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경제 공부
저자 박유연
출판 알키
발매 2017.07.10.
금융사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신용등급
금융은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 각종 돈거래를 믿고 하려면 상대방의 신용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신용은 겉만 봐선 판단하기 어렵다. 잘 아는 사람이라면 평소 그의 행실을 따져 신용을 판별할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이런 판단이 불가능하다. 이럴 때 지표가 돼 줄 수 있는 게 신용등급이다. 이를 기반으로 금융사들은 수많은 사람과 금융거래를 한다. 신용등급은 높건 낮건 누구나 갖고 있다.
당연히 신용등급은 높을수록 유리하다. 그래야 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신용카드 사용한도도 높게 부여받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신용등급이 높게 유지되도록 관리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오해가 많다.
신용등급에 대한 5가지 오해와 진실
개인신용등급은 신청한다고 해서 매겨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경제활동을 하는 순간 자동으로 생성된다. 금융사가 각종 금융거래 결과를 신용정보사로 보내면 거래 규모, 연체 여부 등을 따져 신용정보사가 알아서 개인 신용등급을 부여한다. 신용거래를 성실하게 할수록 신용등급이 올라간다.
신용정보사로는 나이스평가 정보, 코리아크레디트뷰로, 서울신용평가정보 등이 있다. 이곳 홈페이지에 방문하면 무료로 내 신용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신용등급에 대해 흔히들 잘못 생각하는 것 5가지다. 이 오해를 한번 풀어보자.
첫 번째 오해 : 대출받지 않는 사람의 신용도가 더 높다.
아니다. 신용등급은 앞으로 1년 안에 90일 이상 연체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수치화할 것이다. 대출받은 이력이 없는 사람은 연체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 일단은 낮은 등급을 부여받는다. 기존에 대출을 받아서 잘 갚아나간 사람의 등급이 더 높다.
두 번째 오해 : 신용거래를 많이 할수록 등급이 올라간다.
아니다. 지나치게 많은 채무는 연체 위험을 높이므로 등급을 하락시킨다. 자신의 소득을 감안해서 적절하게 신용거래를 한 사람의 등급이 가장 높다. 또 여러 금융사와 거래를 하기보다는 주 거래 금융사를 정해서 한두 군데만 이용하는 게 좋은 등급을 받는 데 유리하다.
세 번째 오해 : 잦은 조회는 등급을 떨어뜨린다.
아니다. 신용조회만으로 등급이 떨어지진 않는다. 다만 신용조회가 실제 금융거래로 이어질 때만 등급이 영향을 받는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전화·인터넷대출 신청, 카드사 현금서비스 등을 이용하면 금융사가 신용조회를 하게 되는데, 실제 이런 고금리 대출은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고위험군이 주로 이용하는 대출이어서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주므로 가능하면 이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거래로 이어지지 않은 등급 조회는 등급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네 번째 오해 : 공과금 등 연체는 신용등급과 관련 없다.
아니다. 공과금, 카드 이용대금, 통신요금 등 소액단기 연체의 경우, 한두 번쯤은 상관없지만 반복되면 신용등급에 영향을 준다. 이에 따라 자동이체 등으로 소액 연체를 막아야 한다. 소액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연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다섯 번째 오해 : 체크카드만 사용하면 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체크카드 사용자는 대금을 연체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려워 등급 산정 때 항상 불리했다. 그러나 체크카드 사용이 장려되는 상황에서 체크카드 사용자의 등급이 내려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를 사용하는 데 따른 등급 산정의 불리한 조항이 없어졌다. 이에 따라 체크카드만 잘 사용해도 등급이 올라갈 수 있게 됐다. 다만 3년에 한 번쯤은 신용카드 사용 이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를 적절하게 섞어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
자신의 신용등급이 실제 소득이나 재산 수준에 비해 낮다고 생각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자신의 신용등급이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은 우선 신용평가사에 설명을 요구하면 된다. 그러면 신용평가사는 신용 등급 산정 때 반영된 소득 등 여러 요소와 평가 비중, 최근 달라진 개인 신용 정보가 신용등급에 미친 영향,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에 만족하지 못하면 금융감독원의 ‘개인신용평가 고충처리단’에 민원을 넣으면 된다. 이후 고충 처리단은 신용평가사의 등급 산정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시정 조치를 하게 된다.
