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고 싶은 몽골4, BagaGazryn Chuluu

2주간의 몽골 여행기(2016)

by gil


내 막연한 상상 속 몽골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말문이 막히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몽골'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던 드넓은 초원은, 그 끝은 어디일까 가늠이 안될 정도로 넓었고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온전한 도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그만 언덕 뒤에 숨어서 볼일을 보는 중에 어떤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말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저 몽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6년 7월 5일.



아침에 일어나서 게스트하우스 스탭에게 USIM칩을 받았다. USIM은 국영 백화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지만, 투어를 아침 일찍 떠난다고 들어서 혹여 사지 못할까 봐 게스트하우스 측에 이메일로 미리 부탁했다. 하나로 세 명이서 나눠 쓰기로 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이용하는 8박 9일간의 고비 투어는 UB에서부터 남부 사막을 도는 코스였다. 하루에 한 장소씩 관광을 하고 근처에 위치한 현지 게르에서 숙박을 하는 식이다. 어제 짐을 푼 것이 무색하게도 다시금 짐을 싸고 당분간 씻지 못할 것을 대비해 깨끗이 샤워를 했다. 준비를 마친 후 조식을 먹으러 가니 아주 탐스러운 케이크가 있었지만 사 먹어야 하는 것이라 그냥 무료 조식인 토스트를 먹었다. 식빵에 블루베리잼이나 땅콩버터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다. 특별 친 않았지만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할 일행들을 처음으로 마주한 곳이기에 꽤 오래 머물렀다. 우리의 일행은 한국인 여자 동생들이었다. 국적도, 성별도, 나이조차도 모르고 만나게 될 동행인들에 대한 기대가 무지 컸는데 같은 한국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리보다 동생인 21살 여자애들이라니!!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국영백화점에서 장을 본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국영백화점까지 우리의 가이드인 몽골인 디마와 함께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이지만 우리와 같이 가준다고 했다. 이땐 그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지 전혀 몰랐다. 첫 만남에 쑥스러웠는지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영어를 잘 못한다. 어쩐지 돌아오는 대답이 짧더라니! 무튼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디마와 엉엉 울면서 헤어지는 사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지. 국영백화점 1층에 위치한 환전소에 가서 환전부터 했다. 셋이 사용할 공금과 개인 돈을 모두 포함해 12만 원을 환전했다. 몽골 화폐인 투그릭을 쉽게 계산하는 방법은 쓰여있는 금액에서 절반 정도의 원화로 생각하면 된다.(ex. 1000T = 약 500원)



환전하는 곳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마트 코너에서 장을 봤다. 투어 중에는 하루에 1인당 1L의 물만 주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물과 먹을거리를 샀다. 처음 보는 몽골 마트에 신이 나서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매일 마트에 들린다는 얘기를 듣고 참았다.



우리는 8인승의 러시아산 봉고차인 '푸르공'을 타고 달린다. 나는 이 귀여운 비주얼의 차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승차감도 꽤나 편안하다고 느꼈다. 일행들과 서로 마주 보게 되는 차의 구조. 처음에 정방향으로 앉은 우리는 역방향에 앉아 있는 동생들과 흡사 소개팅 같은 대화를 나눴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인 우리와 달리 이들은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며 사진 동아리에서 알게 된 사이라는 것. 몽골의 밤하늘을 담고 싶어서 여행을 온 거라고 한다. 나는 이들이 어린 나이에(?) 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쉴 새 없이 재잘되는 우리를 실은 푸르공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한 식당에 멈춰 섰다.



디마는 국물 있는 것, 없는 것. 이 둘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뭐가 더 나아요?'

'없는 거.'

그럼 없는 거로요! 저도 저도!! 결국 우리는 없는 것으로 통일했다.

한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양고기 요리와 피자 모양의 빵, 수테차가 나왔다. 첫 양고기 요리라 무척 기대하며 한입 먹어보았다. 헉! 한국에서 먹던 양꼬치의 양고기 맛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고, 씹는 순간 약간 누린내가 올라왔다. 육질은 그나마 비슷했다. 많이는 못 먹겠다. 빵에 싸 먹으면 먹을 만했다. 빵은 아무 맛이 나지 않지만 식감이 아주 쫄깃하고 피자 모양 때문인지 맛있게 느껴졌다. 수테차는 염소젖을 끓여 만든 것으로 싱거운 설렁탕의 맛이다.



밥을 먹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어디가 끝일까 싶을 정도로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광활한 대지. 우리 기사님 '가나'는 이런 땅의 한 복판에 있는 식당을 어떻게 찾으신 걸까 굉장히 신기했다. 인간 내비게이션이 따로 없는 가나 기사님은 정말이지 온화하고 듬직하셨다.

우리의 푸르공도 사랑스럽지만, 영국인 커플의 지프차도 멋져! 2인 투어를 신청한 David와 Karin도 우리의 일행으로 영어에 능한 '에르카'라는 몽골인 가이드, '보마' 기사님과 함께 한다.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여를 달렸을까. 차를 고치기 위해 멈춘 순간 화장실을 가고 싶었던 나는 우산을 펼쳐 들었다. 이것이 몽골에서 화장실을 해결하는 법이라고 배웠지만, 나중에 깨달은 바로는 언덕 뒤에서 웅크리고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은밀하고 편하다! 우산을 펴는 것 자체가 지금 나 볼일 봐요~하고 광고하는 것 같아서 이 날 이후로는 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볼일 본 언덕에서 푸르공을 바라보았을 때 풍경이 예술 같았다. 이 순간을 꼭 기록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포즈를 취했으나 우리의 가이드 디마가 체조를 하는 순간에 찰칵. 시선 강탈이다.



