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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Apr 10. 2018

중앙은행은 왜 독립적이어야 하는가?

중앙은행은 왜 독립적이어야 하는가?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하고 공급하며 경제발전 속도를 조절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화폐 정책을 남용할 수 있을까? 중앙은행은 정부의 도구가 되는 것일까?
  
앨런 블라인더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부의장이자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보좌진이었다. 재임 기간 중 블라인더와 그린스펀의 공동 목표는 계속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특별한 기구이다. 정부의 일부지만 정치에서 독립적이다. 사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개인 회사여도 주주가 회사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다. 하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생각할 때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정부의 일부분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위원들의 임무는 미국 상원의 비준을 얻는 것이다. 이들은 탄핵을 받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독립성은 달러의 화폐 가치를 더 안정적으로 유지시킨다. 이 밖에 중앙은행의 중요한 권한은 경제발전의 필요에 따라 화폐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다. 이것을 화폐 정책이라 부른다.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재정 정책과 화폐 정책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경제가 안 좋을 땐 자극적인 조치를 하지만, 경제가 좋을 땐 인플레이션 걱정하며 신중하게 정책을 내놓는다.
  
1993년 10월부터 미국의 경기가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인플레이션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무려 7번이나 기준 금리를 올리고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량을 통제해 인플레이션 없이 미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연착륙시켰다.
  
재정 정책은 100% 정치적인 일이다. 어떤 사람은 재정 정책에 정치만 있고 전문가는 없다고 말한다. 화폐 정책은 이와 정반대다. 화폐 정책은 순전히 전문가들이 결정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구성원은 정치인들, 그러니까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에서 비준하지만 구성원 자체는 정계 출신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비정치계 인물들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화폐 정책에 대한 권한을 순순히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정부는 항상 빠른 경제성장을 원한다. 경제가 고속으로 성장해야 실업률이 낮아지고 정부 관료들이 연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고속으로 성장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중앙은행이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거나 경제성장을 자극하는 화폐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 대선 기간에 이런 상황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엉망이었다. 아버지 부시는 그린스펀이 시장에 화폐를 풀어 경제를 자극하길 바랐다. 그래야 쉽게 대통령을 연임할 수 있었다. 그린스펀은 아버지 부시에 의해 연임되었지만, 자신이 독립적으로 국가의 경제이익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버지 부시의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아버지 부시는 경제침체로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린스펀은 독립적인 판단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게 평생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는 모범을 보였다.
  
중앙은행이 대량의 화폐를 발행하면 상업은행은 대출을 많이 해 줄 수 있고, 기업은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으며, 국민들은 대출받은 돈으로 소비를 할 수 있다. 대량의 투자와 소비는 다시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킨다.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하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지만, 이는 진짜 경제번영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화폐의 생산자, 즉 중앙은행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그러면 가정, 개인기업, 공공기업 등 각 영역에서 경제순환을 방해하는 자극적인 작용이 일어난다.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는 것은 개인, 가정, 기업이 저축한 수입을 빼앗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도둑질이다.
  
2009년 짐바브웨는 액면가 100조 달러의 지폐를 발행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짐바브웨 정부가 얻은 수입 가운데 50% 이상은 화폐 발행을 통해서였다. 그 결과 짐바브웨에 통제를 벗어난 초인플레이션 상태인 심각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역사적인 인플레이션들은 모두 중앙은행이 화폐를 남발한 결과로 일어났다. 정부의 명령에 따라 중앙은행이 화폐를 남발하는 것은 만연한 위기를 저지하는 정부의 최후의 방어선이다.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

   
20세기 초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의 인플레이션은 국세를 기울게 한 것은 물론이고 2차 세계대전을 야기했다. 20세기 중엽 중국 국민당 통치 시기의 인플레이션은 중국인들을 도탄에 빠트렸을 뿐만 아니라 결국 국민당을 몰락시켰다. 20세기 말 남미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은 수십 년 동안 쌓은 경제발전의 성과를 수포로 만들었다. 지금도 이들 국가는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화폐를 남발해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의 욕망을 저지해야 하고,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중앙은행의 기능은 필요한 자금과 화폐를 제공하고 금융공황을 막아 어려운 시기에도 전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선진국들이 인플레이션을 겪고 경제발전에서 좌절하고 반성하면서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1, 2차 세계대전 때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건 중앙은행에 독립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각국은 정부 정책 때문에 화폐를 과도하게 발행하여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화폐 정책을 세우는 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하는 일 중 하나고, 이곳은 유럽 중앙은행처럼 오랫동안 독립적이었다. 약 20년 전부터 일본, 영국 등 다른 국가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통령, 총리, 재무장관이라도 중앙은행 총재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었다. 
  
정치 요소의 관여를 막기 위해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모두 최대한 완벽하고 균형 잡힌 시스템을 찾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발전의 역사를 비교했을 때 장기적으로 중아은행이 독립적이었던 국가는 물가 수준, 화폐 가치의 안정성, 경제발전 상황이 중앙은행이 독립적이지 않은 국가보다 대부분 더 좋았다.
  
2008년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량을 늘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유 있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중앙은행이 정부를 도와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어떻게 표현될까 등이었다. 그리고 2011년 5월, 미국의 유타 주는 법정 화폐 법안을 통과시키고 유타 주에 화폐 발행 권한이 있다고 발표했다. 
  
화폐 발행권은 초기에는 민간에 있었지만 훗날 서서히 정부에 회수되었다가 최종적으로 중앙은행이 독점하게 되었다. 화폐의 기능도 가장 원시적인 일반적 등가물에서 시장의 제동장치로 발전했다.
  
화폐 발행권은 이미 중앙은행이 독점하고 있지만 화폐 발행권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민에게 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화폐의 독립성, 자율성, 공평함을 누가 더 잘 보호하느냐이다.
  
  
참고 자료
  
‘화폐 경제 1’, 중국 CCTV 다큐멘터리 <화폐>제작팀, 가나출판사, 2014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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