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l Aug 27. 2018

바르셀로나에서 시체스로

SPAIN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리마다 시위대의 행진이 있었고, 지하철역 안에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심상치 않은 구호를 외쳤다. 무심코 걷다 보면 카탈루냐 국기를 두르고 있는 무리를 쉽게 맞닥뜨렸다. 자유의 외침은 건물의 벽, 벽과 벽 사이에, 기둥과 나무에도 가득했다. ‘Catalonia wants to vote’, ‘Viva Espana’와 같은 문구로 말이다. 도시는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만들어 낸 세찬 물결로 인해 출렁대고 있었다. 나는 군중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2017년 10월 10일, 바르셀로나 개선문 집회의 사람들은 그저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찬성하거나 혹은 반대하거나. 그들 모두는 즐겁고도 평화롭게 자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Barcelona


바르셀로나로 넘어오기 전 가족과 몇몇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연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언론에서는 연일 카탈루냐 독립 시위 현장을 보도했다. 얼마 전에는 카탈루냐 독립파 세력을 스페인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해 수백 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었다. 나는 위축되고 불안한 상태로 이 도시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에는 시위대와 그들을 둘러싼 언론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무슨 행사가 열리는 게 분명했다. 유독 거리의 분위기가 혼란스러웠고,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도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물어보고 싶었으나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장으로 직접 가보는 수밖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까이 나아가 보니 바르셀로나 개선문이었다. 누군가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카탈루냐 자치정부 쪽 사람 같았다. 모두가 그의 말에 집중하며 이따금 환호와 박수를 내지르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곳 분위기는 그들의 염원처럼 밝고, 희망적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변화의 에너지는 존재한다. 시대를 겪는 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냉정하게도, 카탈루냐 사람들이 독립을 하건 말건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을 내 눈동자 안에 담는 까닭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 목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국의 여행자로서 거대한 부분의 한 조각, 오로지 단면만을 보았지만 적어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 겁을 냈던 마음은 무색해졌다. 이곳엔 이상(理想)만이 존재했다.



Sitges


매년 10월, 시체스에서는 영화제(SITGES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가 열린다. SF, 공포, 스릴러, 애니메이션 등 판타스틱 장르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다. 시체스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어서 바다를 보며 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 해변가에서 열리는 영화제인 데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니 갈 이유가 너무도 충분했다! 마침 내가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기간이 곧 영화제가 열리는 때였다. Barcelona Sants역에서 렌페를 타니 딱 40분 걸려서 도착했다. Sitges역에 내리자마자 축제의 기운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인포메이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여러 갈래로 뻗은 골목마다 영화제 플래카드가 부드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올해의 포스터에는 회색빛의 배경에 망자처럼 보이는 자의 뒷모습이 그러져 있었다. 어딘가 스산하고, 음울해 보였다. 영화제의 콘셉트인 건지, 다가오는 핼러윈의 영향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몰라도 거리가 온통 유령 형상의 장식물로 가득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축 늘어진 검은 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뛰놀았다. 얼마 걷지 않아 축제 부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푸르른 바다가 보였다. 돌로 지어진 성벽을 둘러싼 해변의 모습이 언뜻 외딴섬 같아서 낭만스럽게 느껴졌다. 파도가 작게 부서지는 것을 보니, 수심은 깊지 않아 보였다. 잔잔하게 떨고 있는 물살 말고는 수평선을 헤치는 것이 없었다. 노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수영하기에는 문제없는 온화한 날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조금 더 주변을 구경하다가 해변으로 돌아와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예상한 대로 시체스 바다의 물은 얕은 편이어서, 몸의 절반이 잠길 때까지 뛰어들어 갈 수 있었다. 내게 수영은 언제나 기쁘고 근사한 일이지만 이때가 지금껏 했던 수영 중에서 제일 좋았다. 마치 우리가 해변의 일부를 빌린 것처럼 백사장에는 사람이 적었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해와 폐부의 깊숙한 곳까지 밀려들어온 가을 초입의 청량한 공기 그리고 피부로 와 닿는 맑고 보드라운 바닷물. 하늘에 어둠이 완전히 깔리고 나서는 시체스 성당(Parroquia de Sant Bartomeu i Santa Tecla)에 가보니 그 자체로 훌륭한 전망대였다. 안에는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와서, 광막한 지중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다를 보는 일은 늘 근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말라가의 낮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