개인신용등급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곳
·나이스평가 정보(주): www.creditbank.co.kr
·코리아크레디트뷰로(주): www.mycredit.co.kr
·서울신용평가정보(주): www.siren24.com
기업에 후한 신용평가사
기업도 신용등급이 있다. 다만 기업은 신용평가사에 돈을 내고 자신의 등급을 판별해달라고 요청해야 등급이 매겨진다. 일반인은 돈을 내지 않아도 자동으로 등급이 부여되지만, 기업은 대가를 내야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신용등급이 없는 기업은 은행이나 투자자들이 믿을 수 없어 대출이나 회사채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돈을 내고 등급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신용평가사들이 돈을 받고 등급을 부여해주다 보니, 기업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엄격하게 등급을 부여했다가, 기업들이 후한 신용평가사로 거래처를 바꿔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큰 문제가 불거진 후에야 등급이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기업 신용상황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등급에 반영돼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큰 문제가 터진 후에야 등급을 낮추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부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3년 신용등급이 내려간 기업의 수가 36개로 1999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한 바 있다. 신용평가사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이미 어려움을 겼었던 기업의 등급을 낮추지 않다가, 해당 기업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5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겨우 등급을 낮춘 것이었다.
퇴직연금 인기 급부상
모든 기업은 직원에게 퇴직연금을 주기 위해 매년 일정 금액을 모아 따로 적립한다. 이후 퇴직하는 직원이 나오면 여기서 돈을 꺼내 지급한다. 결과적으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매년 한 달 치 월급을 자동으로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퇴직연금은 적립과 지급 방식에 따라 DB(확정 급여)와 DC(확정 기여)로 나뉜다. 용어가 너무 어려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DB는 회사 책임형, DC는 개인 책임형이다. 퇴직연금을 아직 도입하지 않은 회사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퇴직금이 지급된다(2013년 말 기준 퇴직연금 도입률은 대기업 91.3%, 중소기업 15.9%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퇴직금은 DB형과 큰 차이가 없으므로, DB형에 준해서 이해하면 된다.
DB형은 회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20년간 근무한 뒤 퇴직하는 홍길동 부장의 사례를 보자. 회사는 홍 부장의 신입사원 시절부터 퇴직 시점까지 매년 한 달 치 월급을 홍 부장 앞으로 적립해 운용했다. 1년 차 때는 1년 차의 한 달 치 월급을, 2년 차의 한 달 치 월급을 홍 부장 앞으로 회사가 꾸준히 모은 것이다. 그러면서 지급하는 금액은 ‘근로자의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월급이 500만 원이라면, 여기에 근속연수 20년을 곱한 1억 원이 지급되는 것이다.
이때 회사는 손해를 봤을 수도, 이익을 봤을 수도 있다. 회사는 20년간 홍 부장을 위한 계좌를 운용하면서 운용 수익을 냈다. 여기에 원금(매년 모은 홍 부장의 한 달 치 월급)을 더한 금액이 1억 원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홍 부장 앞으로 매년 모은 한 달 치 월급액의 합계가 7,000만 원인데 회사가 이를 운용하며 4,000만 원의 이익을 내 1억 1,000만 원을 모은 상태라면, 1억 원을 지급하고도 1,000만 원이 남는다. 반면 7,000만 원을 운용하면서 2,000만 원의 이익밖에 내지 못해 9,000만 원만 모은 상태라면, 1억 원을 지급하기 위해 회사 돈 1,000만 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 결국 회사는 관련 법상 ‘근로자의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급여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책임지고 지급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익이 생기면 화시가 갖지만, 반대로 회사 돈을 채워줘야 하는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직원의 퇴직연금계좌로 매년 한 달 치 월급을 보내주는 것이다. 이후 근로자 스스로 책임지고 이 계좌를 운용하면 된다. 홍길동 사원이 입사 후 퇴직할 때까지 회사가 매년 한 달 치 월급을 홍길동 명의로 된 퇴직연금계좌로 넣어주면, 홍길동이 이를 펀드, 예금 등으로 직접 운용한 뒤 퇴직 후에 일시금으로 찾거나 연금으로 나눠 받는 식이다.
DB와 DC 뭐가 유리할까
DB와 DC 중 어느 방식이 더 유리한가를 보려면 임금 인상률과 자신이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된다. DB형은 매년 임금이 인상된 결과인 마지막 연도의 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지급한다. 그래서 임금 인상률이 수익률 기능을 한다. 임금 인상률을 이길 수 있는 수익률을 스스로 낼 자신이 있다면 DC형에 가입하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신입사원이 호봉 승급분과 별도의 노사협상을 통한 상승분을 합쳐 매년 7% 이상 임금 상승률이 기대된다고 하자. 스스로 운용해 매년 7% 이상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DC형을 선택해야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DB형을 선택해야 한다. 반면 임금 인상률이 평균 2%도 되지 않는 경우라면, DC형에 가입해 예금으로만 운용해도 그 수익률이 임금 인상률을 넘어설 수 있으므로 DC형이 적합하다.
