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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Apr 01. 2018

골목길 자본론

골목길 자본론              

저자 모종린

출판 다산북스

발매 2017.11.20.



생존을 위해 자동차를 포기한 일본 소도시
  
일본 작가 후지요시 마사하루의 ‘이토록 멋진 마을’은 일본 도야마현의 도야마시를 자동차 도시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도야마 역에 도착해 처음 접한 시가지 풍경을 마주하면 그의 묘사가 정확했음을 깨닫게 된다. 일본의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밀조밀한 거리 풍광은 찾아보기 어렵고 바둑판 같은 대형 도로에 고층 빌딩 숲만 보이니까 말이다. 
  
도야마가 자동차 도시가 된 배경에는 전쟁의 아픔이 있다. 역사 안내가 쓰우라 히로시는 도야마가 2차 세계대전 말 미국의 폭격 대상이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야마시는 다테야마 연봉(도야마현의 상지인 해발 3000미터 급 봉우리들로 구성된 산맥)의 눈이 녹아 만들어진 풍부한 수자원 때문에 예로부터 전력이 풍부했다. 그래서 군수공장들이 많이 들어섰고, 그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았다.”
  
미국 대공습으로 파괴된 이 도시는 전후 새롭게 건설됐기에 말 그대로 신도시라 불러도 무방하다.
  
2002년 취임한 모리 마사시 시장은 자동차 도시 도야마에 변혁의 바람을 일으킨다. 모리 시장은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도야마가 자동차 도시로 생존할 수 있을지 회의를 품었다. 시 예산의 상당 부분이 도로 수리와 건설 비용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당시 도야마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어두웠다. 전문가들은 2045년 도야마의 인구가 2010년 대비 23퍼센트 감소하고, 203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33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나친 자동차 의존도와 대중교통 이용 감소, 도심 공동화로 인한 도시 활력 감소,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높은 행정 처리 비용, 타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이 도야마의 미래를 위협했다.
  
모리 시장은 자동차 도시를 포기하고 대중교통과 보행 중심의 콤팩트시티(Compact City, 압축도시)라는 미래를 선택했다콤팩트시티 각종 상업, 주거, 편의시설 등의 밀집도를 높임으로써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으로 인한 현대 도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도시 모델이다. 교통, 의료, 관공서 등 도시 기능을 수행하는 시설들을 도심에 재배치해 효율적이고 복합적인 토지사용을 도모한다. 트램과 같은 친환경 대중교통수단을 보편화하고, 도시 확대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 외곽주변으로 녹지를 조성하는 등 자연환경과 함께 도시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해나가는 미래지향적 도시 개발 전략이다.
  
콤팩트시티 구축을 위한 최우선 사업은 대중교통 확충이었다. 모리 시장은 2003년 ‘도야마 대중교통수단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고, 2006년 도야마 LRT, 2009년 도심 순환선을 연이어 개통했다. 
  
전기를 이용해 도로면의 레일 위를 달리는 LRT는 도야마 역부터 도야마항을 연결하던 기존의 JR 항선을 리모델링한 신형 경전철이다. 모리 시장은 기존 전철보다 유지 관리 비용이 적게 들고 에너지 및 토지 사용이 절감되는 노면 전차를 도입했다. 경량화되고 소형화된 차량과 저진동·저소음이 특징인 노면 전철은 압축된 도심에 적합한 교통수단이었다. 2006년 3월 1일 폐지된 JR 항선은 80여 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2006년 4월 29일 LRT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13개의 정거장을 가진 센스 램(도심 순환선)은 2009년 12월 첫 운행을 시작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기존 두 개의 트램은 각각 편도 6.7킬로미터와 3.8킬로미터인 반면, 센스 램은 3.7킬로미터로 도심 지역만 순환함으로써 압축도 심 교통망을 강화했다. LRT와 센트램 건설로 모리 시장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도심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확충했다.
  
고령자가 많은 시의 특성상 자동차 이용이 불편한 시민들에게 트램은 매우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도보나 자전거로 도심을 다닐 수 있는 공공교통 이용을 편리하게 함으로써 자동차 의존도가 70퍼센트에 달하는 도야마의 환경 문제를 개선했다.
  
