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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Aug 01. 2018

베니스의 일몰

ITALY


베니스의 진가는 일몰 무렵에 나타난다. 지는 해가 낡은 건물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며, 제 빛깔을 선연히 옮겨낸다. 서로 닮은 색을 내보이며 그들은 그렇게 근사한 석양이 된다. 그 심도는 가늠할 수도 없게 바다의 뺨까지 붉게 만든다. 자꾸 현실감을 잃게 만드는 베니스의 모습에 이것은 실재하는 풍경이다-라고 속으로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괜히 눈을 깜박이고, 귀를 기울이고, 손을 뻗어 보게 만든다. 왜 수많은 예술가의 문학에, 그림에, 음악에 영감이 되었는지 알겠다. 도시 자체가 예술이었으니까. 바다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도시는 꿈을 품기에 더없이 완벽했다.


Venezia


 바다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만으로도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데, 베니스에선 그 흔한 자전거조차 지나다닐 수 없다. 이곳에선 오직 배와 사람의 다리만이 합법적인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것이, 아주 좁은 골목길과 수많은 다리는 바퀴 달린 교통수단으로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 그렇게 베니스는 여행자의 탐험욕을 자극하는 도시가 되었다.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오래된 골동품 가게나 서점이 나오고 때론 한 발치 밑으로 곧장 물이 흐르기도 하니, 작정하고 길을 잃어보는 경험도 이곳에선 꽤나 유쾌하게 느껴진다.

 

 어느 한 길목에서 이곳 주민들의 빨래가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 산뜻한 햇살 아래서 빳빳하게 잘 마르고 있는 옷가지들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장 잘 느껴진다고 할까나. 그래서인지 내게 이탈리아라고 하면 빨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포물선으로 늘어진 빨랫줄에 크기도 제각각 색깔도 제각각인 옷과 이불이 교차하는 모양새! 


 베니스 본섬을 포함해 무라노, 부라노 섬 등을 통틀어 그 모든 곳이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어디든 바다가 있고, 다리가 있었다. 넋을 놓게 만드는 풍경이 한둘이 아니었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어쩌면 환상처럼 아득한 존재로 남겨두고 싶기도 했다. 그게 내가 베니스의 나날들을 면밀히 기록하지 않는 이유다.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 꿈결 같은 장면으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온통 따뜻하고 즐거웠던 장면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찾아가겠지만, 그전까지 내게 베니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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