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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Mar 29. 2018

오즈의 마법사와 복본위제도

오즈의 마법사와 복본위제도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 영화의 한 장면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물러나는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화폐제도가 최고 쟁점이었다. 36세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민주당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는 서부 네브래스카 하원의원 시절부터 대단히 급진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의 대표적인 대선공약은 복본위제도 복귀였다. 사회주의적 성격을 지녔던 다른 군소 정당에서도 그의 공약을 지지하고 나왔다. 이로써 브라이언은 민주당만이 아닌, 서민층을 대변하는 진보세력의 연합 후보로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화 <오즈의 마법사>(1900-1919)가 발표되었다. 이 동화는 네브래스카와 이웃한 사우스다코타 주의 자방 신문 발행인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이 쓴 것이다. 바움은 당시 지역정서를 대변하는 브라이언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직업상 그것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즈의 마법사>라는 동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왔다.
  
도로시라는 소녀의 모험을 그린 이 동화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거기에는 많은 정치적 코드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캔자스 주(미국 영토의 중심, 미국의 서민층)에 사는 여자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토네이도(미국 사회의 혼란)에 휩쓸려 어딘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로시가 도착한 곳은 오즈(Oz, 무게 단위 ‘온스’의 약자)라는 동네의 서쪽 끝(서부)이었다. 그곳을 다스리던 서쪽의 착한 마녀가 토네이도 때문에 죽은 것(서부 경제의 피폐)을 안 맨발의 도로시는 그녀의 은색 구두를 신는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역시 길을 잃은 세 친구를 만난다. 양철 인형(상공업·공장 노동자), 허수아비(농업, 농민) 그리고 목소리만 크고 용기가 없는 사자(정계)였다. 이들 넷은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마법사가 오즈의 동쪽 끝(워싱턴 DC)에 사는 또 다른 마법사라는 말을 듣고 노란 벽돌로 만들어진 길(금본위제도)을 따라 험난한 여행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마법사의 집에 도착했더니, 마법사는 푸른색 에메랄드로 만들어져 바깥세상이 푸르게만 보이는 이상한 집(금권정치)에 갇혀 사는 사람이었다. 직접 만나보니 그 마법사는 소문과 달리 아무 마법도 없는 무능한 존재(클리블랜드 대통령)였다. 그 마법사는 자기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도로시가 신고 있던 은색 구두(은화 발행)야말로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신통한 물건이라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고 은색 구두를 부딪치며 소원을 비는 순간 도로시와 친구들은 각자의 소원을 모두 이룬다.
  
이 동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복본위 제도를 통해 서민 중산층의 민생고가 해결되고 모든 산업이 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실현할 사람은 브라이언밖에 없다는 것이 숨겨진 정치적 코드였던 것이다.
 

1대 16비율의 복본위 제도를 주장한 브라이언 후보

 
  
1896년의 대통령 선거는 금본위제도냐, 복본위 제도냐를 두고 남북전쟁 이후 계속되어왔던 지역 간 대결의 마지막 승부였다. 그 선거에는 철저하게 지역감정이 담겨 있었다. 결과는 공화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경제력을 가진 동·북부에서 반기업적 정서를 가진 브라이언을 공산주의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브라이언이 당선되면 회사문을 닫겠다고 위협을 하면서 노동자들에게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을 강요했다.
 

금본위제도의 우위를 알리는 매킨리 대통령. 군인, 사업가, 교수, 농부 등 지지자들이 들고 있는 것은 바로 금화다.

  
  
금본위제도를 지지하는 매킨리 후보가 당선되면서 세상을 곧 뒤집을 것 같이 시끄러웠던 복본위제도 옹호론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브라이언은 이후에도 두 번 더 대권에 도전했으나 복본위 제도를 주장하는 그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일만 생겼다. 1896년 대통령 선거 이후 남아프리카와 호주 등지에서 새로운 금광이 연속적으로 발견되고 금을 쉽게 추출하는 새로운 공법이 개발되면서 금의 생산량이 세계적으로 크게 늘었다. 즉 은을 돈으로 쓰지 않는데도 인플레이션이 생길 정도로 화폐공급이 늘어났다. 1893년의 지독했던 불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 매킨리 대통령은 1900년 마침내 금본위법(Gold Standard Act)을 자신 있게 제정했다. 이때는 더 이상의 소동도, 반대도 없었다. 이후 복본위 제도를 주장하는 정치세력들은 미국 사회에서 영원히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참고 자료
  
‘숫자 없는 경제학’, 차현진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11
  
  
길건우 자산관리사(

rlfrjsd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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