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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un 29. 2020

당신의 이력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

누군가의 이력을 살펴본다. 출생연도부터 학업, 첫 직업, 이후의 활동까지. 요즘 들어 습관화되었다고 할 만큼 자주 하는 행동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과거를 보며, 그들이 빚어낸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겹겹이 쌓인 시간이 연결된 n인분의 인생. 삶에도 모양이 있다면 사람들은 제각기 '나'에게 알맞은 모양을 만들고 있는 듯싶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노력으로 만든 그 모양대로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바지런히 과거의 모양을 깨고 새로운 모양을 찾아 나간다.



나는 후자의 삶을 발견했을 때 희망을 느낀다. 지금의 내가 과거와는 다른 일을 해서, 새로운 이력을 직조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전에 공부해본 적 없는 분야의 일. 하지만 반드시 도전하고 싶은, 경험하고 싶은 직업. 이 '길'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나'와 '타인'의 경우를 비교하며 헤아려본다.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나의 상황에서, 내가 꿈꾸는 길을 걷고 있는 타인을 볼 때의 그 감정이란. 단순히 부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자신'이 된 걸까? 어떤 내력이 현재의 '자신'으로 이끈 것일까? 각기 다른 환경과 사정 속에서도 결국 해낸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그중에서도 나는 삶을 '자주' 바꿔낸 사람들의 이력에서 더욱 깊은 용기를 얻는다. 다행히, 세상에는 개척자가 도처에 살고 있다. 아주 담대하고도 위대한 사람들이 말이다. 소식은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나의 선배 중에서는 4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항공기 조종사가 된 사람이 있다. 나의 친한 친구 S는 아나운서 자리를 내려놓고, 이집트에서 장기간 살며 잠수부 자격증을 따고 있기도 하다. 한 인터넷 기사에서 화가를 꿈꾸던 미대생이 은행원과 승무원, 변호사를 거쳐 경찰관이 됐다는 기사도 접했다. '경력 끝판왕'이라고 불릴 만큼, 분야를 넘나드는 행보였다.



최근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 알게 된 게스트의 이력은 재미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는 작가(글과 그림이 동시에 가능하다니!)면서 동시에 학자이며 번역가이다. 덧붙여 그는 한국국제협력단 소속으로 페루에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포르투 대학교에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학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했으며,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 박사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또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을 엮고 옮겼으며 페소아와 그의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리스본에 관한 책을 썼다. 이 사람이 경험해 본 직업은 대충 몇 개일까 짐작해보았다. 대여섯 줄짜리 이력 속에 감춰진 어마무시한 내공을 감각할 수 조차 없겠지만,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과업은 명확하다. 누군가의 이력으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얻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력을 만났을 때, 내가 걸어야 할 길도 분명해진다. 나는 텍스트와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떤 분야의 글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중에서도 소설가를 꿈꾼다. 그리고 평생 여러 나라를 떠돌고 싶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글을 쓰는 삶.   



나처럼 당신도 누군가의 이력, 응축된 삶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면. 오로지 나 자신을 믿는 그 마음 하나로 이 시절을 통과하자고 말하고 싶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자고. 미래의 내게 부여될 멋진 이력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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