또한 ‘도심지구’와 역 주변의 ‘거주 촉진 지구’를 지정해 지역 거점을 활성화했다. 거주 촉진 지구는 철도역에서 500미터, 버스정류장에서 300미터의 범위로 약 3393헥타르의 규모였다. 적정 규모의 집약적 주거·업무·상업·문화·복지 지구가 형성되도록 지원해 자연스럽게 인구, 특히 노년층의 집중을 유도했다. 그 결과 주거지역 내에서도 기본적인 도시 어메니티를 누리면서 일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보권 마을이 탄생했다.
  
고령자에게 100엔 외출권(오데카케 정기권)을 발급하거나 건설업체나 입주자에게 최대 50만 엔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마을 내 상업시설 유치를 위한 어드벤티지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으로 시민들의 자유로운 유입을 유도했다.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해 도시를 가꾸어나가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심 활성화에 역점을 뒀다. 도시 중앙에 일 년 내내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랜드 플라자를 건설해 매년 100회 이상의 행사와 공연을 연다. 여행자와 주민을 도심으로 유인하기 위해 2015년 세계적인 유리예술 미술관인 도야마 글래스 미술관을 건축하고 다운타운의 랜드 마크로 적극 활용한다.
  
모리 시장의 콤팩트시티 정책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다. 2012년 OECD는 ‘콤팩트시티 정책 보고서’에서 도야마를 세계 선진 5대 도시 중 한 도시로 선정했다. 경제적, 사회문화적, 도시마 학적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언급했는데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대중교통 사용 인구의 증가다. 2006년 도야마 LRT가 개통한 후 기존 JR 항선 대비 승객이 2013년 2.5배 증가했다. 자동차나 버스로 출퇴근하던 시민들 중 약 23퍼센트가량이 LRT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트램 이용자는 주 중에는 2.1배, 주말에는 3.6배 늘었다. 특히 낮 시간에 트램을 이용하는 고령자가 크게 증가했다. 트램의 확대로 노년층의 생활 방식이 변한 것이다.
  
중심 시가지를 찾는 유동인구도 증가했다. 2011년 중심 시가지 보행자 수는 2006년보다 56.2퍼센트 증가하고, 2011년 중심 시가지의 빈 상점 수는 2009년보다 2.3퍼센트 감소했다. 주말 ㅣ준으로 시가지에 머무는 시간도 평균 128분으로 자동차 이용자보다 15분 길어지는 효과를 거뒀고, 시민 1인당 중심 시가지 평균 소비액(1만 2000엔)은 3,000엔 이상 증가했다.
  
도야마는 2014년 일본 지방 도시로는 예외적으로 2005년 인구인 42만 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젊은 층의 유입이 증가해 2007년부터 2012년 사이 도야마시 초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 수가 12.6퍼센트 늘어났다. 도심과 거주 촉진 지구에 거주하는 인구도 증가 추세다. 전체 인구 중 이 지역에 거주하는 비율이 2005년에는 28퍼센트에 그쳤으나, 2012년에는 31퍼센트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41퍼센트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중교통 활성화와 중심 시가지 활성화를 이끈 순환선 센트렘은 도야마의 콤팩트시티 정책을 상징하는 명물로 자리 잡았다. 트램을 타고 편리하게 도심으로 이동하여 주 업무, 문화생활, 쇼핑 생활 등 모두 한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고 도심은 활기를 되찾았다. 
  
도야마가 콤팩트시티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지역 산업 기반이 필수적이다. 콤팩트시티 구축을 통해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성장 산업을 유치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은 것이다.
  
도야마의 대표적인 향토산업은 제약산업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약’으로 유명했다.에도시대부터 제약공업이 발달해 전통적인 약 제조 업자가 세운 중소 규모의 제약공장이 많다. 역 바로 앞에 설치된 도야마 약장사 동상은 제약산업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야마 제약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일본 제일의 복제약품 제조사 니치이코 제약이다. 지역 산업의 맏형답게 니치이코 본사는 시의 최고 중심지에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 기업은 지난해 미국의 제약회사 사전트를 7억 3600만 달러에 인수하는 등 해외 인수 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야마를 대표하는 또 다른 기업은 세계적은 지퍼 기업 와이 케이케이(YKK)다. 도쿄에서 창업한 기업이지만 도야마에서 주력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YKK의 도야마 정체성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기업 본사의 지역 이전을 지원하겠다는 아베 정부의 정책에 부응해 YKK가 자회사 YKK AP 본사를 도야마시 근교 구로베시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YKK는 본사 지방 이전으로 세제를 우대받는 1호 기업이 됐다.
  
