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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Apr 01. 2018

은행가와 정부은행의 등장

은행가와 정부은행의 등장
  
  
초창기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들은 개인 은행가들이었다. 은행가(banker)라고 불리긴 했지만 별다른 제약 없이 금융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데다 비금융 사업에 주력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은행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개인 은행가들은 정부를 상대로는 장기 대출을, 일반을 상대로는 단기 금융 성격인 환어음(bill of exchange) 할인, 예금 수취, 귀금속 거래 등을 주로 영위했다. 개인 은행가들은 별도의 법인격을 부여받은 정부은행(public bank)이나 상업은행과 달리 개인 또는 개인들의 합자(partnership) 형태를 띠고 있었다.
  
14세기 초반, 초기 금융업이 발달한 이탈리아에서는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바르디, 페루치, 프레스코발디 등 소위 콩파니(Companies)라 불리는 개인 은행가들이 활동했다. 이들의 주요 고객은 당시 전쟁을 일삼던 각국의 왕실과 원거리 중개무역에 종사하는 상인들이었다. 특히 플로렌스의 개인 은행가들은 면직물 산업의 발달로 영국에서 양모를 수입하게 되자 환어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금융 발전을 이끌었다.
  
플로렌스는 1348년 흑사병이 번지며 쇠락했다가 1400년 초 메디치가가 등장하면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메디치가는 환전, 원격지 무역을 위한 환어음 할인, 전당포업, 국왕 등 권력자들에 대한 대출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로마의 교황에게 보내는 헌금을 모아 로마나 아비뇽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메디치가에서 여러 명의 교황이 배출된 것은 이러한 인연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플로렌스 이후 15세기에는 제노아와 베니스가, 16세기에는 앤트워프(Antwerp)가 금융 중심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16세기 말 스페인 용병에 의해 앤트워프가 포위되면서 다시 금융의 중심지는 암스테르담으로 자리를 옮겼다. 암스테르담은 약 150년간 세계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가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쇠락한 후 런던에 그 자리를 넘겨준다.
  
15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은 앞다투어 정부은행 설립에 나선다. 주화의 유통 질서를 바로잡고 대외 무역의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나침반의 발명 이후 발달한 항해술은 원거리 시장 개척을 가능케 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각국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례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인 80년 전쟁(1568~1648년)과 유럽 전역을 휩쓴 30년 전쟁(1618~1648년)을 동시에 치렀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로 두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영국과 해상 패권을 놓고 무려 세 차례(1652~1654, 1665~1667, 1672~1674년)의 전쟁과, 프랑스-스페인 연합군과 프랑스-네덜란드 전쟁(1672~1678년)을 치렀다. 이후 루이 14세의 침략에 대응한 아우크스부르크 전쟁(1688~1697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9~1748년)에도 참전했다. 대충 더해봐도 네덜란드가 전쟁을 치른 기간은 무려 150년이나 된다. 이렇듯 장기간 계속된 전쟁은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했으며 이로써 왕실과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 그리고 돈을 가진 은행가들 사이에는 서로를 돕고 지켜주는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상인은 자신들의 교역망을 지켜주고 각종 상거래 계약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를 필요로 했다. 국가 역시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교역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상인은 원거리 무역을 위해 환어음 등 각종 지불 수단을 유지해주는 은행가들이 필요했고 국가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가가 필요했다. 은행가 역시 상인과 마찬가지로 계약의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국가, 상인, 은행가의 이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정부은행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은행권 발행을 통해 발권은행으로 진화했고 훗날 중앙은행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모든 정부은행이 발권 기능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참고 자료
  
‘다모클레스의 칼’, 유재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2015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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