만일 임금피크제를 앞두고 있는 DB형 가입자라면 즉시 DC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퇴직 시점의 월급이 지금보다 줄어든다. DB형 가입자가 이 상태에서 퇴직하면, 지금 보다 줄어든 월급을 기준으로 퇴직금이 지급된다. 예를 들어, 지금 월급이 500만 원인데 3년짜리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월급 350만 원인 상태에서 총 20년 근무하고 퇴직하면 7,000만 원(350만 원 ⨉ 20년)이 지급된다. 반면 DC형으로 전환하면 우선 지금 월급을 기준으로 한 퇴직금이 내 계좌로 들어온다. 예를 들어, 17년 차면서 지금 월급이 500만 원이라면 8,500만 원(500만 원 ⨉ 17년)이 내 계좌로 들어온다. 이후 앞으로 3년간 월급이 450만 원, 400만 원, 350만 원으로 떨어진 후에 퇴직하면 9,700만 원(8,500만 원 + 450만 원 + 400만 원 + 350만 원)에 3년간 운용수익을 더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 DB를 유지할 때와 비교하면 3,000만 원 전후의 차이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이런 사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퇴직금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서다. 반드시 나 스스로 챙겨야 한다.
회사의 퇴직연금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내 퇴직연금 유형을 알 수 있다. DC형 가입자의 경우 매년 수익률 등을 담은 보고서가 우편으로 발송된다. 퇴직연금 유형을 DB에서 DC형으로 바꾸려면, 퇴직연금 당시 노사합의서를 확인해봐야 한다. 개별 전환이 불가능하도록 합의돼 있으면 갈아탈 수 없다. 개별 전환이 가능하도록 합의돼 있으면 인사팀 등에 요청해 갈아타기가 가능하다. 갈아탈 사람은 원하는 금융사를 골라 DC형 퇴직연금계좌를 개설하면, 회사가 이 계좌로 적립금을 옮겨준다. DC형 퇴직연금계좌의 수익률은 각 금융사의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퇴직연금, 추가 투자해 볼까
정부는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개인적으로 퇴직연금을 추가로 납입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퇴직연금에 대해 연말정산 세액공제를 해준다.
일단 회사가 쌓는 금액은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다. 퇴직연금공제를 받고 싶은 사람은 금융회사를 찾아가 IRP란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근로자 스스로 납입하는 퇴직연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을 통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이후 이 계좌에 넣는 금액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한도가 있다. 연 700만 원 한도를 모두 채울 경우, 최고 105만 원 (700만 원의 1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금이 105만 원 줄어드는 것이다. 다만 연봉이 5,500만 원 넘는 사람은 12%의 세액공제율이 적용돼 이 경우 세액공제액은 84만 원 (700만 원의 12%)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한 유형별 퇴직연금 적립 방식
· 임금 인상률이 높은 근로자 → DB
임금 인상률이 근로자 스스로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을 웃돌 가능성이 큰 경우엔 DB형이 유리.
· 임금 인상률이 낮은 근로자 → DC
예금 같은 안전자산으로만 운용해도 그 수익률이 임금 인상률을 웃돌 경우엔 DC형이 유리.
· 임금피크제에 진입했거나 인상률이 정체 상태인 고참 근로자 → DC
임금 인상률이 마이너스이거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정기예금으로만 운용해도 무조건 DB 형보다 많은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음.
· 매년 연봉협상을 해서 연봉이 들쭉날쭉한 근로자 → DC
DB형에 가입했다가 퇴직 시점 연봉이 지금보다 떨어질 경우 퇴직연금 수령액이 크게 줄어들 위험을 피할 수 있음(단 퇴직 시점 연봉이 크게 높아질 경우 퇴직연금 수령액이 급증할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함).
세액공제받으려면 IRP 가입해야
IRP를 만들어두면 연말정산 외에 다른 이점도 있다. 퇴직 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6~38%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퇴직금을 IRP에 넣어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이보다 훨씬 낮은 연금 소득세(3.3~5.5%)만 내면 된다.
다만 유의사항은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가입한 지 5년 안에 중도 해지하면 해지금액의 16.5%를 소득세로 내야 한다. 세액공제로 돌려받은 세금을 다 토해내는 수준이다.
