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는 이름이 두 개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과, 무대 위에서 불리는 이름. 본명과 예명. 진짜 나와 페르소나.
그 사이에서 뮤지션은 자신을 찾고, 숨기고, 드러내고, 다시 숨긴다.
왜 가면을 쓰는가
탱크는 공연할 때 돼지 가면을 쓴다.
"원래는 그냥 탈 같은 거를 쓰려고 했어요. 근데 공포스러운 가면을 좀 찾다 보니까 돼지 가면을 고르게 된 거였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 부여나 이런 건 없습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했지만, 가면을 벗는 연출이 필요했다. 공연 중에 가면을 벗으며 드러나는 얼굴. 그게 의미다.
가면은 숨기기 위한 게 아니다. 벗기 위한 것이다. 가리고 있다가 드러낼 때, 그 순간이 강렬해진다.
뮤지션은 무대 위에서 자신을 숨기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는 둘을 동시에 한다.
여러 개의 나
베니는 페르소나가 여러 개다.
파티차일드, 베니로켓, 베니. 각각 다른 캐릭터다.
"파티차일드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있거든요. 통통 튀는 음악을 하고, 핑크 색깔 헤어를 많이 하고. 악동 같은 느낌의 캐릭터를 제가 만들어 둔 거죠."
하지만 그 캐릭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캐릭터로 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얘가 할 수 있는 거는 여기까지인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베니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계속 페르소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 와중이죠, 지금도."
베니는 페르소나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형국아, 네가 음악을 만들어. 그럼 세상에 반은 너 음악을 좋아할 거고 반은 그걸 싫어할 거야."
그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이 파이를 다 가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내가 다 가질 수 있을까?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 다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한 사람이 모든 음악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개의 페르소나라면 가능하다. 밝은 캐릭터로 밝은 음악을, 어두운 캐릭터로 어두운 음악을.
밝은 겉과 어두운 속
케시아는 밝아 보인다.
"제가 되게 어떻게 보면 밝아 보이거든요, 사람이. 근데 저도 그런 적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누구나 그럴 수 있으니까."
그녀는 '싱크홀'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어두운 내면을 싱크홀에 비유한 곡이다.
"사회적으로 겪으면서 뭔가 감정이 어두워지는 거를 싱크홀이라고 대입해서 만든 곡이고. 사람이 누구나 어두울 때가 있다."
밝아 보이는 사람도 어두운 면이 있다.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는 뮤지션도 무대 아래에서는 무너진다. 그 간극을 아는 것이 뮤지션이다.
한성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저는 밝은 부분도 있고 또 어두운 부분도 공존하고 있거든요. 믹스테잎도 있어요. 완전 이모한 힙합, 어둡고 퇴폐적인 음악도 있는데. 또 밝은 음악도 할 수 있고."
한 사람 안에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그걸 억지로 하나로 합치지 않는다. 둘 다 표현한다. 그게 다채로움이다.
일상과 음악의 분리
하우지인더룸은 신비주의를 추구했다.
"제가 지금까지 어디 유튜브라든가 미디어에 노출을 잘 하지 않았어요. 얼굴 없는 음악과 이런 걸로 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고."
얼굴 없이 음악만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국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말했다.
"업으로 생각하다 보면 음악을 들을 때도 즐기는 것보다 기술적으로 들으려고 하고. 이걸 작업을 일처럼 느껴 버리면 오히려 작업이 안 되는 거 같아."
취미로 시작한 음악이 일이 되면, 즐거움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음악을 취미처럼 대하려 한다.
"나는 이거를 그냥 재미로 만들어 볼 거야. 근데 만들어지면 낼 거야. 그냥 이런 느낌으로 작업을 하는 거죠."
뮤지션의 나와 일상의 나. 그 둘을 분리해야 건강하게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
본명으로 돌아가기
송원석은 예명을 버렸다.
원래 이름은 '백효빈'이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든 예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줬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저는 어디 가서 '안녕하세요 백효빈입니다' 이러는데 아는 지인들은 '원석아, 원석아' 이러는데. 이름이 충돌하더라고요."
결국 본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 이름이 어디 가서 나쁜 게 아닌데. 내가 이름을 숨겨야 할 만한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데.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예쁜 이름으로 잘 되어야 되지 않겠나."
예명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때로는 진짜 자신과 멀어지게 만든다. 송원석은 본명으로 돌아가면서 온전한 자신으로 음악을 하기로 했다.
"본명인 원석으로 활동을 하시면서 진짜 온전한 나 자신, 내 음악 더욱 더 펼치시는 그런 행보를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내가 했던 말이다. 진짜 나로 사는 것. 그게 때로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다.
가면 뒤의 진실
나도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다르다.
무대 위에서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 있게 연주한다. 관객을 바라보고 웃는다. 마치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무대 아래에서는 다르다. 다음 달 월세 걱정을 하고, 음원 수익 몇 백 원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고, 새벽에 혼자 불안과 싸운다.
어떤 게 진짜 나인가? 둘 다 진짜다.
무대 위의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다. 무대 아래의 나는 현실의 나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오늘도 음악을 한다.
페르소나의 힘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다양한 음악을 한다. 어떤 사람은 가면을 쓰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어떤 사람은 예명을 버리고 본명으로 돌아간다. 어떤 사람은 밝은 겉모습 뒤에 어두운 내면을 숨긴다.
모두 옳다.
페르소나는 도구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중요한 건 그 페르소나가 진짜 자신과 너무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베니처럼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더라도, 그 안에는 '형국'이라는 사람이 있다. 탱크가 가면을 쓰더라도, 가면 뒤에는 진짜 얼굴이 있다. 케시아가 밝아 보여도, 그녀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노래로 표현한다.
가면은 벗기 위해 존재한다.
페르소나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