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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건우 May 12. 2018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거래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인이 주도해서 이루어졌다. 투자에 의한 주식거래라기보단 일본인들 사이의 보유 주식의 환전 필요성에 따른 주식거래로 보고 있다. 
  
한성은행과 천일은행(구 상업은행의 전신)이 각각 1897년과 1899년 주식회사 조직으로 설립된 이래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주식발행도 점차 늘어나게 된다. 뒤이어 1905년에는 국고증권 조례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국채가 발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행된 주식은 발기인이 전액 인수했으며, 국채도 사실상의 중앙은행이었던 ‘저축은행’이 전액 인수함으로써 일반인들이 거래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사, 제1호 상장기업, 최초의 금융권 노동조합 창설 등의 기록을 남긴 한성은행은 후에 조흥은행에서 산업은행을 거쳐 지금은 신한은행으로 합병되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대한제국 정부의 식산흥업 정책에 따라 같은 해 설립된 ‘대조선저마제사(大朝鮮苧麻製絲會社) 주식회사’를 들기도 한다. 1897년 독립협회 회원인 안경수, 이재형, 서재필 등이 조선산 삼베와 모시로 만든 실을 중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대조선저마제사 주식회사’를 만들었고, 이 회사는 한 주에 20원에 주식 공모를 하여 7만 원의 자본금을 모아 설립되었다. 당시 마저사(麻苧絲) 1톤의 생산비가 500원, 수출가격이 톤당 1,400원으로 이익률이 대단한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립신문 1897년 6월 12일 1면 논설

당시의 ‘독립신문’은 논설을 통하여 삼과 모시를 이용해 비단을 짜고 이를 수출해서 돈을 많이 벌수 있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금광보다 백배가 낫고 이 회사의 증서를 사두는 것은 논을 사는 것보다 삼백 곱절이 이득이라고 말하면서 조선 백성들이 먹고살게 만들어 줄 테니 20원을 내고 대조선저마제사 회사의 주식을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후 주식 한 장에 20원의 갑절을 받고 팔 날이 올 것이라고도 이야기하며 내국인의 출자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이후 70명의 직원이 고용하는 등 회사의 설립은 완료하였으나 공장 설립은 끝내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길건우 자산관리사(rlfrj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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