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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Aug 10. 2018

다섯 개의 마을, 친퀘테레

ITALY


9월 말에 찾아간 친퀘테레는 마치 여름의 끝자락 같았다. 시간을 되돌린 듯한 뜨거운 햇볕과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그리고 때아닌 소낙비의 출현까지. 겹겹이 껴입은 나의 옷차림이 무색해지게도, 태양은 대지를 달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마와 콧잔등에 금세 땀이 맺혔고, 경량 패딩은 이미 벗은 지 오래였다. 날씨에 이어 친퀘테레의 풍경 또한 당장에 바다로 뛰어들고 싶게 만들었다. 해안 마을답게 목전에 지중해가 있었다. 절벽길을 따라 걷는 내내 광활한 바다의 모습을 눈으로, 귀로, 코로 담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내다보면 작은 배가 물살을 가르며 수평선을 따라 지나가고 있었고, 가까이에는 파도가 싸르르- 소리를 내며 바위에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냄새는 바람결 사이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Cinque Terre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Stazione di Firenze Santa Maria Novella)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라 스페치아(Stazione di La Spezia)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친퀘테레의 가장 끝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행 표를 끊고, 열차를 기다렸다. 당일치기 일정이라 가장 먼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부터 순차적으로 보고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문자 그대로 '다섯(Cinque) 개의 땅(terre)’인 친퀘 테레는 이탈리아 반도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지중해안을 끼고 있는 각각의 마을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걸어서 가거나, 작은 열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동하는 내내 절벽 위의 좁은 길 너머로 사라지지 않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청명한 바다가 맞아주길 기대하며 몬테로소에 내렸는데, 별안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운이 따라주지 않는 걸까-하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오래가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은 하늘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답게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가게들, 그리고 무수한 계단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피렌체에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지 않게 만들었다. 이토록 다른 세상이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니. 자연과 사람이 함께 일궈낸 땅을 직접 보고 있자니 친퀘테레는 정말 이탈리아가 지닌 아름다움의 총집합소 같았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집이 각양각색의 파스텔톤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 앞으로는 오로지 너른 바다만이 존재했다. 이곳은 마을의 이름까지도 하나같이 바다와 닮아 있었다.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그리고 리오마조레(Riomaggiore). 넘실대는 물결같이 부드러운 이름을 지녔다. 마지막으로 들른 마나롤라에서는 혹시 몰라서 챙겨 왔던 수영복을 꺼내 들었다. 마나롤라의 해변은 모래사장이 없고 크기가 제각각인 돌바위만 있었기 때문에 바위를 지지대로 삼아 다이빙을 해서 들어가야 했다. 이런 형태의 바다에 입수하는 것은 처음이라 겁이 났지만, 옆에서 당차게 뛰어드는 외국인들을 보니 용기가 생겼다. 마음속으로 열을 세고 뛰어들자 차가운 물이 나를 감싸안음과 동시에 쾌감이 들었다. 친퀘테레의 바다는 그렇게 나를 무방비 상태로 내몰았다.

 

 사실 피렌체도 샅샅이 보기에 부족한 시간이라 친퀘테레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바다 마을’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가기에 충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여행에서 바다를 꿈꾸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곳이 어디든 바다가 있다면 꼭 가보곤 했다. 인적이 드물든, 만인의 휴가지든, 계절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바다의 이미지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기에. 해변이 눈앞에 실재하거나 혹은 어떤 그림 속이나 영화의 장면으로 담겨 있어 아득히 보일지라도, 모든 바다는 내게 '낙원의 세계'다. 바다의 이미지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는 것은 아마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자유롭고 과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다에서는 물속을 자유로이 부유하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한낮의 햇살을 맞이할 수 있다. 태아를 감싸 안은 엄마의 뱃속 양수처럼 한없이 보드랍고 편안한 바다. 쉼 없이 다가오는 물결은 그 누구도 거르지 않고 매만져 준다. 바다는 언제나 내 마음을 있는 힘껏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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