도야마시는 지역 산업과 도심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산업 지역인 이와세 항구와 도야마 역을 연결하는 노면전차 포트램을 건설했다. 새롭게 활성화된 도심 지역으로 주택, 상업시설,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중교통과 보행 중심 모델로 기업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지역 산업을 활성화하는 콤패트시티 전략이 가시화된 것이다.
  
콤팩트시티 구축은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밀도 집중 개발로 투자와 고용이 늘어 도시경제의 활성화와 지속 가능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교통 통행량과 주행거리 감소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생활 권역 범위의 집중으로 고령자의 이동과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커뮤니티 전반을 강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콤팩트시티 라이프스타일은 미래의 창의인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개성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은 일, 주거, 문화생활, 레저생활 등 같은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다. 도심에 근접한 곳에 거주하면서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청년문화를 즐기 수 있는 도시환경은 창의적 인재를 모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콤팩트시티는 단순히 도시발전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콤팩트시티 산업으로 불릴 수 있는 관련 산업을 창조하는 산업 정책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산업, 골목 산업, 문화산업, 소상공인 창업 등 콤팩트시티 친화적인 도시산업, 그리고 콤팩트시티 라이프스타일에 이끌려 이주한 창조인재가 새롭게 창출하는 창조산업 등을 발전시킨다.
  
최근 국내에서도 콤팩트시티 사업을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춘천, 대구 등 지방 도시들이 도야마를 방문해 모리 시장과 콤팩트시티 전략을 논의했다고 한다. 국내 도시가 도야마시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콤팩트시티를 단순한 도시재생 모델로 이해했을까? 도시 생존에 대한 모리 시장의 절박감도 함께 느꼈을까?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로 진입한 우리에게 콤팩트시티 모델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자동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과 보행을 선택하는 것 외의 도시 생존 전략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임팩트
  
도시재생은 낙후된 구도심을 주민과 젊은이가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이리다. 구도심의 애로사항을 해고하고 일자리, 문화 인프라, 대중교통 등 그들이 원하는 도시 어메니티를 단기간에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의 구도심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아침에 공연, 미술 전시, 쇼핑을 서울 수준으로 제공할 수는 없다. 전 세계 어디든 문화 자원에 있어 중앙 도시와 지역 도시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골목길 상업시설은 다르다. 지역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지역의 원도심도 가로수길, 홍대, 삼청동과 같은 아기자기한 골목상권을 조성할 수 있다. 대구, 부산, 군산, 전주, 통영 등 이미 많은 지방 도시가 개성 있는 골목상권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하루빨리 매력적인 골목상권을 조성하길 원한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상권 확대 효과가 큰 거점 상점의 유치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경기가 나쁠 때도 꾸준히 유동인구를 유발하는 상점, 즉 거점 상점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실패가 없는 명실상부 거점 상점은 젊은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다.
  
지방도시에서 골목상권 조성이 중요한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환경 때문이다. 개발할 수 있는 골목길 자원이 많고,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할 수 있어 큰돈이 들지 않는다. 문제는 창의적으로 골목을 개발할 도시기획자 그리고 골목상권에서 개성 있는 가게,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음식점을 창업할 수 있는 소상공인의 풀(pool)이다. 전국적으로 이런 능력을 가진 인재는 많지 않다. 대규모 정부투자를 통해 고 숙련 소상공인 풀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골목상권의 성공을 좌우할 인력 공급난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은 거점 상점을 지방 도시 골목길로 유인하는 것이다.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형마트와 달리 커피전문점과 같은 골목형 프랜차이즈는 오히려 골목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거점 상점으로 언급한 스타벅스가 대표적인 예다. 스타벅스 매장 입점이 주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미국 최대 온라인 부동산 정도 사이트 질로(Zillow)의 연구에 따르면, 1997년에서 2014년 사이에 일반 주택의 평균 지가 상승률이 65퍼센트였던 것에 반해 스타벅스 주변 주택은 96퍼센트나 오르며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스타벅스 입점은 주변의 다른 가게들에도 혜택으로 작용한다.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전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많은 독립 커피전문점들이 스타벅스의 진입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주변 모든 상점의 매출이 함께 늘어난 것이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는, 스타벅스가 도심에 여섯 개 매장을 동시에 오픈한 직후 모든 도심 가게의 매출이 25퍼센트 상승했다.
  
