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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un 30. 2020

남쪽의 여름날, 스테이소도

나만의 작은 섬으로 떠나요

What  스테이소도(Staysodo)  

Where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우도해안길 496-1  

Detail  https://www.stayfolio.com/picks/stay-sodo

 Mood  나를 품어 주는 섬 속의 섬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남쪽의 여름날>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은 빵 한 조각,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수영복 한 벌을 가방에 집어넣으면 떠날 준비가 끝난다고. 기나긴 여름날 숲과 호수의 손님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난다고. 나는 그의 문장 바깥으로 그려지는 짙푸른 여름빛의 낙원을 떠올려 보았다. 과연 그곳은 얼마나 대단한 아름다움을 지녔기에,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자유로운 방랑객을 불러들이는 것일까 생각했다.


초여름의 어느 날, 가족들과 제주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섬 속의 섬'과 같은 스테이소도를 마주했다. 하룻밤의 달콤한 휴가였지만, 내게는 더없이 완벽한 '남쪽의 여름날'이었다. 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기꺼이 손님이 되어 찾아가고 싶은 나만의 섬. 스테이소도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스테이소도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A와 B로 나뉜 두 동의 건물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원이 보였다. 우리는 A동의 문을 가장 먼저 열어 보았는데, 순간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백색의 실크 커튼이 살랑거리는 마루 너머로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맑은 물빛을 내보이는 수영장은 스테이소도의 백미(白眉)이다.


스테이소도만의 감성을 완성하는 것은, 음악과 향기 그리고 다수의 책이었다. 이 집에 들어선 순간 라운지에서 클래식 악기의 선율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또한 은은하게 퍼져 있는 꽃향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출입문에 'STAY SODO'라는 이름의 향수가 있었다. 거실 근처의 수납공간마다 칸칸이 놓인 책과 잡지는 잠시 디지털 세상과 멀어지게 만들어줄, 훌륭한 친구들이었다.


이곳의 디테일은 부엌과 욕실에도 담겨 있다. 우선 부엌에는 요리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각종 식기와 가재도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발뮤다 토스트기, 커피 그라인더, 차제구(茶諸具) 등이 갖춰져 있기도 하다. 욕실의 모든 어매니티는 자연주의 브랜드 이솝(Aesop)의 제품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집이라니. 이런 부분이 숙박객들을 위한 진심 어린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A동은 나와 언니가, B동은 아빠가 쓰시기로 했다. 먼저 A동의 침실로 들어가 옷을 정리하고, 욕실을 둘러보았다.  세면대의 통유리로 초록이 무성한 정원과 물결이 부드럽게 넘실대는 수영장이 보였다. 샤워실과 연결된 작은 문을 열고 나가니, 돌담 안에 개인 욕조가 있었다. 음, 수영 후에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겠네.


B동도 단순하나, 있어야 할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하나의 침실, 욕실, 화장실 그리고 실내에 마련된 욕조. A동과 마찬가지로 통유리창이 있어 우도의 소담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집 자체의 아름다움과 우도가 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합일을 이루고 있다.


가장 고대하던 수영의 시간. 가벼이 몸을 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가슴께에 맞닿은 수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니, 온몸으로 상쾌함이 전해졌다. 이 황홀한 기분을 가족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과연 아빠가 나를 따라 들어올까 했는데, 웬걸 나보다 더 신나게 수영을 즐기셨다. 아빠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뻤다. 우리는 물속에서 자유로이 부유하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한낮의 햇살을 만끽했다.


스테이소도의 면면을 살펴볼수록, 하나의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은 소위 '막 찍어도 화보'가 나올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흘린 수건과 그 옆에 내려놓은 사진집이 이렇게 멋스러워 보일 일인가? 그 누구라도 매료시키는 힘을 지닌 집이었다. 이런 곳을 여름 별장으로 둘 수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테이소도의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보이는 식당이 호평이 자자한 맛집이라는 것이다. 최연소 해녀가 직접 물질해 가지고 오는 해산물을 내어준다나. 문어숙회가 특히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슬슬 석양이 물들 무렵, 간편한 옷차림으로 식당을 찾았다. 문어숙회와 뿔소라회를 포장해서 숙소 테라스에서 먹을 요량이었다.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니, 그는 이미 우리가 스테이소도 손님인 줄 알고 계셨다. 창문 너머로 우리 가족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셨다고. 별안간 막걸리 한잔을 건네시며, 우도 사람들은 땅콩 막걸리 말고 제주 막걸리를 마신다고 하셨다. 얼떨결에 시작된 작은 술판(?)에서는 우도의 역사부터 시작해 요즘 세상의 이야기까지 오고 갔다. 그들에게는 외지인에 불과한 우리를,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했다.


숙소로 돌아와, 취기가 오른 상태로 소소한 파티를 이어갔다. 사장님의 적극 권유로 구매한 제주 막걸리와 편의점에서 구한 와인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문어, 뿔소라회를 두고! 자리에 앉으니 수평선 위로 붉게 타오르는 해가 보였다. 일몰 무렵의 어촌 풍경은 말을 잃게 만들었다. 하늘은 주홍빛이었다가 금세 검푸른 색이 되었다. 해넘이와 함께 마치 섬 전체가 제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듯이, 일순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우도에서 나가는 배가 모두 끊긴 시간이라, 도로에 지나다니는 이도 없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혼란한 시절에 평화로운 휴가를 보낼 수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일지라도, 안전과 휴식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본다. 관광지로의 뛰어난 접근성을 지닌 동시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주거의 기능을 하는 스테이소도. 자연의 모양에 충실한 건축이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생활 방역이 필수가 된 뉴 노멀 시대에도 사람들은 그 이전처럼 여행을 지속할 것이다. 다만 그 정도와 방법에는 무수한 차이가 있겠지만. 저마다의 안전한 여행법으로 무탈한 여행의 시간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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