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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un 30. 2020

떠올리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아날로그우리집

어느 제주 가족의 시간 그리고 삶과 연결되다

What  아날로그라운지(AH1876)  

Where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7길 30-2  

Detail  https://www.stayfolio.com/picks/analog-h

Mood  떠올리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그런 곳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 내겐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작년의 제주 여행과는 출발부터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이다. 아, 코로나 시대의 휴가란.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일렁이는 구름을 내려다보며, 차분히 기도했다. 무탈한 여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숙소로 향하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있었다. 바로 '롱 라이프 디자인'을 추구하는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이다. 최근 디앤디파트먼트가 제주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음을 확인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오메기맑은술' 한 병을 구입했다. '오메기맑은술'은 오메기떡과 누룩으로 오메기술을 빚은 후 발효가 끝나면 농익은 윗부분을 떠내어 만든 술이다. 맑은 노랑빛의 지역 전통주를 받아 드니, 제주에 도착했음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자동차로 한 30여분을 달려,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숙소 '아날로그우리집' 문 앞에 당도했다. 셀프 체크인을 하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웬 운명인가 싶었지만, 그녀는 바로 옆집에 살고 있어 외출 후 귀가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반가운 만남에, 우리는 함께 '아날로그 라운지(AH1876)'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숲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와, 이 향 뭐예요?"

"아, 이건 조향사가 이 집에 어울리는 향을 고안해 만든 거예요. 천연 향료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향을 진하게 뿌려도 머리가 아프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요."


나는 그녀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의 분위기와 꼭 들어맞는 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으로 놓인 돌과 나무벽, 그리고 곳곳에 놓인 식물이 내뿜는 자연의 냄새처럼 산뜻했다.


이 집의 공간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향뿐만 아니라 '소리'에도 있었다.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마음에 평안을 깃들게 했다. Mort Garson의 [Mother Earth's Plantasia] 혹은 Shura의 [Forevher] 따위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들.


아날로그 라운지의 전체적인 구조는 단순했다. 거실, 부엌, 침실, 복층 다락방, 욕실. 그중에서도 우리 모두를 매료시킨 공간은 단연 '부엌'이었다. 높은 층고가 돋보이는 목재 지붕에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돌벽 그리고 독특한 질감이 눈에 띄는 식탁까지. 집안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니, 이 집에 얽힌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이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날로그 라운지는 4대째 이어 내려오는 집으로, 조부모님이 사시던 돌집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지붕, 벽, 문틀과 같은 집의 원형을 살리면서도, 내부 구조에 현대적인 요소를 더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집안 곳곳에는 주인아주머니의 남편분께서 직접 만든 식탁과 조명이 놓여 있었다. 생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머무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섬세한 마음이 느껴졌다.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집안 곳곳에 스며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들의 깊은 애정이 만들어낸 특별한 집.  


덕분에 우리 가족들의 대화도 평소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간 늘 머물던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만나니 모두에게 생각의 궤적을 남긴 듯하다. 머무는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나 각자가 꿈꾸는 공간의 모습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낙조에 물든 바다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이 마을에 꽤 많은 가구가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쩌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싶게, 적요함이 지배적이었다. 바다조차도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울의 빌딩 숲을 거닐다가 이렇게 제주의 한 마을에서 바닷바람을 쐬다니. 자연이 선사하는 '여유로움'은 언제 느껴봐도 놀랍기만 하다. 느릿한 걸음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한 횟집까지 걸어가서, 신선한 회가 가득한 만찬을 즐겼다.


별다른 계획 없이 '휴식'에 목적을 둔 우리 가족에게, 아날로그 라운지는 더없이 완벽했다. 저마다의 편안한 자리를 찾아 몸을 뉘었다. 아빠는 소파로, 엄마와 언니는 침대로, 나는 작은 테라스로.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쉼'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때를 염두에 두고 책을 몇 권 챙겨 왔는데, 내 책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는 '북 스테이'를 가능케하는 양의 책과 잡지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돈 후에, 체크아웃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오전에는 꽤 선선해서 오래 앉아 있어도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담장이 낮아 개방감을 오롯하게 느끼면서,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나만의 사적인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제주 가족의 시간이 담긴 집에 머무는 동안, 잠시 그들의 삶을 빌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그들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집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 덕분이다. 제주 토박이 가족의 역사를 감각하며, 집안 곳곳에 생동하는 따스함을 경험했다. 가족과 함께해서, 함께라서 더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닐까. 내게 '아날로그우리집'은 떠올리기만 해도 언제나 위로가 될, 그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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