또 적립금의 최소 0.5%를 금융사에 수수료로 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IRP에 넣은 돈의 0.5%를 매년 관리수수료 명목으로 금융사들이 떼어가는 것, 그래서 젊을 때 낸 돈의 경우 수수료가 세액공제로 돌려받는 금액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4세에 100만 원을 내면 이것의 15%인 15만 원을 세액공제로 돌려받는데, 100만 원에 대해 퇴직할 때까지 매년 0.5%의 수수료를 내면서 55세가 되면 총 15.5%인 15만 5,000원의 수수료를 내게 된다(31년간 매년 0.5%씩 단순 계산 기준, 쌓이는 이자에도 수수료가 붙는 것을 감안하면 총 수수료는 더 커짐).
이에 따라 젊은 직장인의 경우 노후대비가 아니라 단지 세액공제를 받기 위한 목적의 퇴직연금 가입은 신중해야 한다. 상담을 통해 충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연간 2%에 가까운 수수료율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어서 퇴직연금에 가입할 때는 반드시 수수료율을 따져봐야 한다. 반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수수료보다 세액공제 효과가 더 크므로 가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해보는 게 좋다.
수익률에 현혹되지 말자
금융사가 내세우는 수익률이나 언론의 수익률이나 언론의 수익률 비교 기사는 신중히 접근하는 게 좋다. 수수료율이 높은 상품일 수 있고, 지금의 좋은 수익률이 가입 후 나의 수익률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현재 좋더라도 언제든지 고꾸라질 수 있는 게 수익률이다.
퇴직연금에 납입한 돈은 아쉽게도 퇴직 시점에 일시금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목돈을 쥐는 게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노후에 연금으로 받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한꺼번에 목돈으로 수령할 경우 상대적으로 많ㅇ느 세금을 내야 해서다. 그래서 세액공제를 받으면서 노후대비도 한다는 생각으로 가입하는 게 좋다.
IRP는 법상 1년에 1,800만 원까지만 넣을 수 있다. 보통은 세액공제 한도까지만 납입하는 경우가 많다. 적립금은 예금, 보험, 펀드 등으로 운용할 수 있는데 자신의 투자성향에 맞게 골라야 한다. 적립금을 잘 운용하면, 세액공제 효과를 보면서 투자 수익까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안전성을 추구하면서 예금으로만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입 후 투자수단을 바꾸고 싶으면 언제든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정해져 있다. 적립금의 30%는 관련 법상 원금 보장형으로 해야 한다. 노후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IRP에 쌓인 돈은 가입기간이 5년이 넘은 55세 이후부터 5~40년간 나눠서 받을 수 있다.
집 좀 사고 싶은데...
-LTV 와 DTI
부동산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늘 주목받는 것이 있다. LTV와 DTI가 그 주인공이다. 이를 완화할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첨예한 의견 대립이 벌어지곤 한다. 한 번은 주무부처 장관끼리 설전을 벌이다 급기야 싸움으로 번진 일마저 있었다.
도대체 LTV와 DTI가 무엇이기에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한번 자세히 파헤쳐 보자.
사문화된 규제?
LTV, DTI 규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도입됐다. 집값 급등이 본격화한 2002년 LTV가 생겼고, 2005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DTI 제도가 신설됐다.
그러나 강력한 규제 기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시장에 침체가 오면서, 정부는 LTV, DTI를 점진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빚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까지 대출을 제한해, 거래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나아가 LTV와 DTI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 LTV 규제가 사문화되는 현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LTV 상한선은 60~70% 지만, 대출 후 집값이 하락할 경우 이 비율을 넘어선 주택이 속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2억 원 대출을 얻어 4억 원짜리 집을 사면 이 집의 LTV 비율은 50%이다. 그런데 대출 후 집값이 3억 원으로 떨어지면 이 집의 LTV 비율은 66.7%(2억 원 / 3억 원 ⨉ 100)로 올라버린다. 지역에 따라 규제비율을 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6월 말 기준 LTV 비율을 초과한 대출자가 39만 5,145명에 이른다.
