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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Aug 24. 2018

말라가의 낮

SPAIN


말라가에서 보낸 시간을 한없이 말랑하게 만든 대상은 역시나 바다였다. 말라게타(Playa de la Malagueta)의 모래사장을 거닐어 본다면 그 누구라도 이곳에 하루를 바치고 싶어질 거다. 남부의 땅이라는 것을 실감케 하는 야자수와 뺨을 훑는 듯 불어오는 미풍, 나체의 연인들.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바다에서 낮잠과 수영을 즐기고, 노을을 감상하는 일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시리도록 푸른 바닷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의 청량감은 영영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달콤했다. 세비야에서 숨을 고르듯 느린 여행을 하고 나니 말라가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가득했다. 골목길을 정처 없이 누비고, 그날의 일정을 즉흥적으로 골랐으며, 장을 봐서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말라가를 탐미하기 위해 피카소 미술관과 중세시대의 요새인 알카사바를 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겐 의미가 없었다. 그 기억은 뇌리의 저편에 존재했고, 떠나가지 않는 장면은 한낮의 말라게타 해변과 시간이 멈춘듯한 골목길 사이뿐이다.


Malaga


 스페인 남부의 하늘은 놀랍게도 구름 한 점 없다. 분명 세비야에서도 내내 그랬는데, 쾌청한 나날의 연속이다. 말라게타 해변의 잔파도가 뿌려내는 포말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는 새 넋을 놓게 된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물속에 들어갔다가 모래 위에 누웠다가를 반복했다. 수영하고 먹는 음식은 뭐든 맛있겠지만, TGB(The Good Burger) 햄버거는 유달리 꿀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바다가 붉은 낙조에 물들고 있었다. 저 멀리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 자처럼 보여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유지한 채 에어비앤비 숙소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지도로 빠른 길을 검색하지 않고 아까 보았던 광장, 공원, 집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좇으며 갔다. 그런데 숙소 바로 앞 공터에 다다르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공연이 막을 내린 건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가족, 친구, 동네 사람, 동네 강아지까지 와서 구경한다. 우연이라는 것은 언제나 신비롭고 묘한 법이다.

   


 시간의 영속성을 품은 말라가의 오래된 주택에는 이따금씩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피카소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명한 플라멩코 의상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라던가, 등에서 물을 내뿜는 고래라던가. 구시가지의 골목길에서는 그림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적당히 섞여,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활기가 가득했다. 가장 생기 넘치는 거리는 아무렴 말라가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식당가이다. 항구 도시답게 해산물이 유명해 빠에야나 깔라마리, 대구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우리도 성당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Taberna de Pitita에서 먹물 빠에야와 깔라마리, 크로켓을 시켜서 먹어 보았다. 당연히 음료는 상그리아로! 스페인에서는 어떤 와인을 시키든 실패가 없다. 바로 근처의 Casa Aranda에서 추로스를 디저트로 먹었다. 바삭한 추로스를 깊고 진한 초콜릿에 푹 찍어 먹는데, 맛은 진정 최고였다. 단언컨대 유럽 대륙에서 ‘미식’은 스페인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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