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남한산성>
‘그들은 항상 이래왔어요. 앞에서는 대화를 말하고 뒤에서는 우리를 공격했단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면 통일을 했다 한들 그들이 우리를 동포로 인정해 줄까요?’
영화 <강철비>는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 두 사람을 통해 북한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보여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로 대한민국이 들떠있던 당시 북한은 제2연평해전을 일으켰다. 또 2006년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남북 관계를 긴장 속에 밀어 넣기도 했다. 이 당시가 민주당 정권 때였고 북한과의 관계가 가장 좋았을 때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뒤통수’를 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북한을 위해 많은 편의를 봐주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공격, 그리고 협박이었다.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정권 길들이기’ 같은 모습을 보였고 그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소통은 끝나버렸다. 이런 북한의 태도를 생각하자면 전자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그들은 언제나 대화를 통해 원하는 걸 얻어왔고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새 정권에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지난 9년의 보수정권이 철저하게 북한과의 소통을 거부하면서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진보정권 하에서는 가장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로 회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허나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왜 우리 올림픽인데 북한의 편의를 이리 봐주느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을 철저하게 배척할 수 있을까? 북한과 대한민국은 같은 반, 바로 옆자리 짝과 다름없다. 상대하기 싫어도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상대가 마음먹고 공격이나 위해를 가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좋건 싫건 관계란 걸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에 있어 핵심이 바로 ‘같은 동포’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영토도 우리의 땅으로 헌법상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기 북한을 다른 나라로 생각하고 살자’고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소리다. 또 북한의 군사독재정부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주도 하에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 이때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면 성공적인 통일은 이뤄지기 힘들다. 우리 사회는 항상 한 가지 비용을 잊어버리곤 한다. 바로 ‘사회통합비용’이다. 여기서의 통합이란 독재정권처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소리가 아니다. 사회에서 차별받고 부적응하는 사람이 없게 구성원 모두를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섞이지 못한다면 이들의 교화를 위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소모된다. 그렇다고 돈이 아까워 내버려 둔다면 이들은 사회적인 문제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다시 옆자리 짝꿍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 짝이 그냥 소심하고 삐뚤어진 성격이면 문제가 없다. 헌데 이 녀석이 주머니에 칼을 지니고 다닌다. 그리고 틈만 나면 ‘다 찔러버린다!’라고 지껄인다. 사고회로를 돌리면 돌릴수록 그 칼에 가장 먼저 찔리는 건 자신이다. 옆자리고 사사건건 부딪히고 툭하면 같이 묶이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관계를 유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비용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강철비>에서 미국은 한국에게 선제핵타격을 제시한다. 이 제안의 이유는 이렇다. 전쟁 후 한국을 현 수준으로 복귀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너무 많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반면 선제핵타격을 가하면 대한민국 역시나 피해를 입지만 복구할 수준은 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한 마디로 전쟁이 나면 한 순간에 북한은 불바다가 되고 대한민국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이럴 경우 우리는 ‘북한에 퍼주는 게 아깝다’는 소리가 욕먹을 만큼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괜히 비굴하기 싫다며 전쟁을 부르짖다 최악의 상황으로 전 국민을 인도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상대의 위협에 맞서 싸우고 싶지만 문제는 피해, 그리고 미래다. 사람이 성인이 된 후 싸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입는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치료비 몇 푼 물어주면 그만이지만 성인은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건 물론 상대의 직업에 따라 막대한 보상을 해줘야 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짜증나고 더러운 상황에도 굴욕적인 사과 한 번이 차라리 낫다며 피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다면 북한 문제는 무조건 참고 인내하며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답인가?
외교에는 답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정책은 평화 무드를 가져왔으나 말 그대로 거짓된 평화에 가까웠다. 우리만 통일 분위기를 내고 북한에는 큰 변화를 끼치지 못했다. 무능의 극치라 여겨졌던 박근혜 정권은 싸드 반입 등으로 스스로 관계를 망쳤으나 한때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내며 한국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외교 선택에 있어 ‘옳고 그르다’는 존재하기 힘들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우리는 최명길과 김상헌, 둘 중 누구도 욕할 수 없다. 최명길은 조선의 백성들이 고통 받고 조선왕조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치욕적인 협상을 주장하는 반면 김상헌은 굴욕적인 평화는 결국 패배나 다름없다며 끊임없는 항전을 주장한다. 이들은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백성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최명길은 항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성 밖에서 청의 군대에 짓밟히는 조선의 백성들을 걱정한다. 반면 김상헌은 설령 청나라 군대가 물려난다 할지라도 이후 그들의 과한 요구로 인해 청나라에 끌려가거나 과한 세금을 내게 될 백성들의 처지를 걱정한다. 대북관계에 빗대어 말하자면 전자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맞춰주며 평화를 지키자는 입장이고 후자는 북한을 배척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강경한 자세를 통해 평화를 지키자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외교는 없는 걸까? 아니,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존재한다. 김류를 비롯한 몇몇 신하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조선의 종묘사직과 백성들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 받고자 하는 욕심과 열망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들의 주장에는 일관성이 없으며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하다. 또, 무모한 작전으로 백성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전쟁이 길어지면 백성들의 안위를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백성들을 쥐어 짜내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더 편해질 방법만을 궁리한다.
이런 정치인들은 소위 말하는 ‘종북몰이’를 하는 정치인들이다. 그들에게 국민의 안위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이들은 상대를 종북이라고 몰며 권력을 잡으면 간첩 사건을 조작한다. 댓글부대를 통해 정치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빨갱이라 낙인을 찍으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생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마치 50년대 냉전시대 당시 광풍처럼 불었던 매카시즘이 2010년대 대한민국에 다시 불어 닥친 것이다. 저들에게 북한은 그저 필요악이다. 북한을 향한 분노를 이용해 표를 모으고 그 권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른다. 이는 청나라에 대한 분노를 이용, 최명길을 죽이려 들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이유로 백성들을 무모한 전쟁판에 내던진 17세기 조선의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2018년, 또 다시 대한민국은 북한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남북단일팀이 성사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대화와 교류에 진전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북한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언론은 ‘왜 자꾸 매달리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칭하는 정치인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조건 눈과 귀를 닫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가장 나쁜 선택지다. <강철비>의 결말부를 보라. 북한은 처음부터 남한에 관심 따위는 없다. 그들의 목적은 국제사회로의 진출이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미국과 ‘직접 대화’를 나눠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작전은 적화통일이 아닌 미군 납치다. 미군을 인질로 잡아 미국과 직접 협상을 맺겠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다.
우리가 대놓고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해 버린다면 주도권은 주변국에게로 넘어간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권인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할 수 있고, 또 일본이 북한과 대화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된다면 북한 문제에 있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중요한 위치에 설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한미동맹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미국의 목적은 북한의 핵 포기 또는 핵 실험 중단이다. 이를 위한 협상에 대한민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위치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코리아 패싱’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북은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고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제어하고 협상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야만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비록 그것이 표면적일지라도)를 국제사회가 바라봐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