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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Mar 29. 2018

수표의 등장

수표의 등장
  
  
마테오 디 칸티노는 매우 활기 넘치는 70세의 귀족이었다. 그는 짧은 양말과 내려오는 넉넉한 옛날 바지를 입고서, 메르카토 누오보 광자에 빙 둘러선 귀족과 상인들 가운데 서 있었다. 그때 은행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소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들이 놓은 덫에 쥐 한 마리가 잡힌 참이었다. 손에 빗자루를 쥔 소녀들이 광장 한가운데에 덫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덫의 고리가 풀리는 바람에 쥐가 순식간에 빠져나와 광장을 내달렸다. 소녀들은 쥐를 잡기 위해 빗자루를 든 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쥐는 숨어들 구멍을 찾아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마테오 디 칸티노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쥐는 칸티노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이내 그의 바지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뜻밖의 일을 당한 마테오는 몹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녀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쥐를 찾고 있었다. “어디에 있지? 어디로 갔지?” 그러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바지로 들어갔어!”
  
그 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소녀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밖으로 꺼내요, 밖으로 꺼내!” 당황한 마테오는 휘청휘청 걸어서 뒤편으로 갔다. 그러곤 은행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바지를 아래로 내렸다. 바지가 땅에 떨어지자 쥐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기에 있어, 여기! 쥐가, 쥐! 바지를 내려서 꺼냈어!” 소녀들이 쥐를 잡아서 죽인 뒤에야 소동은 끝이 났다. 한편 웃음거리가 된 마테오는 넋이 나간 채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14세기 말의 이탈리아 작가 프랑코 사케티의 소설을 읽으며, 당시 피렌체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다. 사케티는 소설을 통해 자신이 사는 세상과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달마티아의 라구사에서 피렌체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사케티는 생애 대부분을 피렌체에서 보냈고 말년에는 공직을 맡기도 했다. 그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위대한 문학가는 아니었지만, 메르카토 누오보 광장에서 벌어진 소동과 같이 자신이 일상에서 보고 겪은 소소한 것들을 기록한 그의 글 속에는 중세 후기 피렌체 금융의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있다. 당시는 메디치 은행이 설립된 시기였다. 메르카토 누오보 광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상인과 귀족들, 장난을 치는 은행 종업원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 종업원들은 메르카토 베키오(구 시장), 메르카토 누오보(신 시장) 사이를 달리며 여러 은행을 오갔을 것이다. 그들 손에는 일정한 금액을 보증하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수표라고 부르는 그 증서를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증권(polizze)'이라고 불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표는 1374년 피사에서 처음으로 발행되었는데, 피렌체에서도 차츰 널리 활용되었다. 은행의 수가 많아지고 은행간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간단하게 글로 쓴 지급 청구서가 필요해졌다. 한편 상대적으로 은행의 수가 적고 은행들이 모두 한 장소에 밀집해 있던 베네치아에서는 글보다는 직접 대면을 통해 지급 청구가 이루어졌다. 이후 15세기가 되자 수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일꾼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가령 피렌체 인근의 도시 라스트라 아 시냐에서 산 마르티노아 간갈란디 성당 건설에 동원된 벽돌공과 석공은 루첼라이 은행의 지점에서 급여로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꿨다.
  
  
  
참고 자료
  
‘돈의 발명’,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책세상, 2015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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