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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Apr 14. 2018

중세 시대와 고리대금업

중세 시대와 고리대금업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고리대금업자처럼 행세하며 이자를 받으려 하지 마라.” -출애굽기 22:25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꿔주어서는 안 된다. 돈이든 곡식이든 또 그 밖의 어떤 것이든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되지만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 -신명기 23:19-20
  
“고리대금업에 손을 대지 않았고 물론 이자도 받은 적이 없으며 항상 공정했던 사람은 정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니라.” -에제키엘 18:8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말고 꾸어 주어라.” -누가복음 6:35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과 천사들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지옥으로, 지옥으로, 지옥으로’라고 고함쳤다. 천상에서도 ‘불구덩이 속으로, 불구덩이 속으로, 불구덩이 속으로’라고 소리쳤다. 땅 위에서도 ‘땅속으로, 땅속으로, 땅속으로’를 외쳤다.” -성 베르나르디노, 설교 45
  
“일곱 번째 원 가장 바깥쪽에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고리대금업자)이 앉아 있다. 이들의 눈에서 고통과 비탄이 새어 나오고 있다.” -단테, <신곡 - 지옥 편, 제7곡>
  
고리대금에 대한 이러한 제한은 절대적 금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고 이 조치가 수 세기 동안 공식적인 지지를 받으며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므로 고리대금을 금지한 교회의 교리, 즉 고리대금 금지 교리는 비단 신용의 이용 범위를 축소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달하여 사회적으로도 용인됐던 그간의 금융 관행과 신용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325년에 기독교 교회 최초의 교무 총회인 니케아 공회에서 시편 15장을 인용하여 성직자의 고리대금을 금지하는 교회법이 통과됐다. 성 제롬(Saint Jerome, 340~420)은 ‘동족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각종 예언서와 신약성서에서도 누차 강조됐으며 이제 그 범위가 확대되어 이방인에게 고리대금을 허용한 것도 이제 더는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성 암브로시오는 고리대금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철천지원수 격이어서 살인을 해도 죄가 안 될 정도로 극악한 적에 대해서만 허용된다. 교황 레오 1세는 성직자의 고리대금을 금지했고 평신도에 대해서도 고리를 취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공언했다. 샤를마뉴 대제 통치 시절인 800년경에는 교회 법령집 하드리아나(Hadriana)에서 초기의 고리대금 교리를 재차 강조했을 뿐 아니라 샤를마뉴 법령집 역시 프랑크 왕국 최초로 고리대금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고리대금이란 주어진 이자율 이상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부터 300년 동안 고리대금을 저지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가 간헐적으로 제재를 가했다. 850년에는 파비아 종교회의에서 평신도 고리대금업자들을 파문했다. 그러나 로마 학문과 무역의 부흥기였던 11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학자들이 교회의 고리대금 교리를 자세히 검토하고 교회 당국도 고리대금 금지 부분을 상세히 설명하게 됐다. 당시 고리대금은 도적질에 버금가는 범죄로 취급됐다. 따라서 고리대금은 도적질하지 말라고 한 제7계명을 어긴 것과 같은 죄악으로 간주되었다. 고리대금에 대한 정의에 주관적인 의견도 개입되기에 이르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에 빌려줬던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적 고리대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139년에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고리대금을 금지했고 고리대금업자를 파렴치한으로 치부했다. 교황 유진 3세는 ‘대출자가 저당물의 부산물을 취하면서 이를 원금에서 공개하지 않는 저당 대출 역시 고리대금에 해당’한다고 포고했다. 따라서 훔친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듯이 이때 취한 부산물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봤다.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현금 가격을 웃도는 비싼 가격으로 신용 판매를 하는 것은 고리대금에 해당한다.’라고 선언했다. 명백한 고리대금업자로 판단되는 사람은 교회에서 파문됐다. 고리대금업자는 자비심이 없고 탐욕스럽다는 이유 외에도 정의에 반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를 들어 죄인 취급을 받았다. 고리대금은 재산권을 침해 행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비난의 대상은 이익 그 자체가 아니었다. 모든 고리대금에서 이익이 발생하나 이이이 발생한다고 다 고리대금은 아니다. 상품을 만들고 이를 팔고 구매하는 데서 발생한 이익은 그것이 ‘공정 가격’에 기인한 이익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의 노동에 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출은 상업적 차원이 아니라 돈이 궁한 이웃을 도와준다는 차원으로 인식됐다. 산업 노동에서 이익을 얻듯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한테서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사악하고 부당한 일로 보였다. 대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개인 소비 대출에서 비롯됐으나 이후 그러한 관점이 다른 신용 형태에까지 일반화됐다. 정신적 고리대금도 죄악이었다. 1210년에 오세르 주교구의 윌리엄(프랑스의 철학자, 신학자)은 ‘고리를 취하려는 의지가 고리대금업자를 만든다.’라고 언명했다. 그러면서 고리대금의 죄를 부당한 욕구를 품은 죄에 견주었다. 고리대금 금지 교리는 살인을 금하는 십계명보다 훨씬 더 엄격한 계율이었다. 살인은 드물기는 하지만 칭찬받을만한 살인도 있을 수 있지만, 고리대금 금지법에는 그 어떤 예외도 용납되지 않았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신명기는 이방인에 대한 고리대금을 허용했다. 그러나 보편적인 동포애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방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이러한 예외가 설자리를 잃게 됐다. 성 레이몬드의 말에 고리대금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의 존빌이 잘 드러나 있다. “궁핍한 이웃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오직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고리대금이냐 아니냐는 그러한 행위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달렸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돈은 생식력이 없으므로 돈이 돈을 낳는 것은 부자연스럽기도 하려니와 결정적으로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상업적 거래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에 반대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고리대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정리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고리를 취하는 것은 사악한 짓이다.” 더욱 사악한 짓(동족한테서 고리를 취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류로 유대인과 이방인한테서 고리를 취하는 것이 허용됐다. 이방인에 대한 고리대금을 허용한 신명기의 구절은 스콜라 철학 시대 내내 논란거리가 됐다. 이 때문에 부족 법과 보편 법의 경계가 더욱 명확해졌다. 일부는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빌려 주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또 일부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사라센인(이슬람교도)에게 빌려 주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모든 고리대금 행위를 비난했던 스콜라 철학자들은 후자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리대금에 대한 성직자들의 맹렬한 비난이 실제 법률을 통한 고리 금지로 나타나게 됐다. 즉,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점점 더 여러 국가가 고리대금 금지법 제정 대열에 합류했다. 유럽에서 고리대금이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고리대금 금지 교리를 금주법(볼스테드 법)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주법은 일부 열성파만이 지지했고 법의 시행도 엄격하지 못했을뿐더러 사회 및 정치 지도자 그리고 일반 대중이 약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고리대금 금지 교리는 죄에 대한 두려움이 정치 지도자와 교회 지도자 그리고 상인과 은행가의 양심을 강하게 압박했다. 11세기와 12세기에 무역과 상업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정부와 기업은 고리대금의 도움 없이 상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때의 신용 유형 가운데는 고리대금이라는 ‘죄’를 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안된 것들도 있다. 금융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고리대금의 죄를 짓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항상 마음을 졸여야 했다.
  
  
  
참고 자료
  
‘금리의 역사 -제4판 ’, 시드니 호머·리처드 실라, 리딩리더, 2011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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