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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Sep 03. 2018

우프(WWOOF) 일기 2-3

FRANCE


내 나름대로 세운 '여행의 법칙'이 있다면, '어느 도시를 가든 시장, 공원, 서점에 찾아가기'이다. 거기에 여유가 된다면 미술관까지. 이 공간들만큼 사람 사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이 여행법은 특히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때 빛을 발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대부분 존재하는 장소들이라, 거리만 따져서 편한 대로 순서를 정하면 된다. 도시별로 저마다 다른 공간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순위를 매겨보는 건 또 하나의 숨은 재미다. 


L'Isle-sur-la-Sorgue Market


릴르슈흐라쏘흐그의 시장은 이 마을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로 꼽을만했다. 오직 일요일에 낮에만 열리기 때문에 여행자에겐 운이 따라야 하지만, 그만큼 활기가 넘치는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신선한 식재료 물론이고 수제 잼과 쿠키, 화분, 빈티지 옷 등 보기만 해도 사고 싶게 만드는 물품이 가득하다. 한 아주머니는 직접 만든 잼을 한번 먹어보라며 자신감 넘치게 시식을 권했다. 종류가 10가지는 족히 넘어 보였지만 과일맛과 초콜릿맛을 모두 먹어보게 하셨다. 그녀의 잼은 과연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부드럽게 녹아드는 달콤함은 집으로 데려가야 마땅했다. 캐러멜 초콜릿 잼을 집어 들고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쭤봤더니, 화통하게 웃으시며 바로 포즈를 취하신다. 시장은 소흐그 강가에서부터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광장까지, 작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점이나 골동품 가게, 아뜰리에 등이 나온다. 식당이나 정육점 그리고 마트도 보이니 무엇을 먹을지는 폭넓게 선택하면 되겠다. 우리도 걷다가 Au Chineur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서 간 건데, 아주 괜찮은 선택이었다. 25유로~30유로대에 전채, 본식,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 메뉴를 즐길 수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절한 직원이 있어 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 Valerie에게 들어보니 그녀도 인정하는 지역 맛집이라고!  

  


Villa Datris Foundation for contemporary sculpture


오래된 별장을 현대조각 미술관으로 개조한 Villa Datris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건물 안팎의 모든 공간이 곧 전시장이었다. 앞뜰에서부터 독창적인 형태의 조각상과 설치미술이 제각각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빌라의 내부는 더욱 놀라운 수준이었다. 프랑스의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본의 저명한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도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와인을 마시는 벽, 끝없이 흐르는 모래시계, 노트북 위로 자라나는 식물이었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계단에 흘러내리는 전구, 스테인글라스 창문까지도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였다. '이토록 창의적이고 범상치 않은 전시장이 있을까'할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대단했다. 마지막에 둘러본 정원은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유리로 만든 꽃 넝쿨이 머리 위로 유성처럼 쏟아졌다. 이 모든 게 무료라니, 예술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Magasin d'antiquites


사실 릴르슈흐라쏘흐그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름은 'Antique'이다. 마을 전체가 골동품점으로 가득할 정도로 고(古) 가구와 장식품이 매우 유명하다. 옛것을 귀하게 여기는 곳답게, 그 규모가 상당했다. 암갈색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렇게나 쌓아둔 골동품이 반겨준다.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한 구석에서 장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걸었다. 이 마을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실크 무역으로 번성했다던데, 그 당시 귀족들이 썼던 물건들일까? 잠시 과거로 돌아간 기분에 휩싸여 상상으로나마 당시를 그려 보았다.



Parc Municipal Gautier


Valerie의 집에서 머물면서 가장 많이 갔던 Parc Municipal Gautier. 장 보러 가는 길 중간에 이 공원이 위치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잠시 들려서 쉬어갈 수 있었다. 땀을 식히기 위해 공원 의자에 앉으면 그저 평화롭고 일상적인 기쁨을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을 보다 공상에 잠기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과 작은 공으로 게임을 하시는 할아버지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스스로 자라난 듯한 나무가 공원을 한층 푸르게 만들어주었고, 오늘도 물레방아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느리게 돌아간다.



Fontaine de Vaucluse


'남프로방스'하면 연상되던 이미지가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작은 운하를 끼고 있는 황금빛 마을, 세월을 머금은 시가지, 우윳빛 주택 사이로 흐르는 강은 프로방스 특유의 고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소흐그 강 위의 섬'이라는 뜻의 L'sle sur la Sorgue처럼 ‘보클뤼즈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Fontaine de Vaucluse도 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두 마을은 풍부한 강물을 동력으로 삼아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부흥케 한 물레방아는 여전히 수로의 곳곳에 놓여 있다. 한식 파티 때 만난 Maeva가 근교로 놀러 가자며 이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릴르슈흐라쏘흐그에서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옆 마을이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건 바로 신비의 샘!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르스름한 물이 바위 가운데에 고여 있는 광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샘까지 오르내리는 등산로에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물을 눈과 귀로 담을 수 있었다. 신비의 샘과는 다르게 물빛이 아주 맑은 초록색이었다. 가을 특유의 청명함과 참 잘 어울리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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