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창작자의 얼굴이다. 빈 화면 앞에 앉아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비트를 쌓는다.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퍼포머의 얼굴이다. 무대 위에 서서 관객을 바라보고, 소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자기 바깥으로 내보내는 작업이다.
이 두 얼굴 사이에서 뮤지션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탱크는 무대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거를 더 강조해서 연출하는 것. 그건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이 둘은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발라드를 좋아하지만 랩을 더 잘한다. 어떤 사람은 화려한 댄스를 좋아하지만 조용한 무대가 더 어울린다. 좋아하는 것을 고집하면 관객에게 닿지 않는다. 잘하는 것을 찾아야 전달이 된다.
그는 덧붙였다.
"곡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거예요. 결국 곡을 전달하고 싶다면."
곡마다 캐릭터가 다르다. 슬픈 곡에서는 슬픈 캐릭터가 되고, 신나는 곡에서는 신나는 캐릭터가 된다. 그게 퍼포머의 일이다.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곡이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연주자의 삶
조우진은 재즈 베이시스트다.
"저는 현재 재즈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연주 가능한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연주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조우진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곡을 연주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곡을 연주한다.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고, 밴드의 곡을 연주하고, 행사에서 요청받은 곡을 연주한다.
"특히나 또 사이드맨일 확률이 높은 악기이기 때문에, 멘트를 할 일이 되게 적거든요."
사이드맨. 주인공이 아닌 조연. 보컬이 빛나도록, 밴드가 울려 퍼지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 그게 연주자의 삶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삶을 사랑한다.
"연주를 하다 보면 연락을 많이 주세요. 일반인 분들이 '되게 잘 봤다, 되게 멋있었다' 이런 연락들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그래도 나름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좀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곡이 아니어도 감동을 준다.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나오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 그것도 뮤지션의 삶이다.
A부터 Z까지
케시아는 정반대다.
"저는 케시아입니다. 현재 솔로 아티스트로서 모든 프로듀싱, 작사, 작곡하며 싱어송라이터 활동 중입니다."
모든 프로듀싱, 작사, 작곡. A부터 Z까지 혼자 한다.
비트를 만들고, 멜로디를 얹고, 가사를 쓰고, 녹음하고, 믹싱 방향을 잡고. 심지어 뮤직비디오의 안무도 직접 짠다.
"안무도 다 짰던 앨범이어서, 퍼포먼스 비디오로 만들려고 했었어요."
그녀에게 아티스트와 퍼포머의 경계는 없다. 만드는 사람이 곧 보여주는 사람이다. 자신이 만든 것을 자신이 부르고, 자신이 춤추고, 자신이 전달한다.
나만의 색깔
케시아는 자신만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저만의 색깔이 있는 아티스트. '케시아 하면 이 노래지, 이런 느낌이지.' 그런 거를 분명하게 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만의 색깔. 모든 아티스트가 찾고자 하는 것이다.
"분위기는 좀 다르더라도, '케시아가 만든 거 같은데' 약간 이런 느낌을 좀 내려고 하고 있어요."
같은 장르 안에서도 수많은 아티스트가 있다. 그 중에서 '이 사람이다'라고 느껴지는 무언가. 그게 색깔이다. 그걸 찾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평생 찾지 못하기도 한다.
정체성을 찾는 과정
제이햇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나만의 색은 뭘까 했을 때, 이걸 억지로 만들어 내기보다 나에게서 찾는 것이 가장 좋겠다 해서, 내가 뭘 좋아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돌아봤어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것. 이미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정체성을 확립할 때 '이거다' 싶은 거를 찾는 과정은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는 거예요. 내가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봤던 거 같아요."
과거를 돌아본다.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언제 가장 나다웠는지. 거기서 힌트를 찾는다. 정체성은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전달하는 사람
최유담은 뮤지션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뮤지션은 되게 아이돌이어야 돼요.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들한테. 왜냐면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멋있는 모습을 공연하는 모습을 전달해 줘야 되기 때문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멋있는 모습을 전달한다.
뮤지션은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만족도 중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무대에 선다. 그래서 퍼포먼스를 한다.
"딱 한 순간에 보여 줄 것만 딱 보여주고 판을 내야 되니까. 4분, 그 4분 안에 꼬시려고 4개월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4분. 한 곡의 길이. 그 4분 안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그 4분을 위해 몇 달을 준비한다. 그게 퍼포머의 숙명이다.
연습과 환경
조우진은 살아남는 비결을 이야기했다.
"연습을 했던 게 첫 번째인 거 같아요. 그리고 내 실력이 안 되더라도 일단 연주를 다 받았어요."
연습하고, 기회를 거절하지 않았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도 연주를 계속 잡았어요. 밴드에이드 세 겹씩 감아 놓고 어떻게든 커버해 놓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연주 기록들도 쌓이고, 주변에 연락도 많이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어요."
물집이 터져도 연주했다. 실력이 부족해도 무대에 섰다. 그렇게 환경을 만들었다. 경험이 쌓이고, 인맥이 생기고, 연락이 온다.
"스스로를 환경에 던져 놓는 게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던져 놓는다. 편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어려운 곳에 자신을 던진다. 그래야 성장한다.
경계 위에서
나도 두 가지 얼굴 사이에서 고민했다.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때는 다른 사람의 곡을 연주했다. 스탠더드를 연주하고, 세션으로 불려가고, 반주를 했다. 그것도 보람 있었다. 좋은 연주를 하면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곡을 만들고 싶어졌다. 내 멜로디, 내 가사, 내 이야기. 그래서 작곡을 시작했다. 서툴렀다. 첫 곡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내 것이었다.
지금은 둘 다 한다. 세션으로도 연주하고, 내 곡도 만든다. 퍼포머이면서 아티스트다. 경계 위에 서 있다.
어떤 뮤지션이든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누군가는 창작에 집중했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갔다. 누군가는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무대 위에서 빛나고, 관객과 소통했다. 누군가는 연주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의 음악을 더 아름답게 표현했다.
어떤 방식이든 틀리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뮤지션인지 아는 것이다. 창작자인지, 퍼포머인지, 연주자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인지.
탱크의 말처럼,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케시아처럼 A부터 Z까지 할 수도 있고, 조우진처럼 한 가지에 집중할 수도 있다.
경계는 넘어도 되고, 경계 위에 서도 되고, 한쪽에 머물러도 된다.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것. 그게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