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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Mar 29. 2018

권력자와 중앙은행

권력자와 중앙은행
  
화폐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화폐란 집이나 유가증권, 예금과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헐어서 소비나 투자를 하거나 다른 재산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재산들의 형태를 잠시 바꿔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부를 다른 쪽으로 옮기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상징물, 기호, 기억장치가 곧 화폐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징물, 기호, 기억장치는 누가 만드는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물질 H₂O에 대하여 ‘water'나 ’물‘이라는 언어적 기호를 붙인 것은 국가가 아닌 개인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화폐‘라는 기호는 개인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지형을 표시하는 도로 표지판이나 차량 운행을 통제하는 교통신호와 같은 시각적 기호들은 국가가 관리한다. 그렇다면 ‘화폐’라는 기호는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처럼 화폐제도는 미스터리한 것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화폐제도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쿠데타나 혁명을 통해 힘들게 권력을 잡은 사람일수록 그런 욕망이 컸다. 발행 한도에 대한 족쇄를 풀어야만 혁명가들이 꿈꾸는 세상에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디치, 블라디미르 레닌, 히틀러, 이성계 등이 그 예다. 화폐제도를 향한 혁명가들의 노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메디치가의 ‘위대한 로렌조’는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절대권력을 휘두르다가 1479년 암살 음모를 간신히 피한 사람이다. 당시 동생이 그를 대신해 죽었다. 암살을 모면한 뒤에는 검거 선풍을 통해 정적들을 무참히 죽었다. 이 점에서 히틀러와 똑같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최고의 르네상스 운동 후원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던 ‘위대한 로렌조’는 잔인한 복수의 길을 걸었다. 유럽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불러와서는 광장에 전시된 시체들의 모습을 ‘가급적 창의적인 포즈’로 그리도록 하고 그 그림을 순회 전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자기가 만든 새 동전 ‘콰트리노 비앙코(quattrino bianco)'만으로 세금을 걷겠다고 했다. ’위대한 로렌조‘의 경호 비용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권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화폐제도를 손본 것은 히틀러가 1939년부터 군비확장을 위해 중앙은행 법을 바꾼 것과 같았다. 덕분에 납세의무를 지는 피렌체 시민들이 새 동전을 구하느라 실질적인 세금 부담은 25%나 늘었다.
 

산드로 보티첼리, '코지 모 메디치의 메달을 든 남자의 초상', 1465년작 청년이 ‘콰트리노 비앙코’ 들고 있다.

 
  
혁명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절대권력자 레닌과 히틀러는 중앙은행법을 개정했다. 금과 교환되지 않으며 중앙은행이 시키는 대로 돈을 찍는 ‘자판기형’ 화폐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1936년 2·26쿠데타를 계기로 군국주의로 완전히 돌아선 일본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이런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돈, 즉 저화 발행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때 이성계는 “화권 재상”이라고 했다. ‘돈을 만드는 권력은 지극히 높은 곳의 한 사람이 쥐는 것’이라는 의미다. 조선이 건국된 뒤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태종도 저화 발행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혁명가들의 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이 퍼트린 흉측한 동전 ‘콰트리노 비앙코’는 시민봉기로 메디치 정권이 무너지는 그날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히틀러가 만든 라이히스마르크도 연합군이 베를린에 입성하는 날 연합군의 군표로 바뀌었다. 태종이 뿌리려던 저화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쌀과 베로 바뀌었다. 혁명을 성공한 사람들조차 화폐제도를 자기 손에 쥐고 있던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던 것이다.
  
화폐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화폐제도의 주도권이 국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통치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통치기간이 영원하지 않은 통치자가 유효기간이 무한대인 화폐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부당하다. 그렇다면 국민, 정부와 시장 사이를 연결해주는 제3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경험을 통해 얻은 귀납적 지혜가 있을 뿐이다. 바로 독립된 중앙은행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과 패전국이라는 다른 출발선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영란은행과 분데스방크의 차이가 독립된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케인즈를 계기로 인류는 황금 족쇄에서 벗어났다. ‘돈=금’이라는 무식한 불문율을 깨고 좀 더 세련된 방법을 찾았다. 돈에 대한 약속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케인즈의 생각은 1944년 IMF의 탄생으로 실현되었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화폐와 달러의 교환을 약속하고, 미국은 금 1온스당 35달러를 약속함으로써 돈이 잘 도는 평화로운 문명사회를 만들었다. 개인이 아닌 국가 간의 협약을 통해 국제통화제도를 만드는 것은 화폐제도가 국가 주권의 산물이라는 크나프와 미첼 이네스의 주장,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케인즈가 고안한 제도도 완전하지는 않다. 오늘날 IMF 체계는 도전받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시스템이 이를 대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금과 결별한 문명사회가 다시 야만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그리고 민주적 통치자가 폭력적 통치자가 되지 않으려면,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화폐가치를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 안전장치는 바로 독립된 중앙은행이다. 이것이 유구한 화폐의 역사에서 인류가 마침내 금이라는 안전장치를 포기하면서 새로 찾은 해답이다. 화폐 국정론이라는 진화된 생각은 독립된 중앙은행이라는 보조장치가 있어야 안전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숫자 없는 경제학’, 차현진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11
  
  
길건우 자산관리사(

rlfrjsd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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