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l Jan 22. 2018

런던의 서점

UNITED KINGDOM


나는 세상의 모든 읽을거리를 사랑한다. 누구나 저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존재하듯 나에게는 그것이 '무언가를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문과 책은 물론 잡지, 책자, 각종 홍보물까지.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우선 읽고 본다. 유독 재미있는 책이나 잡지를 발견했을 때 정신적 행복감과 풍요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좋은' 읽을거리를 향한 애정은 늘 삶의 우선순위에 존재한다. 이러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깨달은 때가 언제일까 기억을 거슬러보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인 것 같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언니가 갓 대학생이 되던 해. 언니는 학교에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올 때 가끔씩 <대학내일>이라는 캠퍼스 매거진을 들고 왔었다. 나는 그 잡지를 슬쩍 가방에 넣고 다음날 쉬는 시간 중간중간에 꺼내 읽었다. 마치 대학 로망을 온 신경에 불어넣는 듯 짜릿할 정도로 신세계였다. 그들의 외적인 모습, 자유, 생활방식. 그 모든 게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대학내일 사랑은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계속됐다. 수업에 지각을 할지라도 새로운 호가 나오는 월요일이면 그 잡지를 들고 강의동으로 뛰어올라갔다. 내겐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 쉽게 들을 수 없는 청춘의 목소리가 담긴 소중한 읽을거리였다. 이밖에도 카페에서 우연히 읽게 된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여행잡지는 내 두 번째 '애정잡지'가 됐다. 일상을 살아갈 힘과 동기가 되어주는, 내 세계 너머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지면에 실린 지구촌의 면면을 보며 내가 나아갈 더 큰 세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러한 나의 취향은 여정의 군데군데에도 물들었다. '런던에 가면 서점은 꼭 가봐야지' 했는데 여러 번, 오랜 시간 머물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미 낯선 땅을 여행 중이지만 그곳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땅을 꿈꾸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Daunt Books


초록색 현판에 고딕체로 쓰인 Daunt Books를 발견한 순간은 환희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쇼윈도에 놓인 형형색색의 책들은 어서 다가와 펼쳐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서점 안으로 발을 내디뎠을 땐 조용한 공기에 흐르는 책 냄새가 나를 먼저 반겨주었다. 여행자를 위한 서점답게 전 세계의 여행서적이 가지런히 진열돼있었다. 나는 던트 북스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압도적인 규모에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때마침 이곳에선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핑거푸드와 함께 잔을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떠한 주제로 모인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공간이 바람직하게 쓰이고 있음에 감탄하며 지하로 내려가 보니 'Korea'코너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서울과 북한 가이드북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다만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적은 책의 수는 조금 아쉬웠다. 외국인을 매료시킬 만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애국심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를 확신하며 나서려다 서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에코백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한 끼 굶더라도 이건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명한 초록빛의 에코백을 구입해 기분 좋게 들고 나왔다.      



Waterstone's


런던 곳곳에 위치한 Waterstone’s는 유럽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고 하더니, 층마다 엄청난 규모의 책들이 분야별로 진열돼있었다. 고맙게도 책상과 의자가 함께 놓여있어 부담 없이 책을 읽다가 가도 좋은 곳이었다. 나도 책 몇 권을 뽑아 들고 백발의 영국인 할어버지 옆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런던에 관한 가이드북을 읽으면 '무지'의 상태라 읽어도 머릿속에 입력이 잘 안됐는데, 며칠간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내가 아는 지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는 즐거움이 이런 건가. 마찬가지로 서울 가이드북을 볼 때는 익숙한 장소를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니 재밌었다. 론리플래닛에서 낸 'Best in travel 2017'에선 내가 늘 갈망하는 숲 속의 자연을 보면서 언제쯤 이런 곳에 가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방랑벽이라면 지독하게 앓고 싶은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때가 올까?



The Notting Hill Bookshop


두 번째로 찾아간 노팅힐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The Notting Hill Bookshop. 영화 <노팅힐>에서 착안한 듯 한없이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부드러운 노란 조명이 그 안에 놓인 아기자기한 책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중 더러는 워터스톤스에서 보았던 책들이었다. 서점 특유의 공기와 적당한 감도의 빛이 나의 탐독 욕구를 한층 자극했다. 노팅힐 북샵에서 펼쳐 보았던 책은 요즘 떠오르는 라이프스타일인 휘게를 담은 'The Little Book of Hygge'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소박한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는 책이었다. 이곳에서도 이제는 의례라도 된 마냥 하얀색의 깔끔한 에코백을 사들고 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발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