이런 상태의 대출자가 만기 연장을 신청할 때 규제의 취지대로라면 기준을 넘은 금액만큼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해 LTV 비율을 낮춰야 한다. 대출이 2억 원인데 집값이 3억 원으로 떨어진 경우라면 대출 가운데 2,000만 원을 갚게 해 LTV 비율을 60%(1억 8,000만 원 / 3억 원 ⨉ 100)로 맞추는 식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환 요구는 대규모의 연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라도 은행들은 이자 연체만 없다면 그대로 만기 연장을 해주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대출자의 어려움을 감안해 전액 만기 연장을 독려하고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정부가 규제 위반을 장려하는 일이 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LTV 비율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은행이 알아서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기준치를 넘더라도 대출을 더 해주고, 능력 없는 사람에게는 기준치를 훨씬 밑돌더라도 대출을 덜해주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규제의 부작용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LTV 규제가 가장 강한 편이다. 주요국의 LTV 규제를 보면 중국·홍콩 70%, 미국·스웨덴 80%, 핀란드 90%, 캐나다 95%, 일본 100% 등이다. 여기서 100%란 집값 전체를 은행 대출금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105%를 적용하고 있다.
집값보다 더 많은 금액을 빌려주는 것은 집 살 때 들어가는 세금, 중개 비용, 이사비용까지 대출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만큼 낮은 나라는 싱가포르(60%) 정도다.
또 명시적으로 일률적인 DTI 규제를 시행 중인 나라는 없다. 대출을 얼마나 해줄지에 대한 결정을, 기본적으로 금융사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은행들은 자율적인 규제를 하고 있다. 일본 주택의 평균 LTV는 규제 상한인 100%보다 크게 낮다. 규정상 집값만큼 대출해줄 수 있지만,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엄격한 심사를 하면서 평균 LTV가 규제 상한보다 낮게 형성되는 것이다. 유럽 평균 LTV도 68%로 규제 상한(80~105%)보다 낮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일을 정부가 강제로 규제하면 시장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강제 규정을 만드는 것보다 사후관리에 집중하는 게 외국의 대체적인 흐름이다.
규제 완화론자들은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갚을 능력 있는 사람이 빚을 늘리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사들이 빛낼 여력이 있는 사람에는 추가로 대출을 해주고, 빚이 거의 없더라도 갚을 능력이 없다면 대출을 해주지 않는 식으로 관리하면 가계부채와 금융사 건전성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한다. 그래서 LTV, DTI 규제를 없애도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괄 해제는 위험
그러나 LTV와 DTI를 전면 자유화할 경우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주면서 시장에 불안이 야기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거품이 끼는 것이다. 또 부동산 경기만 볼 게 아니라 1,0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LTV를 10% 포인트 높이면 주택 가격은 0.7% 오르는데 그치면서, 가계대출은 29조 원 늘어난다.
이럴 경우 무리해서 집을 샀다가 감당하지 못해 피해 보는 사람을 양산할 수도 있다. 특히 집값이 폭락하게 되면 무리한 대출이 경제 위기를 유발할 위험이 다분하다.
LTV와 DTI 규제 덕분에 그나마 2000년대 초·중반 대출이 지나치게 증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이런 조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이 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면 자유화는 어려운 것이다.
비율 강화가 현실적인 대응?
부동산 경기가 지나치게 떠올 경우 현실적으로 이를 완화할 5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일률적인 비율 하향 조정이다. 서울의 DTI 비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는 식이다.
둘째는 연령별로 적용을 달리하는 방안이다. 중장년층보다 오랜 기간 돈을 벌어 빚 갚을 능력이 있는 젊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만 LTV, DTI 비율을 여유 있게 적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대출 형태에 따라 차등을 둬서 원리금 일시상환보다 안정적인 원금분할상환 대출은 우대하는 것이다.
넷째는 변동금리형 대출보다 안정성 높은 고정금리형 대출을 우대하는 것이다. 고정금리형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출 상환 스케줄을 짤 수 있어 연체 가능성이 낮기 때문.
다섯째는 사업 자금 등 다른 목적이 아니라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해 한해 LTV, DTI 비율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고가 다주택자 또는 과열 지구에 대해 보다 강화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017년부터 DTI 규제를 신 DTI 규제로 개편했다. 신 DTI는 장래 소득 변화 가능성, 소득안정성 여부, 보유자산 등을 종합 평가해서 대출 규모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장래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젊은 대기업 직원은 대출한도가 늘고, 반대로 수입이 불규칙한 사람의 대출한도는 줄어든다.
또 보조지표로 DSR(총체적 상환능력 비율)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모든 금융사에 지고 있는 빚을 감안해 대출한도를 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연봉 5,000만 원인 김성식 씨에게 DSR 60% 규제를 적용하면, 김 씨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3,000만 원(5,000만 원의 60%)을 넘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가 연간 원리금 상환액 1,000만 원의 신용대출을 안고 있다면, 원리금 상환액이 2,000만 원이 되는 수준까지만 주택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다른 빚도 갖고 있는 사람의 주택 대출한도를 낮추는 효과를 낸다. 가계부태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