그 이후에도 차의 엔진에 문제가 있는지 몇 번이나 멈췄다. 가나가 금세 뚝딱 고쳐내시긴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되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불안감은 이내 사라질 만큼 아주 달고 맛있는 자두와 맥주를 마셨다. 몽골에는 과일이 많이 나지 않아서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이 자두 역시 러시아산! 맥주는 몽골 맥주로 따뜻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Baga Gazryn Chuluu(바가 가즈링 촐로)'에 도착했다. 바가 가즈링 촐로는 화강암 암석지대의 붉은 바위산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종종 바위에 제사를 지내러 오는 곳이다. 칭기즈칸이 여기에서 말을 세워 풀을 먹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위산의 규모가 대단했다. 바위산 사이에 만들어진 동굴에 들어가 보고, 평평한 바위 언덕에 누워서 하늘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우리의 가이드 디마는 33살의 몽골인이다. 2002년도에 한국에 돈을 벌러 왔었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 한다. 그는 당시 19살 소년이었다. 가구 공장과 이삿짐 일 등 몸을 쓰는 일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때 한국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이태원이란다. 이태원에서 술 먹고 놀러 다니는 게 제일 즐거웠다고. 나랑 잘 통할 거 같은 느낌이 살짝 스쳐갔다.



바가 가즈링 촐로의 옛 사원 터인 'Delgeriin Choiriin Khiid(델게링 초이링 사원)'에 올라가 보았다. 곳곳에 돌탑 같이 생긴 것이 많았는데 이것이 어워라고 한다. 몽골에서는 이 어워에 돌을 얹고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비는 전통 신앙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비슷하다.



몇 시간여를 더 달려 우리의 첫날 숙소인 게르 캠프에 도착! 사진으로만 보던 게르를 실제로 보니 무척 흥미로웠다. 이곳에 살고 있는 몽골인 가족들이 여행객을 위해 꾸며 놓은 이 게르는 딱 6개의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주 아늑하고 쾌적했다. 나는 입구에서 두 번째에 놓여있는 침대에 짐을 풀었다.



게르 밖으로 나가니 웬 뽁뽁이(?) 같은 것이 있었다. 물을 넣어서 하얀색 주둥이 부분을 누르면 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물을 아껴 쓰기 위한 도구인 듯싶었다. 물이 귀한 몽골에서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기 위한 몽골인들의 지혜였다. 나도 이 절약에 동참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물을 최대한 아껴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저녁은 디마와 에르카가 함께 만든 양고기 요리였다. 그런데 점심에 먹었던 양고기와 달리 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고 너무나 맛있었다. 또 마늘종과 토마토 샐러드 등의 야채가 있어서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우리 팀원 모두가 극찬한 최고의 저녁이었다. 몽골의 밥은 한국의 밥보다 푸석푸석하고 입에 덜 감기는 맛이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세희가 가져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우리를 담고, 디마도 한 컷 찍어주었다. 훗날 이 사진은 우리가 디마에게 장난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쓰기로 하고. 파란 하늘과 초록 땅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듯 너무나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몽골의 땅에서 자연에 대한 찬탄은 끊임이 없다.



이 땅을 조금 걷다 보면 새싹과 꽃이 불규칙적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나 있다. 꽃 안에 사진을 꽂으니 정말 예뻤다. 서경이와 세희가 가져온 카메라로 하나의 예술을 담아내었다. 사진 찍고 놀다가 갑자기 배에 신호가 온 나는 푸세식 화장실 대신 언덕 뒤를 찾기 시작했다. 화장실 안의 냄새와 벌레가 참기 힘들었던 나는 차라리 어디 숨어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판단을 했다.



오 마이 갓.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마땅한 곳을 찾아서 볼일을 보는 도중, 어디서 다그닥 다그닥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말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급히 해결한 후 우리 게르로 달려가 세희와 서경이에게 '얘들아!! 나와봐!! 저기 말이 있어!!!!!'라고 외쳤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 있는 곳으로 함께 달려갔다. 말들은 이곳으로 물을 마시러 온 것 같았다.


말을 보기 위해 우리는 게르로부터 꽤나 멀리 달려왔다. 이제 말 무리 감상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세상에.. 말이 안 나오게 아름다웠다. 척박할 것만 같은 땅에 예쁜 꽃이 알록달록 피어있었다. 에덴동산이 이런 곳일까 싶을 정도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곳에서 결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로 잊고 싶지 않은 순간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먹먹한 감동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이 들판을 한참 동안 배회하다가 돌아갔다.



다시 게르로 돌아와서는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기로 했다. 해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지는 몽골은 낮이 매우 길다. 아무리 열심히 놀고 와도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멀었다. 아이들에겐 천국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미리 장 본 것들과 국영백화점에서 장 본 것들을 꺼내 소풍 분위기를 내었다. 우리는 일행 동생들과 가나, 디마까지 불러서 간식을 나눠 먹고, 게임도 했다. 가나와 디마에게 공공칠빵을 알려주었는데 꽤나 잘 했다. 그들이 틀렸을 때 너무 웃겨서 한바탕 자지러지기도 하고. 그리고 인디언밥의 벌칙을 빼놓을 순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우리의 소풍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까 본 눈부시게 아름다운 들판과 말을 보는 우리를 그려 보았다. 미술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나이지만, 특별한 순간을 꼬옥 그림으로 그려두고 싶었다. 낭만과 감성이 넘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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