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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 숨기고만 싶었던 ‘국가의 탄생’

영화 <뮤직 박스>의 주인공 앤은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에 도달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나치 전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이 내보내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할 진실을 숨긴 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픈 역사와 말하지 못할 진실이 있는 거처럼 국가에게도 그런 암흑의 역사가 있다. 리들리 스콧의 <1492 콜럼버스>에서 원주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하는 장면, 그 장면처럼 미국의 ‘탄생’은 피로 써졌다. <몬태나>는 그런 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첫 장면, 로잘리의 가족은 인디언의 습격을 받는다. 총을 들고 저항하던 남편은 총에 맞고 산채로 머리가죽이 벗겨지며 화살에 쏘인다. 인디언들은 엄청난 사격 실력으로 로잘리의 두 딸과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마저 쏴 죽인다.(그 조그마한 아기를 쏴 죽이면서 로잘리는 쏴 죽이지 못하는 기이한 실력의 인디언들.......) 다음 장면, 조셉 대위는 인디언 가족을 생포한다.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짐승처럼 몰이를 당하는 인디언과 울부짖는 가족들, 말에 질질 끌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대척을 이룬다. 그들은 서로를 죽인다. 그리고 조셉 대위는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인디언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헌데 그들은 왜 인디언과 싸우게 된 걸까?


미국의 총기 소지의 역사는 서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부개척 시대 미국은 인디언과 싸워야 했고 그들은 국가, 가정,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싸워야만 했다. 미국에게 있어 총은 그들의 건국 정신과 같다. 그런데 그들이 세운 이 국가라는 건 결국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다. 총으로 인디언들을 쏴 죽이고 그들의 집을 빼앗아 세운 왕국이 미국이라는 나라다. 스콧 대위는 자신의 동료들을 죽여 왔던 추장 옐로우 호크를 그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자 분노한다. 하지만 그의 고향으로 가는 여정에서 조셉 대위는 점점 본질을 바라보게 된다. 인디언들에게 여기는 집이다. 집에 들어온 ‘침략자’들과 그들은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침략자인 자신이 그들에게 분노할 이유가 있는가. 도둑이 집주인이 문을 안 열어준다고 부수고 들어가 살해할 명분이 있느냔 말이다.

이는 로잘리의 변화에서도 주목된다. 로잘리는 남편과 자식들을 죽인 인디언들에게 분노를 품는다. 죽은 인디언 시체에 총격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스콧 대위처럼 인디언의 입장과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들이 가진 분노의 크기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합리적 이성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이 영역에 도달한 순간, 영화는 불편함을 품게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건드리는 영역이 국가의 탄생, 즉 미국의 뿌리를 절단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몬태나>의 목소리는 진지하다. 영화는 화려한 총격과 총잡이의 낭만을 넣을 만도 하건만 그런 외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함을 품은 베일의 얼굴처럼 시종일관 본질적인 문제를 놓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총기규제는 미국 탄생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물론 총기협회의 권력과 자본이 막강하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그들의 정신이다. 인디언들을 상대로 서부를 개척하여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낸 무기가 총기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개척정신에 대해 ‘학살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불편한 ‘국가의 탄생’은 미국 국민이라면 꼭 생각해 볼 법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정권 이전부터 미국은 총기가 문제였고 문제인 걸 알면서도 미국의 정신을 이유로 껴안아야 했다. 영화는 그런 정신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있다.(이런 점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아쉬운 점은 오락적인 측면에서 조미료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서부극의 종결’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경우 기존 서부극의 판을 뒤엎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적인 재미를 품었기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헌데 이 영화는 진지해도 너무 진지하다. 마치 항상 좋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주지만 지루해서 만나기 싫은 형과 함께하는 기분이랄까. msg가 몸에 안 좋다고 건강식으로 음식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다. 좋은 음식을 맛보게 하려면 일단 맛이 나야 한다. 조금만 맛을 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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