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은행
1600년 전 베네치아인은 여러 개의 섬을 따라 도시를 건설했고, 수로가 좁아 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곤돌라’라는 교통수단을 발명했다. 좁고 깊숙하며 특수하게 비대칭으로 설계된 곤돌라는 좁은 수로를 자유롭게 다니며 도시와 베네치아를 구석구석 연결했다.
세계 최초의 은행은 이 물의 도시에서 탄생했다. 그러므로 이탈리아는 현대적인 은행업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계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지위가 운수업과 맞먹는다고 말한다. 은행은 화폐의 교통수단이라서 화폐가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은행의 더듬이가 닿는다.
세계에서 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은행이다. 은행은 상품을 생산하지도 판매하지도 않지만 날마다 돈 묶음이 줄줄이 들어온다. 과연 이 돈은 어디에서 올까?
현재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은행에 저금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은행이 뭐 하는 곳이에요?”, “책상 앞에서 돈을 세는 사람들은 누구예요?”, “왜 돈을 모르는 사람에게 줘요?”, “이 돈은 다 어디로 가죠?‘라고 묻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의 생명은 예금자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화폐의 세계에서는 이 신뢰를 ‘신용’이라 부른다. 몇백 년이나 되는 은행의 역사에서 수많은 은행과 은행가가 신용을 경영하고 키워왔는데, 어떤 은행가는 신용 때문에 성공했는가 하면 어떤 은행가는 신용 때문에 무너졌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산업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 신용은 어떻게 생겼을까?
최초의 신용 관계는 화폐를 빌리는 것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탈리아의 시에나 은행 박물관에는 화폐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저축과 대출에 관한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장부가 있다. 사업 계약서를 보관하고, 영수증을 표구하고, 장부를 자세하게 적은 것으로 몬테 파시 은행이 신용과 계약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1472년에 설립한 이탈리아 몬테 파시 은행은 540년의 역사를 가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1472년 설립한 이탈리아 몬테 파시 은행(몬테 데이 파시 디 시에나)
몬테 파시 은행이 있는 시에나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고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와 가깝다. 시에나는 전통을 고수하는 도시로 지금도 건축물, 거리,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서 중세의 분위기가 난다.
중세에 지중해 연안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무역지구이자 상업지구였고, 해상 교통이 편리해서 각국에서 상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화폐를, 그것도 대량의 금속 화폐를 휴대하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따른 불편함과 리스크는 무역이 발전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돈을 벌 기회를 발견하고 연안에 창구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화폐를 교환하고 보관해주는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것이 은행의 기능을 한 최초의 서비스다.
1650년에 발행한 환어음은 사실상 여행자 수표와 같았다. 환어음이 생긴 뒤에 여행자들은 금화가 잔뜩 든 보험 상자를 들고 외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환어음만 있으면 되었다. 환어음 1장의 가치는 금으로 만든 방패 모양의 물건 55개와 같았다.
이 기발한 서비스는 은행을 탄생시켰고, 환어음은 현대인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예금통장, 은행 어음, 입출금 카드로 발전했다. 은행의 등장으로 이탈리아 경제는 크게 번영했으며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같은 도시는 세계 무역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무역의 번영은 은행을 더 성장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이탈리아에는 최초의 현대적인 은행인 베네치아은행이 탄생했고, 재력이 막강한 은행 가문인 메디치 가문이 등장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세계 은행업의 요람’으로 불린다.
은행업이 지중해 연안에서 발전하기 시작할 때 중국은 이미 몇백 년 전부터 ‘비전(飛錢)’이라는 환어음을 썼다. 북송 시대 때는 똑똑한 상인들이 빈전의 관념을 한층 더 발전시켜 세계 최초의 지폐인 교자를 만들었다.
유럽의 가장 서쪽에 있는 국가인 영국은 현대 금융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은행의 역사에는 ‘금세공인 은행가’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1735년에 처음 문을 연 이 보석상은 300년 동안 줄곧 왕실의 왕관을 디자인했고, 창시자는 영국 왕실의 어용 금 세공인이다. 금세공은 오래된 업종인데, 전문적으로 황금을 가공하는 수공업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금세공인은 은행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황금은 일찍이 유럽시장에서 예술품이기도 하고 화폐이기도 했다. 상인들이 보관을 위해서 금세공인에게 황금을 맡기면 금세공인은 독특한 표시가 있는 영수증을 나눠주고 나중에 찾아가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금세공인은 상인들이 동시에 황금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대출이라는 새로운 업무의 출현을 촉진했다.
금세공인들은 기한이 되어 고객이 교환을 요구할 것에 대비해서 일정 비율의 황금만 남겨둔 채 나머지 황금은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았다. 이 오래된 행위는 훗날 지급준비제도로 서서히 변화하고 발전했다. 이 제도는 예금과 대출의 비율을 정했고, 현대적인 은행의 리스크와 건실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탈리아든 영국이든 어떤 국가건 간에 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통해 화폐를 자본으로 바꾸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현대적인 은행은 화폐의 운명을 바꾸었고, 사회에 방치된 돈을 한 곳으로 모아 발전이 필요한 큰 기업과 업종에 투자해 경제발전의 속도를 높였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전통농업에서 현대 공업, 과학기술까지 여러 분야의 발전에는 모두 은행의 대출이 있었다. 국가 경제에서 화폐는 인체에 흐르는 혈액만큼이나 중요하고, 은행은 혈액을 운반하는 심장만큼 중요하다.
돈이 시장에서 끊임없이 이용되고 회전하고 이익을 생산할 때 화폐의 기능이 살아난다.
참고 자료
‘화폐 경제 1’, 중국 CCTV 다큐멘터리 <화폐>제작팀, 가나출판사, 2014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