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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Jan 15. 2018

새로운 발견

UNITED KINGDOM


돌아보니 실로 꿈같은 나날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고 특별했다. 낯선 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생경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건 쉬웠지만, 소화해내는 건 매 순간 어려웠다. 나는 타지의 이방인이 되어 다수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황금률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배움의 길에 놓인 고난은 피할 수 없다. 처음이라서 더 기뻤고, 서툴렀고, 그 사이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 런던에 머물면서 새로이 발견한 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해본다.


London


내가 마주한 런던의 모습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무단횡단과 길거리 흡연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의 존재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길을 건넌다. 물론 차와 자전거가 오는지 확인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건너는 것이긴 하지만, 이토록 자유롭게 길을 건너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처음엔 나도 신호를 잘 지키다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아무 때나 막 건너기 시작했다.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바보같이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그럼에도 차들은 보행자를 최우선적으로 배려하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게 내 결론이다. 그리고 길거리 흡연. 영국에서 길거리 흡연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옆사람에게 연기가 닿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핀다. 오후의 햇살을 느끼기 위해 카페테라스 자리에 앉는다? 곧바로 흡연자들의 향연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지붕 없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런던의 무단횡단 문화 다음으로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거리에서 발견한 수많은 노숙인들이 대부분 청년이라는 것이다. 그간 나에게 '노숙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이 든 남성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노숙인의 모습은 중년 혹은 노년의 남성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곳 Homeless는 남성, 여성, 노인, 청년,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 곳곳에 존재했다. 나는 영국에서 생각보다 많은 수의 홈리스들을 보았다. 그중에 선 저마다의 사연을 적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호소하며 동냥하는 사람도 적잖이 있었다. 젊은 노숙인의 모습은 내겐 너무 놀라워서 계속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가 캐임브리지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물어보았다.

"영국에는 왜 이렇게 젊은 노숙인이 많아?"

"글쎄, 나도 잘은 모르지만 영국인은 독립하는 시기가 빨라서

어려움에 처해도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 아닐까 싶어."


아,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은 없는 걸까. 더 나아가 나를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내가 프레 타 망제(PRET A MANGER)라는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있을 때, 젊은 남녀가 들어와서 샌드위치를 사 가더니 카페 바로 앞의 노숙인에게 다가가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한참을 대화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고, 대단했고, 따듯했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기에 상상으로 나마 짐작해보았을 뿐이다. 그 남녀 말고도 거리의 노숙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 옆에 함께 쭈그리고 앉아서 먹을 것을 건네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적어도 거리의 온정은 식지 않았다.

 


변함없는 회색도시, 런던. 내가 여행하는 동안 런던의 해는 쉽사리 볼 수 없었다. 비는 예고 없이 자주 내렸고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왜 영국 사람들이 날씨 이야기를 자주 하고 맑은 날을 감사히 여기는 지 이해가 되더라. 하지만 나는 축축하게 젖은 날씨마저도 사랑했다. 그래도 런던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특히 빨간색 전화박스나 이층 버스 그리고 거리의 고목나무는 런던이 내내 맑은 날씨를 보이는 도시였으면 되려 돋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날씨에 굴하지 않고 런던의 구석구석을 살펴본다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무지개 같은 색채를 지닌 도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런던의 지하철은 Underground 혹은 Tube라고 불린다. 총 14개의 호선으로 이뤄진 언더그라운드는 처음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몇 번 타고나면 이내 익숙해진다! 언더그라운드 간의 배차 간격이 매우 짧아서 놓쳐도 2~3분 이내로 다음 차를 탈 수 있고, 다른 line으로 갈아타는 것도 목적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쉽다. 독특한 점은 언더그라운드 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휴대폰은 터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과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영국인들이 우리나라 지하철을 탄다면 얼마나 놀랄지 상상이 돼서 웃음이 났다.


런던의 버스는 거의 모두 이층 버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빨간색의 이층 버스는 이 나라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영국을 한결 더 영국답게 만들어주는 상징이 아닌가 싶다. 이층 버스의 벨은 팅-하는 가볍고 밝은 소리가 난다. 버스의 고요한 적막을 깨는 유일한 경쾌음이랄까. 위칸에 타서 바깥을 바라보면 시야가 확 트인다. 그래서인지 위칸 맨 앞좌석은 언제나 인기석이다. 그 자리에 비길 기다렸다가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 역시 지하철만큼은 아니지만 배차 간격이 짧은 편이었고, 24시간 운행하는 버스도 많았다.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는 무조건 오이스터 카드로 탑승 가능하며 현금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군가 런던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찾는다면,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마켓'을 외칠 것이다. 런던은 생동감 넘쳐흐르는 마켓이 유독 눈에 띄는 도시이기 때문에. 런던에는 주말이면 마켓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켓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오감을 자극하는 각종 먹거리와 장신구, 그림, 꽃 그리고 거리공연까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런던의 마켓 문화는 내게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왔다. 포토벨로 마켓, 캠든 마켓, 브릭 레인 마켓, 올드스피탈필즈 마켓,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 등은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어느 하나 비슷한 모습이 없었다. 활력이 넘치는 마켓 분위기는 런던 여행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런던은 공원이 참 많다. 빌딩 숲 사이사이에 있는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조깅을 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꼭 공원 안이 아니더라도 거리 곳곳에 가벼운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스타벅스를 발견하는 일만큼이나 자주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여행 중 내가 가장 자극받은 부분이기도 했다. 하루의 시작이나 끝에 도심 속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건강하고 멋져 보였다. 런던은 '운동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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