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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Mar 30. 2019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보다 더 OO한 <바이스>

La vita è un film


 우리는 무능한 리더가 국민의 대표가 되었을 때 한 국가가 얼마나 쉽게 위기에 빠지는지 몸소 경험했다. 한국 현대사의 최악의 비극으로 꼽을 수 있는 세월호 사건 그리고 국정농단 사태까지. 나라의 존립과 결부된 문제를 결정한 건 대통령이 아니라 배후의 강력한 존재, 비선 실세였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은 불신을 남겼다. 참상을 마주한 국민들은 촛불 앞에 모여 함께 아팠고, 그 누구보다 변화를 열망했다. 동시에 정치권력에 환멸을 느끼고, 차라리 무관심을 택한 국민들도 있었다. 이렇게 안타까운 서사가 미국에도 있었다면? 아담 맥케이의 블랙코미디 영화, <바이스>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거울'과 같았다.  



이것은 실화다,
그는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였으므로
혹은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대기업의 CEO에서 펜타곤 수장을 거쳐

미국 부통령까지 오른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

재임 시절,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그가 내린 결정들은 세계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뒤바뀐 역사는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시간에 묻혀버렸다.


이제 그가 바꾼 글로벌한 역사의 변곡점들을 추적한다. (출처: Daum 영화)


 아담 맥케이 감독은 <바이스> 이전에 <빅쇼트>라는 또 하나의 블랙코미디 영화로 오스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빅쇼트>와 <바이스>를 나란히 언급하는 이유는 시리즈물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각본, 연출, 배우의 삼박자 면에서 꽤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풍자성이 짙은 스토리, 위트 넘치는 연출법과 세심한 메타포, 동일한 주연배우라는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요소가 없을 정도로 매우(!) 잘 만들어진 '인텔리버스터' 영화이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바이스>는 <빅쇼트>를 뛰어넘는 더 OO한 영화다. 과연 OO에 해당되는 말이 무엇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고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브런치 무비패스로 CGV에서 영화를 관람한 당일, 영화제도 아닌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친 일부 관객들은, 적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왼쪽부터 <빅쇼트>의 배우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브래드 피트. 안타깝게도 <바이스>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볼 수 없다. 출처: google 이미지 검색


 우선 각본. <빅쇼트>와 <바이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문장으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영화는 각각 미국 현대사의 최악의 사건으로 꼽을 수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9.11 테러를 주 배경으로 한다. 극 중간에 교차적으로 삽입되는 뉴스 장면이라던지 당시 사회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인터뷰 장면, 전쟁 장면 등은 순간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아무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사실성 짙은 묘사는 깊은 몰입감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현존하는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을 대놓고 까내리는(?) 것이다.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실존 인물에 대해 가감 없는 통렬한 비판은 가히 '사이다'급이다. <바이스>의 시대적 배경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일지라도 마지막에는 현 트럼프(영화의 대사를 빌리자면 '오렌지 대가리') 정권까지 화살을 겨낭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표현의 자유'에 감탄하고 말았다.


<바이스>의 딕 체니 부통령이 연설을 하는 모습.  출처: Daum 영화 이미지


 다음으로 연출. 두 영화는 내레이터 화자가 극 중 인물로 등장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빅쇼트>의 내레이터인 라이언 고슬링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지만, <바이스>의 내레이터는 영화의 후반부까지 본인의 정체를 숨기다 이내 밝히지만, 극의 전개 상 부차적인 인물이다. 연출 면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꼽을 수 있는 장면은 단연, 극 곳곳에 심어놓은 메타포다. <빅쇼트>에서 한 셰프가 주택 시장의 위기가 경제 재앙으로 이어진 원리를 생선 요리에 빗대어 설명하거나, <바이스>에서는 딕 체니가 장관들과 레스토랑에서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메뉴를 주문하듯 너무나 쉽게 내리는 장면. 특히나 딕 체니의 심장과 낚시 행위 등의 의도적 연출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점이 자칫하면 어려울 수 있는 영화를 전혀 지루할 틈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바이스>의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  린 체니가 없었다면 딕 체니도 없었다.


 세 번째로 배우. 우리의 '베트맨' 크리스천 베일은 딕 체니를 연기하기 위해 무려 20kg 체중 증량을 감행하고, 머리를 삭발했다고 한다. <빅쇼트>에서 사회성이 결여된 천재 괴짜 박사 역을 맡은 그의 연기를 보고 괜히 명배우가 아니다고 생각했는데, <바이스>에서는 실제 인물과 외양마저 'ctrl c+ctrl v'급이다. 크리스천 베일의 탁월한 연기력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게감 있게 이끌어 나간다. 딕 체니의 부인인 린 체니 역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정치계 거물의 부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도널드 럼즈펠드 역을 맡은 스티브 카렐의 대사는 가히 80%가 재기 넘치는 유머이거나 성적인 농담인데, 그의 맛깔난 연기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지켜내는 데 크게 한몫했다.  



 끝으로, 아담 맥케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고 한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 비극적 사건의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낱낱이 밝혀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지만, 결국 그는 우리에게 '책임'의 열쇠를 쥐어준다.


"If you don't want big money to control government, don't vote for candidates that take money from big banks, oil, or weirdo billionaires. Stop! (금권정치에 휘둘리는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면, 거대 은행이나 석유 회사 그리고 뻔뻔한 억만장자들의 돈을 받는 후보에게 절대로 표를 주지 마세요!)"


- 아담 맥케이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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