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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Sep 03. 2018

우프(WWOOF) 일기 2-1

FRANCE


한국을 생소한 나라로 여기는 외국인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은 바로 ‘한식 전파’라고 생각한다.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릴르슈흐라쏘흐그에 살면서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에게도 한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Valerie가 나의 마음을 알아준 건지,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도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이번엔 불고기 전골과 함께 비빔밥을 선보이기로 했다. 지현이가 한국에서 가져온 된장국과 김치 그리고 김까지 탈탈 털어서 완성된 한국식 밥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과연 마을 사람들에게 한식을 제대로 선보일 수 있을까. 긴장이 되면서도 또 한 번 재밌는 일을 벌이게 되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낮잠을 생략하고 일이 끝나는 대로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L'lsle-sur-la-sorgue


 이른 아침부터 몸과 마음이 분주했다. 몇 시간 뒤면 마을 사람들이 우리의 한식을 맛보러 놀러 오기 때문에. 말이 온전히 통하지 않아도 맛은 통하길 바라며 지현이와 역할을 나눴다. 기본적인 재료 손질과 플레이팅은 같이 하고, 불고기 전골은 내가, 비빔밥은 지현이가 각각 맡아서 하기로 했다. 집에서는 한 달에 한번 요리를 할까 말까 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니. 10인분의 요리량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다음 과정으로 갈 때마다 신중하게 행동했다. 조금만 그르쳐도 크게 당황할 내 모습이 빤히 보여서다.

 

'프랑스 가정식은 메인 요리 하나를 중심으로 빵과 치즈, 샐러드를 곁들여 먹지만 한국의 가정식은 밥과 국을 기본으로 2~3가지의 반찬과 함께 먹는다. 또한 프랑스의 정찬은 코스요리지만 한식은 한상 가득 차려놓고 한 번에 먹는다.'


 때론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는 것이 다행스럽다. 구글에서 빠르게 찾아낸 프랑스와 한국의 식문화를 정리해서, 이따가는 마치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인 양 떠들어야지.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프랑스와 한국의 식문화가 어떻게 다른 지도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한식 소개문'을 준비하는 동안, 지현이가 내 몫의 일까지 도와준 덕분에 순조롭게 음식을 했다. 우리 숙소의 주방이 좁은 탓에 Valerie의 주방도 함께 써서 두 집을 오가며 바지런히 상을 차렸다. 이곳에 있는 가장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 식탁에 올렸더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Valerie가 켜 둔 촛불과 Lillan이 틀어놓은 동양풍의 음악이 분위기를 더욱 그윽하게 만들었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지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모였는데, 모두들 나를 보자마자 프랑스식 인사법인 Bisou(비쥬)를 건네셨다. 서로의 볼을 맞대고 쪽 소리를 내자 처음 본 사이지만 금세 친밀감이 생겼다. 가족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인사법이 있다면 먼 친척끼리 오랜만에 만나도 더 편하고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Valerie의 오랜 친구들 Agnes와 Sylvie, 직장동료인 Allan, 옆집에 사는 이모 Miaille, 그리고 Sylvie의 딸이자 Lillan의 친구인 Maeva까지! 오기로 한 사람들이 다 모였고, 우리의 한식 파티는 시작되었다. 모두 비빔밥을 보자마자 아름답다며 박수를 쳤다. 내가 봐도 비빔밤 재료의 색깔이 다양해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어서 먹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와 지현이는 고추장을 양껏 덜어 김을 부숴 넣고, 마지막으로 계란 노른자를 터트려서 비볐다. 그들은 한입 맛보더니 맛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려와는 다르게 불고기 전골도 맛이 낯설지 않다며, 맛있다고 했다. 인기가 많았던 반찬은 당연히 김치! 그들은 김치에 관한 궁금증이 대단했다. 나는 김치에 대해 아는 대로 열심히 설명했다. 다들 너무나 좋아해 주시고, 경청해주셔서 감사했다. 얼마 안 가서 사람들은 빈그릇을 내보이며 엄지를 치켜들고 활짝 웃어주셨다.

 

 한분 한분과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 한편에는 섭섭함도 물밀듯 밀려온다. 이번이 아니면 이렇게 다시 만나기는 정말 힘들 거라는 걸 알아서다.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배웅을 하러 나갔다가 차 앞에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아쉽지만 그들과 작별을 했고, 나랑 지현이만 남았다. 이 날따라 밤하늘은 또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여기도 별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 수고했다고, 참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갔다.



 참, Valerie 하우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Krypto와 Nuts. 조용하고 유순한 Krypto와는 달리 에너지 넘치고 혈기왕성한 Nuts는 시도 때도 없는 말썽꾸러기다. 농작물을 짓밟고, 훼손하는 것에 모자라 Krypto를 질투해 틈만 나면 괴롭힌다. 어느 날 Nuts가 뭔가를 맛있게 씹고 있어 자세히 쳐다보니 내 신발임을 알고 뜨악했지만, 이 녀석의 전적을 들어보면 이쯤은 별일 아닌 걸로 느껴졌다. 정성껏 심어놓은 밭을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만드는 녀석이니까. 농사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개들이 늘 우리 곁을 지켰다. 꼭 둘이 함께 붙어 다녀서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느 날은 지현이와 외출을 했다가 밤늦게 돌아오는데, 골목에 가로등 하나 없어서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심지어 구글 지도가 나타낸 곳과 실제 집의 위치가 달라 제자리만 뺑뺑 맴돌게 됐다. 그런데 잠시 후 어디서 많이 듣던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Krypto와 Nuts가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녀석들은 우리를 이끌듯 자꾸 어딘가를 향해 앞서 갔다. 나는 처음에 따라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 지현이에게 구글 지도로 보고 가자고 했지만, 지현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 시골 개들은 믿어도 돼.'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확신이 없었기에 녀석들을 따라갔다. 


 Krypto와 Nuts는 중간중간에 우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서 확인하기도 했다. 웬걸, 얼마 안 가서 익숙한 길이 보였고 집이 나왔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면서 녀석들에게 고맙다고 외쳤고, 곧장 Valerie에게 가서 강아지들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 너무 흥분한 나머지 Valerie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 인지도 구분을 못했다. 그녀가 우리가 집에 안 돌아와서, 강아지들을 보낸 거라는데 말이다. 진짜야? 그럼 이 녀석들은 얼마나 똑똑한 것인가. 아무렴 살면서 경험해본 진기한 일 중에 손꼽히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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