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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Apr 07. 2018

로스차일드 가문의 탄생

로스차일드 가문의 탄생
  
현대적인 상업은행 시스템의 형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문이 있다. 18세기에 이 가문은 부의 대명사였고, 이 가문이 세운 금융제국은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이 가문은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각지에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소유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낡고 오래된 유대인 집단 거주지에서 화폐 왕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최초 구성원은 프랑크푸르트의 빈민굴에서 태어났다. 이 빈민굴은 저녁마다 대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가 이튿날 아침에나 열었다.
  
에벌린은 로스차일드 가문 영국 분파의 5대 후손이다. 그의 선대인 나탄 메이어 로스차일드(Nathan Mayer Rothschild)는 가문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은행가다. 나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탄이 10대 때 그의 아버지인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공채와 옛날 화폐를 거래하는 사업을 했다. 메이어가 사업을 통해 친분을 쌓은 첫 번째 큰 고객은 당시 헤센 주를 다스리던 헤센 공작이었다. 당시 독인은 주마다 서로 다른 공작이 다스렸는데 헤센 공작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나탄 메이어 로스차일드(Nathan Mayer Rothschild)


하지만 오래지 않아 유럽 전체를 휩쓰는 전쟁이 일어났다. 18세기 말에 프랑스 사람인 나폴레옹은 유럽을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806년 라인 강변의 헤센 주를 점령했다. 그러자 통치자의 지위를 잃은 헤센 공작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재산을 메이어에게 맡기고 유럽으로 도망갔다. 나폴레옹은 헤센 공작의 재산을 찾으라고 명령하는 한편 헤센 공작의 재산을 숨겨주는 자는 누구든지 군사 법정에 세우겠다고 경고했다. 이때 메이어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메이어와 그의 가족은 경찰의 감시와 심문,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헤센 공작에게 충실했다.
  
고객에게 충실한 것과 권력에 굴복하는 것 중에서 메이어는 전자를 택했다. 1813년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했고, 헤센 공작은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 권력을 되찾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8년 동안 고객의 재산뿐 아니라 더 크게는 은행가의 명성과 신용을 지켜낸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명성을 얻자 해외 진출이라는 더 큰 야심을 가졌다. 나탄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국의 공업 도시인 맨체스터에서 무역업에 종사했지만, 곧 금융의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영국 최대 도시인 런던으로 시선을 돌렸다.
  
19세기 초 런던은 유럽에서 금융의 중심 역할을 했고, 상인과 은행가들은 왕립 거래소에 운집했다. 왕립 거래소의 기둥 앞에서 나탄은 특유의 포즈를 잡고 서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내면세계와 표정에서 숨은 뜻을 읽어내지 못했다. 나탄의 목표는 세계 최초로 국제적인 은행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나탄의 형제들은 프랑크푸르트, 베네치아, 나폴리, 파리 등지에 연이어 은행을 열었고, 두터운 혈연관계를 통해 전 세계 화폐의 흐름을 조종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각지에 포진된 지점을 통해 자본이 발달한 국가의 여윳돈을 합리적으로 이용했다. 또 금융수단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같은 기타 유럽 국가를 건설하는 데 썼다. 1820년대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은 브라질 등 남미 국가를 돕기 시작했다. 공채를 거래해 유럽 국가의 경제를 지원한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장 큰 공헌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가족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공채를 발행했다. 19세기 중엽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미 60억 달러 정도의 자산을 소유했고, “유럽에서 6개의 강국이 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로이센,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은행업으로 전 세계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에 철로, 지하철 등 주요 기반 시설을 건설할 때도 비용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출금에서 나왔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휘장

   
에벌린의 방에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휘장에서 5개의 화살은 다섯 형제의 단결과 합작을 상징한다. 몇백 년 전에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집단 거주지에서 비롯된 오래된 가훈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모든 후손에게 영향을 주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좌우명은 근면, 단결, 신용이다. 
  
신용은 상업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기초이자 몇백 년 동안 상업은행이 지켜온 경영 원칙이다.
  
로스차일드 시대에는 독일 베를린의 은행가 거슨, 영국에서 로스차일드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한 베어링 가문,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록펠러 가문,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모건 가문과 같은 실력이 뛰어난 은행 가문이 많이 등장했다. 성장한 은행가들은 런던 시티, 프랑크푸르트에서 월스트리트, 도쿄 금융지구까지 세계 각지로 자본의 힘을 보냈다. 모든 국제금융의 중심에는 은행업의 뒷받침이 있었다.
  
은행의 가장 큰 역할은 신용 시스템을 인류 사회에 가져온 것이다. 신용 시스템은 인류의 경제 체제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
  
  
  
참고 자료
  
‘화폐 경제 1’, 중국 CCTV 다큐멘터리 <화폐>제작팀, 가나출판사, 2014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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