에서 꼬드겨서 계약도 따내고. 봉구비어에서 맥주 마시다가 첫 음반 계약 체결했대요."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현실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팔아야 한다. 알려야 한다. 계약을 따내야 한다.
가성비의 지혜
한상태는 실용적인 조언도 남겼다.
"사람들이 음악 들을 때 어떤 스튜디오에서 누가 마스터링 했는지 안 들어요. 곡이 좋냐 안 좋냐, 멜로디가 기억에 남냐 안 남냐. 제작비 줄일 수 있으면 줄이고, 차라리 무대 의상에 돈 쓰래요. 보여지는 게 더 중요하대요."
가성비. 인디 뮤지션에게 필수적인 개념이다.
비싼 스튜디오에서 녹음한다고 곡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유명 엔지니어가 마스터링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채는 것도 아니다. 청취자는 그런 걸 모른다. 그냥 좋은지 안 좋은지만 안다.
한정된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그 선택이 생존을 결정한다.
앞가림
최유담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었다.
"돈 벌어야죠. 앞가림 해야 됩니다."
앞가림. 이 단어가 VMR 인터뷰에서 여러 번 나왔다.
"앞가림 파이팅. 정말 앞가림 진짜 모든 음악하는 사람들의 바람 아닐까요?"
그는 덧붙였다.
"막 투잡이 꼭 필요한 거 같다. 세컨 잡이라고 표현하신 분도 있었고. 그런 거 이제 이야기 들으면서, 아 이게 진짜 자본주의고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구나. 그런 걸 많이 느꼈던 거 같습니다."
음악만으로 먹고살기 어렵다. 대부분의 인디 뮤지션은 다른 일을 병행한다. 세컨 잡. 투잡. 부업.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음악 외의 수입원이 필요하다.
알바와 음악 사이
오유는 5년 동안 카페 알바를 했다.
"성인이니까 부모님의 도움을 이제 받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알바 열심히 카페 알바해서. 카페 알바 5년 참고하시면 되고요."
Yimae는 냉동창고에서 일했다.
"알바를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해야 되잖아요. 살아야 되니까. 냉동창고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에 코웨이라고 레퍼블릭에 나오셨던 형님하고 연이 닿게 됐거든요."
해일럽은 학생식당에서 칼국수 면을 뽑았다.
"저도 작년까지 알바 열심히 했어요. 막 학생 식당에서도 일하고요. 저 칼국수 면도 되게 잘 뽑아요."
그녀는 지금은 알바를 하지 않는다.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근데 지금은 안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여러분들의 하나하나의 관심이 저에게 이제 불러일으킨, 그래도 공연만 어떻게든 해서 생계형 음악까지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거 같아요."
생계형 음악. 음악만으로 먹고사는 것. 그게 많은 뮤지션의 꿈이다.
회사 다니면서 음악하기
린치핀은 회사원 래퍼다.
"안녕하세요. 회사 다니면서 음악하고 있는 회사원 래퍼 린치핀이라고 합니다."
그는 낮에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 음악을 한다.
"지금 저의 상태에서 음악하는 삶이 어떠냐고 물어보시면, 솔직히 버겁고 힘들긴 한데. 그래도 퇴근하고 어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거, 그걸 할 의지가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축복받은 일이다."
버겁고 힘들지만 축복이다.
회사에서 8시간 일하고, 집에 와서 또 음악을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이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음악만으로 당장 먹고살기 어렵다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그 위에서 음악을 한다. 느리지만 지속 가능하다.
플랜B
KESSIA는 공대생에서 예대생으로 전환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근데 현실적으로 플랜B가 필요했대요. 아티스트로 안 되더라도 뭔가 할 수 있게."
플랜B. 예비 계획.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이 있어야 부모님도 안심하고, 본인도 불안하지 않다.
"학교 나오면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고, 부모님도 좀 더 믿어주시고."
플랜B가 있으면 플랜A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준비가 있으면, 지금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할 수 있다.
도전과 안정 사이
조우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대학 때 밴드 제의가 들어왔다. 합류하면 알바를 그만두고 음악에 올인해야 했다. 고민이 됐다. 교수님께 여쭤봤다.
"교수님이 딱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저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도전하는 애들은 마흔 넘어서도 음악하고 있더라. 안정적인 걸 추구하는 애들이 다 음악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알바를 그만뒀다.
"바로 알바할 때 사장님한테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연락을 다시 해서 아직 베이스 자리가 있냐?"
안정을 추구하면 음악을 그만두게 된다. 도전하면 계속할 수 있다. 담백한 진실이다.
물론 모두가 도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정 상황도 다르고, 경제적 여건도 다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진실이 있다. 언젠가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
돈과 예술의 균형
나도 이 딜레마를 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다녔다. 월급은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음악할 시간이 없었다. 퇴근하면 지쳐서 피아노 앞에 앉을 힘이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프리랜서가 됐다. 수입은 불안정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생겼다.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회사를 다니면서 음악을 하고, 누군가는 프리랜서로 살면서 음악을 한다. 누군가는 알바를 병행하고, 누군가는 음악만으로 살아간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 점검하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그들은 모두 돈 문제와 싸우고 있었다. 알바를 하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투잡을 뛰거나. 음악만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소수였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다. 아직 음악을 하고 있었다.
탱크가 말했듯이, 언제든 "쿠팡 알바 해야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음악을 멈추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지쳐도.
돈과 예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게 인디 뮤지션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