스타벅스의 영향력은 다른 프랜차이즈와도 차별화된다. 질로의 연구를 보면, 던킨도너츠의 경우 주변 주택의 지가 상승률이 80퍼센트에 그친다. 스타벅스에 비해 16퍼센트 포인트 낮다. 가장 큰 위력은 보다 많은 유동인구를 상권으로 끌어들이는 브랜드 파워다. 스타벅스를 찾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주변 가게를 방문해 전체가 활성화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관광객들도 스타벅스 매장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 스타벅스 간판을 보면 그 지역의 수준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 장점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스타벅스의 존재 자체는 도움이 된다. 스타벅스가 상징하는 품격 덕분에 부동산에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독립 가게는 스타벅스의 진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스타벅스에 사람이 몰리면 복잡함을 피해 주변의 다른 커피점을 찾는 손님이 늘어난다. 또한 아무리 스타벅스라도 모든 고객의 취향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의 특징을 살리는 제품을 개발하는 독립 가게들은 스타벅스와 경쟁하며 상호보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도 스타벅스가 유발하는 시장 확대 효과, 즉 스타벅스 임팩트를 체험하고 있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국내 커피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1999년부터 2011년의 성장률은 연평균 21.6퍼센트에 달했다. 한국의 커피 시장은 스타벅스와 동반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상가를 개발한 건설사는 상권 거점으로 기능하는 스타벅스 입점을 최우선으로 추진한다.
  
개인 상가 건물주가 가장 유치하고 싶어 하는 상점도 스타벅스다. 스타벅스 매장이 입점하면 건물 가격이 두 배 이상 뛴다는 업계의 공공연한 소문 때문이다. 스타벅스 유치만큼 지역의 구도심 경제와 관광산업을 빠르게 활성화할 수 있는 사업이 또 있을까. 상권 재생이 시급하고 지역 혁신 인력의 유입이 단기적으로 어려운 낙후지역에서는 스타벅스 유치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타벅스가 자발적으로 지역의 구도심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 전국 1100여 개에 이르는 매장을 운영하지만 그중 66퍼센트가 서울과 여섯 개 대도시에 밀집돼 있다. 2016년 기준 전국 228개 지자체 중 약 38퍼센트에 이르는 86개 지자체가 단 한 개의 매장도 갖고 있지 않다.
  
한두 개 매장이 위치한 도시라도 그것만으로 도시재생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중소도시 매장은 구도심에서 떨어진 대학가나 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스타벅스가 대도시 상권에 집중된 것은 전략적 배치로 인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철저하게 상권을 분석하고 매장을 오픈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미 상권으로 성숙한 지역에만 진입하는 것이다. 낙후된 상권에 진입해 상권을 키우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 경제와 도시의 미래에 있어 도시재생의 중요성을 인지한다면, 정부와 스타벅스 모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상업시설 유치가 정부 역할이 아니라는 통상적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관광단지와 문화지역 조성, 도시재생 사업에서 정부의 역할은 도로, 편의시설, 공공시설 등 인프라 지원에 한정된다. 상권 개발과 분양은 건설업체의 몫이다.
  
정부의 직접 지원이 어렵다면 민간 기관이 정부와 협력하는 것도 방법이다. 젊은 층이 좋아하는 상업시설을 유치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재생하는 기업 자포스, 제주 원도심을 비슷한 방식으로 재생하는 아니리오 뮤지엄 등은 상업시설 유치를 통해 도시를 재생하는 대표적인 민간사업자다.
  
다행히 최근 건설업계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건설 공사만 수행하는 도급형 사업에서 벗어나, 건설 후 운영까지 총괄하는 디벨로퍼 모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부 건설업체는 스타벅스와 같이 상권 확대 효과가 큰 브랜드를 유치해 상가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개발을 책임지는 지도자들이 상업시설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상가 건물을 일단 짓고 나면 소비자가 원하는 상점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는 수동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역 정부는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와 관광객이 요구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업시설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제는 한국 전역에 거점 상점 효과, 즉 스타벅스 임팩트를 극대화해야 할 때다.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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