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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Apr 06. 2017

기록의 가치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




1.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왔고, 어느덧 휴학한 지 한 달이 흘렀다. 나에게 있어서 3월은 무엇이었나. 영국 여행을 다녀온 후 집에 콕 박혀 지내는 날이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달까. 그래도 가끔은 운동하고, 가끔은 책 읽고, 가끔은 토익 공부를 끄적여봤다. 무언가 몰입하고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후회는 안 하지만 나는 무언가에 빠져 있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게임에라도 빠져볼걸.




2. 나와 같은 시기에 휴학을 결정한 J양을 만났다. J양과는 대학 방송국에서 만나 일을 함께 해왔고 학교에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니 사적으로 약속을 잡아 만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얼굴을 보는 사이다. 그런 우리가 오랜만에 단 둘이 만났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그녀는 요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공부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보러 다닌다고 했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야의 일이라 듣는 내내 매우 흥미로웠다. J양은 예술학 전공자답게 발상이 독특했고, 남달랐다. 주위의 과 친구들이 그녀의 발상에 영감을 주는 듯했다. 그녀는 휴학기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에 열중하려 한다고 했다. 카메라를 눈 앞에 두고 말을 하거나, 자신이 생활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담는다고 했다. 이건 영화 공부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라고 했다. J양은 예전부터 그랬다.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참 많은 친구인 거 같다. 방송을 만들 때에도 주제가 '나'였다. 일생동안 진짜 '나'를 찾는 게 그녀의 숙원 같았다. 그러면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쫓는 일, 이것이 그녀가 꿈꾸는 목표다. 대화의 주제도 자연스레 우리 자신에 대한 것으로 흘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까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우리 모두 저마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 누구도 완전하지 않으며 불안감을 안고 산다. 나 또한 어느 정도 그려놓았던 미래가 흔들리면서 혼란스러웠다. 어떤 것에도 열정을 가지지 않고 흘려보낸 요즘이 미래에 대한 책임 회피 같기도 했다. J양은 나의 근황과 생각, 고민들을 듣더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며 조급해하지 말고 나만의 것들을 이어가라는 말을 해줬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유일하게 몰입하는 때이고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기록하는 것. 이것이 나만의 것이고 앞으로도 유지해나가야 할 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내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아직 누군가에게 당당히 말하기엔 수줍은 마음이 더 커서 차차 알리고 싶다. 그런데 J양이 요즘에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고 해서 나도 내 브런치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녀는 꽤 놀라는 반응과 함께 브런치를 알고 있다고 했다(반가웠다). 여하튼 그녀에게 말하면서 글을 잘 쓰지 않는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됐다. 생각만큼 쉽게 쓰이지 않는 글이기도 하지만 기록의 가치를 등한시했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글이 곧 나니까. 글 쓰기를 하면서 느낀 분명한 사실은 말보다는 글이 나에게 더 진실하다는 거다. J양이 남긴 숙제를 풀어갈 방법을 찾았다. 나만의 글을 써 나갈 것.




3.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소소한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밥을 함께 먹는 행위가 식구를 '식구'답게 한다. 서로 간에 오가는 대화도 정겹고 애정이 가득하다. 낮에는 각자의 일정을 묻고, 저녁에는 일과 보고와 아버지의 인생 강의(술잔과 함께)가 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소싯적에 글 좀 쓰셨다던데 내가 반의 반만 닮았어도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이미 인생의 여러 맛을 본 사람답게 언니와 나에게 교훈 있는 말을 아낌없이 하신다. 어머니는 우리를 무한정 품어주시는 반면 아버지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렇지만 바깥세상에서 물리고 뜯겨도 나에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돼줄 사람들. 가족이다.




4. 읽지 않는 삶은 피폐하다. 독서가 부재한 삶은 더없이 황량하다. 예전보다 책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 잘 읽지 못한다. 시간이 많으면 읽겠다는 건 핑계지만, 피로한 몸뚱아리는 자꾸만 잠을 찾는다. 잠들기 전 10분이라도 투자해야겠다. 그래도 얼마 전에 읽은 책 중 마음에 콕 박힌 구절이 있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한창훈 작가의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근래의 세태를 보고 있으면 소름 끼치게 와 닿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진짜 진짜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남을 존중하는 마음. 삶에서 지켜야 할 태도다.




5. 결이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이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릴 수는 없겠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하고 빛나는, 결이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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