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 버킷리스트란 무엇일까.
빌보드 1위? 그래미 수상? 스타디움 투어?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대부분의 버킷리스트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다. 오래 음악하고 싶다. 해외에서 공연하고 싶다. 단독 콘서트를 열고 싶다. 소박하지만 절실한 꿈들.
해외에서 공연하고 싶다
수코지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목표가 있었다.
"음악적인 목표라고 한다면은 이제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목표가 투어였어요. 해외에서 뭐 큰 공연이든 아니면 작은 공연이든 그냥 해외에서 좀 공연을 해보고 싶다."
해외 투어. 작은 공연이어도 괜찮다. 다른 나라에서 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
그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음악하는 사람들한테 되게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해 주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 음악을 좋아할 사람들이 있는 데로 가야 된다라고 들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 내 음악을 좋아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국내보다는 해외가 이제 다양한 음악 시장이 더 활성화돼 있기는 한 거 같아요. 인구 많은 게 큰 거 같아요. 땅덩어리도 넓고 이러다 보니까 여기의 스타랑 저기 동네 스타랑 다르고."
한국은 좁다. 해외는 넓다. 시장이 다양하다. 내 음악을 좋아할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오래 음악하고 싶다
대니딕의 목표는 단순했다.
"최대한 오랫동안 음악을 하는 거."
오래. 그게 전부다. 하지만 쉬운 게 아니다.
"음악을 오래 한다의 정의는 물론 취미로도 할 수 있겠죠. 그 형태랑 상관없이 음악을 하는 거예요. 느끼는 거를 바탕으로 만들어내고 만들어낸 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그걸로 이제 소통을 하고."
형태는 상관없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느끼고, 만들고, 보여주고, 소통하는 것. 그게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는 현실적인 고민도 이야기했다.
"그걸 오래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몰두할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죠. 시간을 확보하려면 다른 경제 활동을 하는 시간이 음악을 침범하면 안 돼요. 그러면 돈이 있어야 돼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확보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뮤지션의 딜레마.
"돈은 어떻게 있을까. 음악으로 벌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경제 활동을 줄이면서 미니멈을 하면서 그걸로 돈을 벌어서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정답은 없다. 각자 찾아가는 중이다.
단독 콘서트
해일럽은 대구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달 6월 15일 날, 대구에 해외 뮤지션들도 많이 오는 그런 공연장이 있어요. 그곳에서 저의 앨범 발매 기념 첫 해일럽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 단독 콘서트. 인디 뮤지션에게 이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페스티벌에 끼어서 15분 무대가 아니라, 온전히 나만의 공연.
해일럽은 10년 전에 만든 곡을 드디어 발매했다.
"이 두 곡 다 10년쯤 전에 시작이 됐어요. 근데 제가 이제 연주자분들 이렇게 모셔 가지고 특히 대한민국 재즈 1세대 지금 연세가 85세 되셨을 거예요. 김수현 선생님이 특별히 도와주셔서."
10년 전에 녹음한 곡. 미디 파일이 유실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0년 후에 이거를 이제 저의 지금 기획사 대표님을 만나게 돼서 이걸 해보자. 의미 있는 음원이니 어떻게든 한번 살려보자 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고요."
10년을 기다렸다. 결국 해냈다. 그게 버킷리스트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룬다.
50살에 대서사를
스디는 독특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의 좀 계획, 뭐 예정된 행보나 목표 이런 것들이 좀 있을까요?"
그녀는 답했다.
"한 50 정도 살면 아, 나오지 않을까. 좀 약간 감히 오지 않을까."
50살. 그때쯤이면 대서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지금은 그렇게 대서사를 써내려 나갈 재간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아직 부족하다. 경험이, 실력이, 이야기가. 하지만 50살이 되면 다를 것이다. 그때까지 쌓아온 것들을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는 당장 이루는 게 아니다. 평생 향해 가는 방향이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yemin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곡을 만든다.
"저는 제 플리를 이렇게 딱 들었을 때 예민이란 사람을 딱 쳐서 했을 때 제가 듣고 싶은 곡만 만드는 경향이 좀 있거든요."
자기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싶은 곡. 남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곡.
"아, 나 내 노래에 이런 거 하나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내가 듣고 싶은, 제 노래도 사실 좀 많이 듣거든요. 평소에. 그래가지고 어, 이런 노래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해서 쓴 것도 있고."
세상에 없는 음악. 내가 듣고 싶은데 아무도 안 만든 음악. 그걸 직접 만든다. 그게 뮤지션의 특권이다.
가장으로서의 목표
수코지는 음악적 목표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그니까 인생에 있어서 또 그냥 인간으로서의 목표는 아, 또 얼마 전에 결혼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추후에 뭐 자녀 계획이 있고."
결혼했다. 가정을 꾸렸다. 뮤지션이기 전에 사람이다.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잘 사랑할 수 있는, 그니까 멋있게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사랑할 수 있도록 좀 그런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그런 게 그냥 인간으로서의 목표 중 하나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게 아버지로서의 버킷리스트.
뮤지션의 버킷리스트가 꼭 음악에만 있는 건 아니다.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버킷리스트다.
불을 삼킨 사람들
대니딕은 뮤지션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뮤지션들이 예술 하는 거는 불을 삼킨 것 같다."
불을 삼켰다. 왜?
"왜냐면 뱉지 않으면 죽으니까."
뱉지 않으면 죽는다. 표현하지 않으면 썩는다.
"아, 나 이거 안 해도 되잖아요. 사실. 그죠.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 누가 막 돈 준다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해야 돼. 아, 왜냐면 불 삼켰기 때문에. 뱉어야죠."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다. 불을 삼켰으니까. 뱉어야 하니까.
이게 뮤지션의 버킷리스트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불을 삼킨 사람이 불을 뱉는 것. 그게 음악이다.
내 버킷리스트
나도 버킷리스트가 있다.
VMR을 시작할 때는 몰랐다.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생겼다.
첫째, 이 인터뷰들을 책으로 엮는 것. 지금 하고 있다.
둘째, 100명의 뮤지션을 만나는 것. 아직 37명 남았다.
셋째, VMR에 출연했던 뮤지션들과 합동 공연을 하는 것. 언젠가.
넷째, 나도 90세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것. 11장에서 이야기했던 맥코이 타이너처럼.
버킷리스트는 거창할 필요 없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그게 버킷리스트다.
버킷리스트의 의미
63명의 뮤지션 중 빌보드 1위를 버킷리스트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수코지처럼 해외 투어를 꿈꾸는 사람, 대니딕처럼 오래 음악하고 싶은 사람, 해일럽처럼 단독 콘서트를 준비하는 사람, 스디처럼 50살에 대서사를 꿈꾸는 사람.
다들 자기만의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버킷리스트는 방향이다. 당장 이루는 게 아니라 평생 향해 가는 것.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
뮤지션이 아니어도 된다. 누구나 버킷리스트가 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사람.
대니딕처럼 불을 삼킨 사람이라면, 뱉어야 한다. 표현해야 한다. 안 하면 죽으니까.
수코지처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라.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
스디처럼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다려라. 50살이 되면 쓸 수 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는 이루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오늘도 불을 삼킨 사람들은 음악을 뱉는다.
당신은 무엇을 뱉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