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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Apr 07. 2018

화폐 발행과 중앙은행

화폐 발행과 중앙은행
  
  
미국 조폐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쇄소다. 대량의 종이가 이곳으로 운송되어 인쇄를 거치고 분리되면 특별한 것으로 변신하는데, 종이에 찍힌 숫자는 직접적으로 그 몸값을 보여준다. 20달러 지폐든 100달러 지폐든 모든 달러 지폐의 인쇄원가는 9.1센트다. 하지만 이 숫자는 미국 재정부에만 의미가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은 지폐에 인쇄된 숫자에 더 주목한다. 2011년 미국 조폐국은 약 58억 달러를 인쇄했다.
  
미국 정부가 가진 조폐국 두 곳은 각각 워싱턴 주와 텍사스 주에 있다. 모든 달러는 두 조폐국에서 인쇄된 뒤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조폐국에서 인쇄된 달러가 곧장 전 세계로 흩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중요한 기구로 운송된 다음 차례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 있는 기구다.
  
달러처럼 전 세계에 유통되지는 않지만 다른 국가의 화폐도 인쇄 방식은 똑같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 국가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한다. 중앙은행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폐 가치의 안정을 위해서다.
  
중앙은행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다. 사람들에게 중앙은행은 모든 화폐를 발행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중앙은행을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은해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은행이라 부르며, 일본에서는 일본은행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인민은행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왜 중앙은행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왜 중앙은행이 은행 중의 은행일까? 왜 중앙은행은 화폐 정책의 제정자일까? 그래서 중앙은행은 정부의 은행일까?
  
5000여 년의 화폐 역사에서 중앙은행은 1000년 전에 처음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역사도 짧은 중앙은행이 어떻게 화폐를 발행하는 큰 권한을 독차지하게 되었을까? 화폐의 역사에서 화폐 발행권을 놓고 벌인 쟁탈전은 어떤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을까?
  
사마천이 한나라 무제 때 집필한 역사서인 <사기>에 의하면 화폐 발행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최초의 쟁탈전은 2000여 년 전인 기원전 81년, 고대 중국에서 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학식이 높은 유생 60여 명이 밤낮으로 길을 서둘러 장안에 모여 서한의 조정 관료들과 재정 정책을 놓고 한바탕 대토론을 벌였다. 당시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누가 화폐를 발행하느냐였다.
  
서한 이전에는 민간에서 자유롭게 화폐를 찍었고, 조정은 그저 화폐의 중량과 품질에 관한 가이드라인만 규정했다. 하지만 시장의 번영으로 화폐가 부족해지자 상인들은 동에 납과 철 등의 잡물을 섞어 품질이 떨어지는 악화를 만들었고 부당 이익을 취하기 시작했다. 한무제 때는 이미 경제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로 화폐 질서가 무너져 유통되는 화폐를 철저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기원전 113년 한나라 7대 황제인 한무제는 민간에서 화폐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화폐를 재정비하는 방법은 민간에서 화폐를 만들지 못하게 하고, 화폐를 만드는 권한을 조정이 회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0여 년 전에 한나라의 조정이 민간에 있는 화폐 발행권을 거두어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이유인즉 당시 조정은 조정이 장사를 해도 되는가, 조정이 장사를 하는 것은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 아닌가를 놓고 격렬히 노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조정이 장사를 하면 나쁜 상인들이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국고의 수입도 늘어나므로 일거양득이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조정이 장사를 하는 것은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민간의 입장에서 변론하던 사람들은 조정이 이익을 추구하면 백서이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잃고 세시풍속이 나날이 나빠질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조정은 상업을 독점하지 않고 민간과 이익을 다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조정이 민간 이익을 다투는 것에 관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화폐 발행권을 민간에서 조정으로 귀속시키는 것은 민간과 이익을 다투지 않기로 한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가?
 

오수전(五銖錢), 기원전 118년 처음으로 주조, 질량이 당시 도량형으로 5수(銖) 3.35g


  
상림삼관(화폐주조관청)이 통일해서 오수전을 만들게 됨에 따라 오수전은 당시 유일하게 유통되는 화폐가 되었다. 이후 화폐 발행권은 국가의 수중에 들어갔다. 
  
2000여 년 전 중국의 한나라는 이미 조정만이 화폐의 신용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중국 역사에서 정부가 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국면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1000년 뒤 유럽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실은 화폐가 왕권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927년 잉글랜드의 각 왕국은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일되었고, 애설스탠이 잉글랜드의 1대 국왕이 되었다. 애설스탠은 국왕에게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 지정된 지점에서 국왕이 제정한 기준에 따라 만드는 화폐만이 유일하게 합법적인 화폐이고, 화폐를 위조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법적으로 규정했다. 이후 금속 화폐의 앞면에는 국왕의 두상이, 뒷면에는 아름다운 경관이 새겨졌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여전히 이 화폐 디자인의 전통을 잇고 있다.
  
  
  
참고 자료
  
‘화폐 경제 1’, 중국 CCTV 다큐멘터리 <화폐>제작팀, 가나출판사, 2014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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