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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ul 18. 2018

인터라켄의 하늘을 날다

SWITZERLAND


아침의 고요를 깨는 건 오로지 소들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뿐이었다. 산속 깊이 울려 퍼지는 청아한 워낭소리가 마치 거대한 시계탑의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인터라켄은 유럽의 정상이라고 불리는 융프라우 산에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터라켄에도 가볼만한 장소와 해볼 만한 액티비티가 꽤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해 보았다. 난생처음으로!


Interlaken


 자연의 경이가 곳곳에 내리깔린 스위스에서는 정말 단 한 번도 소음, 매연 등의 공해를 느낄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창문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날에도, 짙은 안개가 산허리를 온통 뒤덮은 날에도, 맑은 공기와 산뜻한 고요는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엔 평화가 찾아오는데, 오늘은 특별히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간다. 


 패러글라이딩 업체에서 내가 머물고 있던 백패커스 호스텔 앞으로 픽업을 하러 왔다. 차 안에는 파일럿분들이 타고 계셨고, 능숙하게 우리를 태운 후 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 업체가 한국에서 워낙 유명해서인지 파일럿 선생님(?)은 한국말을 많이 알았고(근본과 맥락은 없었지만), 단시간에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흡사 레크리에이션 강사처럼 산을 오르는 내내 끊임없는 농담과 재밌는 이야기로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셨다. 제일 크게 웃었던 순간은, ‘김정은’을 심한 욕과 함께 내뱉었을 때와 요즘 유행하는 술 게임 노래를 불렀을 때다. 벽안의 외국인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한국인을 만나봤길래 최신 유행어와 비속어까지 할 줄 아는 건가, 과연 뜻은 정확히 알고 쓰는 건지. 뜨악스러울 정도였다.


 차로 한 20여분 정도 산길을 따라 오르니 마침내 꼭대기에 닿을 수 있었다. 구름이 눈앞을 가려서 밑이 보이지 않았기에 지금 여기가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점점 떨려오기 시작했지만 내 담당 파일럿 Flo가 자기를 믿으라며 밝게 웃어주었다. 옷과 장비를 한차례 재점검한 후, 이제는 정말 뛸 시간이 되었다. 아까 Flo가 내게 당부한 대로 있는 힘껏 달렸다. 3, 2, 1.. 일순간 몸이 붕 뜨는 게 느껴졌고,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발 밑으로 펼쳐진 인터라켄의 경치를 눈으로 확인하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고도를 증명하듯 엄청 춥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대기를 세차게 가르는 바람 소리와 함께 숨을 내쉴 때마다 전해지는 신선한 공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가장 아름답고 선명한 장면은, 바로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의 정경이었다. 크리스털을 녹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말 그대로 옥색의 물빛이었다. 그간 봐왔던 물의 색깔 중에 가장 비현실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했다. 날씨운이 잘 따라주어 청명한 하늘과 함께 인터라켄의 구석구석을 눈 안에 담을 수 있었다. 나는 대자연적 풍광에 말을 잃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시작된 Flo의 ‘한국어 대잔치’에 또 실소가 터졌다. 하필이면 저속한 욕설 위주로 내뱉냐. 몇 번 받아주다가도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 그런 욕을 입에 담기 싫어서 못 들은 척했다. 분명 기억하고 싶은 한국말은 아니었다.


 Flo는 내게 더 높이 올라가도 되겠냐며 묻더니, 구름까지 뚫고 고공을 향해 나아갔다. 아까는 다른 팀들 몇몇이 보였는데 이젠 정말 우리 빼곤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왼쪽 밑을 봐보라고 해서 내려다보니 하더클룸(Hader Klum) 전망대의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늘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세상을 관망하니 이 순간 자체가 꿈만 같았다. 전망대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서 날고 있다니. 앞으로 내게 인터라켄은 패러글라이딩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Lake Thun and Brienz


튠(Thun) 그리고 브리엔츠(Brienz) 호수의 아름다움은 생경한 물빛으로부터 비롯된다. 인상주의 화가의 물감을 빌려 너른 강에 풀어놓은 것일까,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옥청색의 물빛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한결같은 색감을 유지하는 튠과 브리엔츠 호수. 튠 호수를 눈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니 안주가 따로 필요 없었다. 인터라켄은 문자 그대로 '호수 사이'를 뜻하는데, 양쪽으로 튠과 브리엔츠가 자리하고 있다. 겉보기엔 똑같은 호수지만 크기의 면에서는 튠이 브리엔츠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한다. 과연 이 아름다움의 극치인 호수도 매일 보면 질릴까? 나의 씀씀이는 점점 소박해지나, 이곳의 경치는 결코 소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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