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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Sep 17. 2018

풍수지리라는 이름의 뇌관, <명당>

La vita è un film


한해에 두 번, 그러니까 봄과 가을에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가 있다. 산소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 강원도 양평에 위치한 가족 공동묘지에 가서 조상님들께 절을 올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되는 것만 빼면 오랜만에 길씨 가족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그런데 우리 가문에서 왜 하필 양평을 가족묘로 정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은 충청남도 금산인데도?


사실 처음부터 양평이 가족묘는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 집안에서 고인이 되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금산과 대전 쪽에 묏자리를 두셨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들이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데 모여 제사를 올리기 힘들었고, 세대가 바뀔수록 제사의 중요도가 줄어들었다.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시던 작은할아버지가 묘지를 이전하면 최소한 서울에 사는 집안 식구들끼리라도 매년 모여서 제사를 드리기 편하지 않겠냐며, 새 땅을 알아보셨다. 결국 정한 곳이 경기도 양평의 한 묘지였다.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집안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끝내 장지를 옮기지 않은 조상님도 계신다. 들어보니 각자의 생각과 입장이 있었다. 이렇게 가족 간에도 묏자리를 두고 알력이 존재하는데, 과연 조선시대의 왕족은 얼마나 더했을까. 영화 <명당>을 보니 좋은 땅을 향한  싸움은 아주 아찔하고 잔혹했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은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 씨 가문의 계획을 막다 가족을 잃게 된다. 13년 후, 복수를 꿈꾸는 박재상 앞에 세상을 뒤집고 싶은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나타나 함께 장동 김 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한다. 뜻을 함께하여 김좌근 부자에게 접근한 박재상과 흥선은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서로 다른 뜻을 품게 되는데… (출처: 다음 영화 <명당> 줄거리)


<명당>에서도 헌종과 장동 김 씨 세력이 ‘좋은 묏자리’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거기에 흥선대원군까지 가세한다. 당시는 지관의 한마디가 권력을 움직일 정도였다. 지관이 좋다는 땅은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명당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길한 기운을 받아 대대손손 번성한다. 지관이 명명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암투는 이렇게까지 해야 돼? 싶을 정도로 극악무도했다. 조승우와 지성의 연기도 그저 ‘갓’스럽지만, 세도가 김좌근 역을 맡은 백윤식의 연기 또한 깊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러닝타임 내내 누가 먼저 죽을까, 배신당할까? 하며 손에 땀을 쥐고 보았는데, 팩션 영화인걸 알았다면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었을 거다. 실존한 인물과 사건에 역사적 상상력을 덧붙여 만든 영화 <명당>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스포가 될까 차마 언급할 순 없지만 꽤나 훌륭한 연출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억지 유머나 무리수도 전혀 없었다. 사극의 전형적인 갈등 구도인 왕-신하 간의 권력 다툼이라는 흐름 속에서 ‘풍수지리’라는 소재를 접목시킴으로써, 뻔하지도 않았다. 조선시대보다는 그 중요도가 덜하지만 현재도 여전히 풍수지리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 삶에 근접한 이야기라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안 어르신분들이 이 영화를 보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추석 연휴 때 가족들과 함께 모여서 보자고, 권해보고 싶다.



*사진 출처는 모두 Daum 영화 이미지입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미리 관람하고 본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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